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감독 벤투는 ‘히딩크’가 될 수 있을까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1 11:08
  • 호수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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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 신임 감독 맡은 벤투 前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러시아월드컵에서 아쉬운 결과를 남긴 한국 축구는 다음 월드컵을 향한 새 출발에 나선다. 그 시작을 알린 것은 신임 대표팀 감독 선임이었다. 대한축구협회의 김판곤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은 8월17일 기자회견을 열고 파울루 벤투 전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감독을 4년5개월 임기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8월20일 자신과 함께할 4명의 포르투갈 코치와 함께 입국한 그는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취임 일성을 밝혔다. 

 

파울루 벤투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이 8월23일 고양시 MVL호텔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시사저널 고성준


 

“카타르월드컵 호성적이 목표”

 

“아시안컵 우승을 첫 목표로 시작해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며 의지를 밝힌 벤투 감독은 “다시 한국 땅을 밟아 영광”이라는 말도 남겼다. 벤투 감독은 한국과 16년 만에 재회했다. 포르투갈 대표팀 주전 미드필더로 2002 한·일월드컵에 참가한 그는 한국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 풀타임 출전한 바 있다. 

 

벤투 감독은 대한축구협회가 월드컵 실패를 경험한 뒤 제대로 된 명장을 선임하겠다는 의지 속에 영입한 인물이다. 김 위원장은 7월5일 감독 선임 작업에 착수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이 느끼는 갈증을 안다. 해소해 주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러시아월드컵 내내 선수단과 동행한 그는 유럽파를 중심으로 수준 높은 축구를 경험하고 있는 선수들이 현재의 대표팀 훈련 방식과 관리체계에 괴리감을 크게 느낀다는 인상을 받았다. 

 

러시아월드컵 준비기간의 3분의 2를 맡았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부임 초기에는 팀 분위기를 재건해 성적을 냈지만, 월드컵 최종예선 들어 한계를 드러냈다. 훈련 디테일과 전술 대응력이 떨어졌고, 부진한 성적을 선수 탓으로 돌려 팀 내부의 상호 신뢰도 급격히 깨졌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갈증 해소는 적어도 유럽파들이 매일 마주하는 소속팀 감독 수준에 근접한 지도자를 데려오겠다는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그는 “슈틸리케 감독의 선임 배경은 이해하지만, 그는 결과가 증명되지 않은 지도자”라며 궤를 달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실탄도 어느 때보다 두둑했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지급한 연봉 15억원도 역대 대표팀 감독 중 최고액이었지만 그 이상이 필요했다. 축구협회는 30억원가량을 신임 감독 연봉으로 책정했다. 정몽규 회장은 40억원의 개인 출연금을 더했다. 연간 40억원을 대표팀 감독과 코칭스태프 운영에 투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김 위원장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케이로스를 비롯해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전 멕시코 대표팀 감독, 즐라트코 달리치 크로아티아 대표팀 감독 등 러시아월드컵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긴 감독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다. 하지만 최종 사인에 실패했다. 김 위원장은 “어떤 감독은 명분이 필요하다며 엄청난 금액을 요구했다. 또 다른 감독은 금액을 맞춰도 마지막 협상에서 물러났다”며 수준급 명장의 선임은 돈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고백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전 레스터시티 감독, 위르겐 클리스만 전 바이에른 뮌헨 감독과도 협상을 추진했지만 초기 접촉 단계에서 모두 거절당했다. 네티즌들로부터 인기가 높았던 키케 플로레스 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과도 만남을 가졌지만, 그 역시 “축구의 중심인 유럽을 떠나 아시아로 가기엔 아직 젊다”며 냉정한 입장을 밝혔다. 

 

그런 김 위원장의 레이더망에 걸린 인물이 벤투 감독이었다. 당초 벤투 감독은 협상 후보가 아니었다. 그는 7월까지만 해도 중국 슈퍼리그의 충칭 당다이 리판을 이끌고 있었다. 그러나 성적과 선수 영입을 놓고 구단과의 관계가 틀어져 사임하며 시장에 나왔다. 최근 브라질 크루제이루, 그리스 올림피아코스(우승 직전 구단주와의 갈등으로 사임), 그리고 중국까지 3개 클럽에서 잇달아 경질됐지만 김 위원장은 벤투 감독의 커리어와 내용에 집중했다. 

 

2006년 조국인 포르투갈의 명문 스포르팅 CP의 감독으로 취임해 4개의 컵대회 우승을 일군 그는 2010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명성을 얻었다. 유로 2012에서 4강에 올랐고, 챔피언 스페인을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갔다. 포르투갈을 브라질월드컵 본선까지 이끈 경험도 있었다. 김 위원장은 중국에서의 실패로 저점을 찍은 벤투 감독이 한국과 함께 반등할 능력과 철학을 지닌 인물로 평가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사례와 비슷하다. 히딩크 감독도 1990년대 초반 PSV에인트호벤에서 성공을 거두고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으로 이끌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세계 최고의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대실패를 맛봤고, 레알 베티스에서도 중도 경질된 채 커리어가 추락했다. 그때 한국과 함께 한·일월드컵을 통한 도전에 나섰고, 아시아 팀 최초로 4강 신화를 쓰며 유럽 축구 중심에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었다. 

 

물론 제2의 슈틸리케가 될 가능성도 있다. 슈틸리케 감독도 카타르 2부 리그와 아프리카를 떠돌다 한국에 왔지만 반등에는 실패했다. 그런 시선에 대해 김 위원장은 “맡았던 팀과 성과의 퀄리티가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무엇보다 벤투 감독은 전문 코치들로 자기 사단을 꾸렸고, 그들이 고스란히 한국행에 동행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피지컬 코치인 아르무아만 데려왔고, 부임 초기부터 그의 전문성은 꾸준히 의심을 받았다. “현재 포르투갈은 스페인·독일과 더불어 세계 축구의 중심에 있는 축구 훈련법을 갖고 있다. 전문성이 검증된 벤투 사단이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김 위원장의 기대였다.

 

 

선수 먼저 체크하며 의욕 보인 벤투

 

벤투 감독의 초반 의욕은 인상적이다. 취임 기자회견보다 선수 체크가 먼저였다.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 코치들과 함께 이용할 사무실을 마련해 줄 것도 요청했다. 일반적으로 기존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대표팀 소집 때만 트레이닝센터를 이용하고 평소에는 시내 모처에서 회의를 진행했다. 코칭스태프가 사무실에 상주하는 건 처음이다. 벤투 감독은 “매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4년 뒤면 현재 17세 이하부터 21세 이하 대표팀 선수들도 주역일 수 있다. 그들을 체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신 훈련방식 적용을 위해 드론을 띄울 수 있는지도 문의했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4년이 넘는 긴 프로젝트를 맡겨준 대한축구협회에 감사한다. 반드시 성과로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축구 철학에 대해서는 “강한 압박, 적극성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공격적인 축구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축구의 특징을 파악해 최상의 정체성과 팀 컬러를 만들겠다”며 신중한 모습도 보였다. 포르투갈 대표팀 시절 개인보다 팀을 최우선에 둔 그는 강한 카리스마와 유연성을 함께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벤투 감독과 한국은 반등의 마법을 기대하며 같은 길을 걷게 됐다. 지금까지 한국 축구는 계약 기간 4년을 채운 대표팀 감독을 보지 못했다. 최장기 감독은 2년9개월을 함께한 슈틸리케 전 감독이었다. 과연 벤투 감독은 한국과 함께 카타르월드컵 성공이라는 프로젝트를 끝까지 수행할 수 있을까? 김 위원장은 “미디어와 팬들이 믿고 인내해 준다면 반드시 성과를 낼 감독”이라며 벤투호의 성공을 위한 또 다른 숙제도 던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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