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단체 “조선업 다단계 하청 금지 법제화, 정부 몫으로”
  • 경남 창원 = 이상욱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8.08.3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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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 조선업 대형사고 재하도급 구조가 근본 원인 지적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공동대책위’는 “(조선업) ‘다단계 재하도급의 원칙적 금지 법제화를 정부에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공동대책위는 8월30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이하 국민참여 조사위)가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를 거론하며 이같이 밝혔다.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개선과 정책 실행의 공은 정부에게 넘어갔다는 노동계의 반응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조선업 현장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산업재해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국민참여 조사위’를 출범시켰다. 지금까지 운영된 각 분야의 조사위원회와 달리 현장노동자도 참여했다. 지난해 발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사고, STX조선해양 도장작업 중 폭발사고 등 잇따른 조선업종 대형사고 때문이다.

 

‘국민참여 조사위’는 출범 당시 ‘노동친화 정부’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반영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앞서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산업재해 대책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대형 인명사고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산재 사고에 대해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때까지 사고 원인을 투명하고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5월 발생한 사고로 휘어진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 연합뉴스

 

 

 

국민참여 조사위, 조선업 사망 사고 80% 하청업체 노동자

 

지난해 발생한 대형 조선업 사고의 경우 하청 또는 재하청 근로자가 대부분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5월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발생한 타워크레인 충돌 사고 피해자 31명 모두 협력업체 직원들이었다. 당시 삼성중공업 원청 직원들은 이날 근로자의 날을 맞아 휴식을 취했지만, 하청 노동자들은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부터 2개월 뒤 경남 창원 STX조선해양 현장에서도 선박 폭발사고가 발생해 사내 협력업체 직원 4명이 숨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조선업(선박건조및수리업) 산업재해율은 0.83%로, 전체 산업평균 0.49%에 비해 두배 가량 높게 나타났다. 특히 ‘국민참여 조사위’에 따르면 2007∼2017년 조선업 사고 사망자는 총 324명이며, 이들의 80%(258명)는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조선업 현장에서 삼성중공업 사고와 같이 대부분 하도급 노동자들이 ‘안전 사각지대’에 내몰렸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조선업은 원·하청 구조가 발달했다. 대형조선소들은 갑을관계를 유지한 채 수많은 하청업체들을 거느리고 있다. 특히 국내 조선업은 많게는 10차까지 이르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이 때문에 원·하청 관계에서 오는 갑을관계와 불공정 관행 등이 산재 사고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조선업의 가장 위험한 작업은 ‘물량팀’으로 통하는 최말단 하청 노동자들이 맡으면서 피해를 당하는 현실이다. 

 

‘국민참여 조사위’는 8월30일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5월 삼성중공업 크레인 붕괴사고와 7월 STX조선해양 폭발사고 모두 재하도급 구조가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재하도급 계약은 원청의 승인사항이지만, 실제 승인이나 관리·통제를 받지 않는 등 법적·제도적 장치가 허술한 탓에 관행처럼 활용됐다는 지적이다. 원청업체는 협력업체 안전보건관리 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는 서류상으로 존재할 뿐 실제 작업자들은 현장에서 안전보다 생산성을 더 우선시하는 것으로 조사된 탓이다. 


2017년 7월 발생한 STX조선해양 폭발 사고 현장을 둘러보는 정·제계 인사들 ⓒ 연합뉴스

 

 

노동계 “외주화, 재해 취약성 키워” vs 업계 “재하도급 관리, ‘불법파견’ 논란”

 

‘국민참여 조사위’는 앞서 4월 활동 결과를 발표하면서 중대 재해의 근본 원인으로 안정을 위배하는 무리한 공정진행과 안전책임이 없는 재하도급 확대, 원·하청의 안전관리 책임과 역할 불명확, 과도한 하청노동자의 증가 등을 꼽았다. 

 

이날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공동대책위’는 “이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개선과 정책 실행의 공은 정부에게 넘어갔다”며 정부는 조사위의 제언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원청 조선소가 중대재해 예방에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여 제도와 시스템을 운영해도, 차마 기업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백개의 영세 하청업체가 뒤엉킨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경남지역 한 노동계 관계자는 “조선업에서 외주화가 본연의 전문성·효율성 활용의 목적보다 비용절감 목적으로만 활용되면서 산업재해의 취약성도 커지고 있다”며 “외주화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업계는 “재하도급 업체 관리를 강화하다 보면 원청이 업무지시를 하는 것으로 비쳐져 '불법파견'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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