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계엄 문건 “軍이 GOP 부대까지 동원”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3 11:42
  • 호수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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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987년 군 작성 ‘작전명령 87-4호’ 검찰에 고발한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

 

2017년 3월 작성된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군·검 합동수사단은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 지시 아래 문건의 작성자와 관련 자료, 지시 여부에 대해 광범위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런 가운데, 1987년 군에서 작성된 계엄령 지시 문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1987년 6월항쟁 중에 작성된 ‘작전명령 87-4호’는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소요사태’로 규정하고 이를 어떻게 진압할지에 대해 적혀 있다. 이 문건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졌으며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박희도가 계엄군으로 편성될 지휘관에게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의 실체가 드러난 뒤 육·해·공군 사관학교 예비역 장교들이 포함된 시민단체들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 박희도 육군참모총장, 이문석 작전참모부장을 내란미수 혐의로 고발했다. 이 과정은 해군 소령 출신인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이 주도했다. 그는 “1987년의 작전명령과 2017년의 계엄령 문건은 상당 부분 유사하다”며 “헌법에 정당하게 명시된 국민의 권리를 군이 직접 짓밟으려 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시사저널은 8월29일 김 소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작전명령 87-4호’는 무엇인가.

 

“1987년 6월에 내려진 작전명령이다. 당시 시위 진압을 위해 각 군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 예하부대에 지시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내란미수죄로 고발했다. 

 

“당시 이 명령이 실행되지는 못했다. 미수에 그친 이유는 자발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따져봐야 하는데, 당시만 해도 한미연합사령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1987년 당시 우리는 평시작전권이 없었다. 하지만 ‘87-4호’는 평시작전권을 행사한 것이다. 한미연합사령부의 승인을 받지 못했거나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미수로 고발했다.”


2017년 기무사의 계엄 문건은 ‘내란음모죄’로 고발됐다. 

 

“두 문건의 차이는 ‘내란미수’와 ‘내란음모’란 점인데, 1987년엔 직접적인 실행 직전까지 갔기 때문에 ‘미수’고, 2017년은 실행 이전 단계였기 때문에 ‘내란 예비음모’로 고발된 것이다. 그렇더라도 2017년 문건 역시 실행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실행 의도’는 어떻게 판단하나.

 

“의도를 판단할 때는 문서의 성격을 보면 된다. 군의 문서 체계는 정책, 기획, 계획, 이행, 평가의 단계를 거친다. 정책을 세운 후에 이에 대해 기획하고, 기획을 바탕으로 세부 계획을 세운다. 그 후에 시행하고 사후평가를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플래닝’이라고 하는데, 2017년 문서는 계획문서였다.”


계획 단계이기 때문에 실행 의지가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보통 계획 단계까지 가면 ‘하우 투(how to)’ 즉 구체적인 군사계획이 담기게 된다. 이 문건에는 구체적인 군사계획이 나와 있다. 예를 들어 ‘작전계획 5027’이면 이는 전쟁이 발생했을 때 그대로 따르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마찬가지다. 문서 자체에 ‘계획’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 실행까지 염두에 뒀다는 의미다.  

 

또 계획문서는 지속적으로 보완된다. 2017년 계엄 문건의 마지막 장을 보면 ‘시행 준비 미비점 보완’이란 항목이 있다. 실행 이전에 미비점을 보완한다는 의미다. 계획을 세운 뒤 바뀐 상황에 대한 미세조정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보고한 날로부터 헌재의 탄핵선고일까지 (보완)하겠다고 나와 있다. 만약 단순 검토였다면 검토 후 보고하면 끝이다. 그런데 이것은 계속 업데이트됐다. 그러니 실행 의지가 있다고 봐야 한다.” 


탄핵선고일까지라고 하는 이유는 탄핵 인용을 염두에 둔 것인가. 

 

“탄핵 인용과 기각, 두 가지 모든 경우에 대해 다뤘다. 내용이 좀 세다. 촛불집회에서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이고, 인용되면 내란이라고 돼 있다. 문서 내용대로 해석하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국가가 혼란에 빠질 테니 계엄령을 발동하자는 논리가 된다.”


다시 1987년으로 돌아가서, ‘87-4호’는 계엄 포고 직전까지 갔다. 

 

“계획 다음은 실행이다. 실행은 명령이나 지시에 의해 시작된다. ‘87-4호’ 문건에는 예하부대에 지시를 내린다는 점이 명확하다. 지시했다는 것은 실행하라는 뜻이다. 2017년보다 한 단계 더 넘어간 것이다.”


1987년이면 이미 30년이 넘었다. 내란미수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없지만 당시 관계자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내란 예비음모죄는 금고 이상의 형이다. 공소시효가 7년이다. 그러면 1987년부터 1994년 6월19일까지가 공소시효다. 그리고 1995년 12월20일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없어졌다. 그럼 내란 예비음모는 적용되지 못한다. 그런데 내란미수죄가 되면 공소시효가 늘어난다. 무기징역까지도 가능하다. 헌정질서 파괴에 대한 특례법을 만든 이유가 세월이 지나도 내란죄나 반란죄, 이적죄는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 같은데.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내란죄인 경우엔 전 전 대통령이 지시해야 한다. 하지만 반란죄는 전 전 대통령이 지시하지 않았어야 한다. 만약 전 전 대통령이 지시하지 않았다면, 박희도와 이문석의 작전명령은 반란죄에 해당한다. 또 순서를 보면 계엄령이 발동된 뒤에 작전명령이 내려져야 하는데, 작전명령이 더 빨랐다. 이는 내란죄를 적용할 수 있다. 만약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군사반란 미수죄가 될 것이다.”

 

 1987년 문건과 2017년의 문건이 많이 비슷하다고 보고 있던데. 

 

“맞다. 당시 각 예하부대의 세부적인 이동 계획을 따져보면, 1987년 문건과 2017년 문건은 상당히 닮아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1987년에는 GOP 라인 부대까지 동원했지만, 2017년 문건에는 이 부대들은 제외해 뒀다.”

 

2016년 10월부터 ‘희망계획’이란 문건을 만들었다는 보도도 있다. 

 

“2017년 문건을 보면 군이 움직일 명분을 만들기 위한 흔적이 보인다. 분노한 시민들이 경찰서의 무기를 탈취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무기탈취가 이뤄진다는 것은 시민군이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한다는 뜻이다. 무기탈취가 있기 때문에 군사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명분을 주고 있다. 군은 무기탈취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계엄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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