인간이 아닌, ‘그녀’를 만지다…‘리얼돌=음란물’ 논란 현장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8.30 13:24
  • 호수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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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국내 유일 리얼돌 제작업체 최초 취재…“브로커의 독점 시장, 소비자들이 불쌍했다”

 

세 ‘여성’은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피부는 새하얗다 못해 창백했다. 입은 약간 벌린 채,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살짝 드러난 젖가슴을 가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허공을 향한 눈빛엔 초점이 없었다. 여성들은 이름이 없다. 사람들은 이름 대신 다르게 부른다. ‘리얼돌’이라고. 

 

리얼돌은 보통 고급 실리콘으로 만들어진다. 모습은 사람을 꼭 닮았다. 관절의 움직임도, 촉감도, 사람과 비슷하다. 올 3월 설립된 ‘팀포유’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리얼돌 제작업체다. 이 업체는 최근 논란에 휩싸였다. 8월 초 국내 언론이 “수입 금지 품목인 리얼돌을 국내에서 만들어 팔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부터다. 

 

관련 기사들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논란이 예상된다”거나 “위법행위를 검토할 수 있다”는 등, 부정적 뉘앙스의 문구를 담았다. 한 언론은 “미성년자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고 단정적으로 썼다. “그 기사 때문에 경찰 조사도 받았습니다. 결과는 뻔했죠. 그럴 수가 없거든요.” 김성식(36) 팀포유 대표가 말했다.  

 

경기 구리시에 위치한 리얼돌 제작업체 '팀포유' 사무실에 전시된 3개의 리얼돌. ⓒ 시사저널 이종현

 

 

 

언론의 십자포화 맞은 리얼돌 제조업체

 

시사저널은 8월28일 오전 경기 구리시의 팀포유 사무실을 찾았다. 40평 남짓한 사무실 한켠엔 ‘성인용품 소매업자’라고 적힌 사업자 등록증이 걸려 있었다. 합법적으로 운영된단 뜻이다. 상주 직원은 김 대표를 포함해 2명이 전부다. 

 

이들은 100% 수작업으로 리얼돌을 만들고 있다. 먼저 스테인리스로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우레탄폼을 입힌다. 이를 여성 신체 모양의 형틀에 넣고 실리콘을 부은 다음 굳힌다. 이렇게 몸통 하나를 만드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인형의 머리는 직접 만들지 않고 해외의 제품을 사용한다. 머리와 몸통을 합친 키는 160cm, 무게는 30kg 정도다. 가슴-허리-엉덩이 사이즈는 각각 30-19-32. 지극히 이상적인 수치다. 2010년 기준 20대 한국여성 신체 사이즈(32-27-36)에 비하면 훨씬 말랐다. 

 

기자가 리얼돌을 만져봤다. 사람의 피부보다 차갑고 다소 딱딱했다. 꽉 잡아보니 안쪽의 골격이 느껴졌다. 인형이란 걸 알면서도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코를 가까이 댔다. 불쾌한 고무 냄새가 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실제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의료기구를 만드는 미국 제조사의 고급 실리콘을 쓴다”고 설명했다. 

 

리얼돌의 다리 ⓒ 시사저널 이종현

 

 

 

 

의료용 실리콘으로 제작…가격은 대략 ‘590만원’ 

 

리얼돌은 재료의 등급이나 완성도, 제조사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리얼돌을 세계 최초로 만든 미국 아비스사(社)의 현재 판매가는 6000~8000달러(약 666만~888만원)다. 일본 업체 오리엔트 인더스트리는 약 70만엔(708만원)에 팔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사려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김 대표는 “밀수 브로커들이 현지가의 3~4배로 높여 판다”며 “최고급 리얼돌의 경우 2000만원 가까이 받는다”고 귀띔했다. 팀포유는 완성된 리얼돌을 대략 590만원에 팔고 있다. 이러한 가격 책정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리얼돌을 밀수하는 국내 브로커들은 극소수다. 사실상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취하는 폭리 앞에서 소비자들이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생각을 했다. 구매욕이 강한 소비자는 바가지를 쓰기도 한다. 사기도 자주 당한다. 안타까웠다. 우리가 리얼돌을 직접 만들어 판다는 소문이 알려지자, 브로커들이 우리에게 최소 1000만원은 받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하긴 싫었다.”

  

작업실에 들어가봤다. 머리 없는 나체의 리얼돌이 천장에 걸려있었다. 손가락, 발가락은 물론 여성의 국부까지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었다. 마네킹을 볼 때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로봇공학 중에 ‘불쾌한 골짜기’란 이론이 있다. 로봇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과 인간이 비슷하게 생길수록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너무 비슷해지면 오히려 불쾌감이 든다는 것이다. 리얼돌을 마주한 기자의 머릿속에서 골짜기가 요동쳤다. 

 

이런 리얼돌을 사람들이 사는 이유는 뭘까. 일반적으론 남성의 성욕 해소를 위해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여성을 본뜬 리얼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김 대표는 “성적 목적을 위해 사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고 했다. 실제 리얼돌을 사러 여자친구와 같이 방문한 남자 손님도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고품질의 전시용 피규어(인간이나 동물 형상의 장난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김성식(36) 팀포유 대표가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군인 장교 출신의 그는 늘 뭔가를 만드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리얼돌을 알게 됐고, 2년 간의 연구 끝에 팀포유를 설립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그러나 정부는 리얼돌을 전시용 장난감으로 여기지 않는다. 지난 2014년 관세청은 성인용품 통관에 대한 규제 완화 차원에서 성인용품 통관심사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는 ‘풍속을 현저히 해치거나 여성들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정도’ 등을 심의해 통관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 관세법 234조 역시 “풍속을 해치는 조각물 등을 수출하거나 수입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리얼돌은 이에 근거해 통관 금지 품목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리얼돌이 풍속을 해친다는 근거는 뭘까. 풍속(風俗)의 사전적 의미는 ‘그 시대의 유행과 습관 따위’를 뜻한다. 인천세관 세관운영과 관계자는 8월30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풍속의 뜻에 대해 말을 아꼈다. 

 

대신 이 관계자는 “세관의 자의적인 해석을 막기 위해 내부 직원 9명과 교수, 변호사 등 외부 인사 9명으로 이뤄진 성인용품 통관심사위원회가 구성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소속 위원 18명은 전부 남성이라고 한다. ‘리얼돌이 여성의 수치심을 유발한다’는 위원회의 판단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이유다. 관계자는 ‘리얼돌에 대한 위원회의 심의 기록을 보여달라’는 기자의 요청을 거절했다. 

 

한편 기획재정부 관세제도과 관계자는 “풍속의 뜻은 시대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그로 인한 규제 수위가 점차 낮아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엔 성기구의 소유가 관세법에 의해 무조건 불법이었지만, 요즘은 사유가 합당하면 허락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2014년 실리콘으로 만든 가짜 여성 성기, 일명 ‘오나홀’이 음란물이 아니란 판결을 내렸다.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리얼돌에 대한 판결은 지금껏 없었다. 김 대표는 “차라리 리얼돌이 음란물인지 아닌지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받고 싶다”고 토로했다. 현재 리얼돌의 제작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관련 법조항이 아예 없어서다. 단 리얼돌의 음란물 여부는 정해지지 않아 판매와 홍보에 어려움이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지난해 10월부터 올 8월까지 ‘리얼돌을 합법화해 달라’는 취지의 글이 21건 올라와 있다. 그 근거로 청원인 중 한명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적 자유에 따라 국민 모두는 사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으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리얼돌의 옷을 갈아입히고 자세를 연출한 뒤 찍은 사진 ⓒ 시사저널 이종현

 

 

 

 

긍정·부정 시각 혼재…“차라리 공론장에서 토론하자”

 

리얼돌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 우선 장애인이나 노인 등 일반적인 성생활이 힘든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장애인 사회운동가 캐롤린 게릭은 2015년 11월 현지 언론에 “대부분의 섹스토이와 섹스산업은 장애인의 접근성에 있어 한참 뒤처져 있다”며 “특정인의 신체적·정신적 능력을 이유로 그를 소비자군에서 배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관련 산업의 고용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 독일 시장 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섹스토이의 시장 규모는 2015년 208억 달러(약 23조 1200억원)로 조사됐다. 오는 2020년엔 그 규모가 약 39% 성장한 290억 달러(약 32조 2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뉴욕포스트는 지난해 6월 “일본에선 매년 2000개 정도의 리얼돌이 판매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리얼돌까지 개발했다. 어비스사가 만든 리얼돌 ‘하모니(Harmony)’는 표정을 짓거나 말을 할 수 있다. 사람의 터치에 반응하기도 한다. 미국 IT매체 씨넷은 8월25일 “오는 9월에 하모니의 배송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일각에선 성 상품화 가능성을 꺼내든다. 완벽에 가까운 리얼돌의 외형이 왜곡된 여성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단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5년 영국에선 여성 교수들을 중심으로 리얼돌에 반대하는 캠페인 단체가 생겨났다. 

 

이와 관련해 김 대표는 “차라리 여러 사람들이 모여 부작용이든 순기능이든 토론할 수 있는 공론장이 생기면 좋겠다”며 “지금은 리얼돌의 법적 정의조차 없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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