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사회》는 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7 11:23
  • 호수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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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욕망을 다루는 방식을 착각한 영화

 

모두가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 한다. 《상류사회》는 이 같은 전제를 설정해 두고 달려간다. 전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영화는 강박에 가까우리만치 욕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사로서 제시될 뿐, 인물들이 갖는 욕망이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보여주는지는 의문이다. 애초에 이 영화에서 주인공 태준(박해일)과 수연(수애) 부부의 바람은 ‘상류사회 진입’이다. 그렇다면 그 상류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인물들은 왜 그런 욕망을 갖게 됐는지, 왜 그렇게 자신의 위치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상류사회》는 그 모든 것에 하나도 제대로 도달하지 못한다. 《상류사회》는 상류사회를 보여주는 방식, 인물의 욕망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무언가 착각하고 있다. 

 

※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내용을 자세히 묘사하는 글입니다.

 

영화 <상류사회>

 

 

인물들의 욕망은 무엇인가

 

인기 경제학 교수 태준은 우연한 기회에 정당의 공천을 받는다. 아내 수연은 미술관 부관장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관장이 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상류사회 진입의 꿈으로 부풀었던 두 사람의 바람은 점차 좌초된다. 수연의 미술품 거래와 이 미술관을 소유한 미래그룹, 태준의 정당까지 전부 어두운 뒷거래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태준이 위험에 빠지는 사이 수연 역시 옛 연인이자 미술작가 지호(이진욱)와의 관계로 발목을 잡힌다.

 

애초에 부부는 왜 상류층으로 가는 계단에 오르고 싶어 하나. 결국 무엇을 원하나. 《상류사회》에는 이 같은 고민이 빠져 있다. 태준과 수연에게는 각각 대학 교수와 미술관 큐레이터라는 번듯한 직업이 있고, 경제 수준 역시 안정적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더 높은 곳을 지향한다. 부부의 신분상승 욕망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호하다. “이 나라는 다들 부족해서 더 가지고 싶어 하고, 다들 자기 자리가 머리 꼭대기인 줄 안다”는 정치인들의 대사만이 욕망의 동기를 헐겁게 지탱하고 있다. 

 

더군다나 태준은 젠트리피케이션 반대 집회에서 분신을 시도하는 노인을 구한 모습이 화제가 돼 민국당 공천의 기회를 잡는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그는 늘 주장했던 서민들을 위한 대출 기관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당의 제안에 넘어간 것이다. 다만 영세 자영업자들이 땀 흘려 일군 상권을 자본이 집어삼키는 과정을 비판하며 ‘행동하던 지성’이, 급작스레 정치를 향한 야욕을 불태우는 과정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문제는 태준과 수연이 그렇게 바라던 자리를 순식간에 포기한다는 데 있다. 특히 모든 커넥션의 중심인 미래그룹의 한 회장(윤제문)을 무너뜨리려는 방법까지 고안할 정도였던 수연이 돌연 “제 욕망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결말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표면적 상황은 지호와의 섹스 동영상에 발목 잡힌 여성일 뿐이다. 영화는 결국 자신의 동영상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며 그 앞에서 욕망을 운운하는 여성이라는 경악스러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수연이 직접 공개한다는 설정만으로 영화가 수연에게 가하는 폭력을 정당화할 순 없다. 바로 몇 장면 앞에서 태준이 “개같이 사느니 칼 맞아 죽겠다”고 할 때 “그냥 개같이 살자”고 응수하던 수연의 캐릭터는 어디로 갔는가. 이것을 자존을 지키는 인물의 태도로 이해할 수 있는가.

 

이것은 ‘상류층의 민낯’이라는 비슷한 주제를 탐험했던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2012)이 내린 결말과는 또 다르다. 이 영화에서 상류사회에 진입했던 영작(김강우)은 그 세계에 어떻게든 속하지 않고 빠져나와 인간으로서의 자존과 품위를 지킨다. 첫 장면에서 영작은 윤 회장(백윤식)의 지시로 비밀금고에서 엄청난 돈다발을 목격하고서도 “좀 챙기라”는 그의 말을 거절한다. 그는 처음부터 결국에는 자존을 지킬 인물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돈의 맛》의 핵심은 상류층의 내부로 들어간다는 데 있었다. 관객은 천문학적 돈을 집 안에 쌓아두고, 너무 교조적인 대사일지언정 서로를 비꼬는 말들을 주고받는 재벌가의 저녁 식사 풍경을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영화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길 원했던 관객의 관음적 욕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목격하는 건, 평생 원 없이 돈을 썼으나 남은 것은 ‘모욕감’이라는 윤 회장의 최후다. 아내 백금옥(윤여정)의 재산에 얹혀살다시피 했던 그의 상황을 설명할 뿐 아니라 이 영화 전체를 설명하는 주요한 단어다. 영작은 그 모욕감이 자신을 집어삼키기 전 제 발로 재벌가를 빠져나오는 인물이다. 돈의 맛을 포기하는 인물인 것이다. 결말로 갈수록 재벌집 딸 나미(김효진)와 영작의 로맨스로 기억된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 영화는 최소한 모욕감으로 점철된 돈의 물성을 화면 밖으로 전달하는 데는 성공한다. 그러나 《상류사회》는 그들만의 리그에 대해 무엇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가. 관객이 바라보는 건 고가의 미술품들이 전시된 한 회장의 공간과, 그의 변태적 취향 정도다.

 

영화 <돈의 맛>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작 ‘상류사회’가 없다

 

결국 이 영화에서 상류사회의 더러운 민낯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건 섹스 스캔들뿐이다. 수연뿐 아니라, 태준과 불륜을 저지르는 그의 비서관 은지(김규선), 미술관에서 수연과 힘겨루기를 하는 후배인 민 실장(한주영) 등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여성 캐릭터들은 성행위 장면 혹은 노출 장면을 거치고 만다. 특히 앞서 많은 기사에서 지적했듯 미술 작품을 만든다는 빌미로 행해지는 한 회장과 미나미(하마사키 마오)의 정사 신은 경악할 수준이다.

 

자본을 무기로 한 변태적 성행위는 ‘이건희 동영상’ 등 우리 사회에 실제로 파문을 던졌던 사건들을 꼬집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이것이 상류사회의 한 부분임을 묘사하고 싶었다면 암시만으로도 충분하다. AV 여배우의 캐스팅이나 노골적인 카메라의 위치,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고 긴 묘사가 필요하진 않다. 영화는 포르노그래피와 고발 사이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내세우지 못한다. 변혁 감독은 “정사 신은 재벌의 추악한 면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며 “시나리오에 특정 사건이나 특정 인물을 반영한 적 없으며 비슷한 사건이 떠오른다면 우연”이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렇다면 이 묘사들은 더욱 피상적이지 않은가.

 

감독의 변과 달리 《상류사회》는 현실의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묘사가 여럿이다. 미술품을 통해 재벌들의 비자금 세탁을 담당하는 수연의 모습은 삼성 등 재벌가와의 거래 의혹으로 몇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던 서미갤러리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결과적으로 무죄 판결이 났다. 정당과 조직폭력배의 결탁은 폭력 조직과 정치인 유착 의혹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얼마든지 영화로서 더 심도 있는 비판을 가할 수 있었기에 안타까운 재료들이다. 결국 수연에게 “네가 평생 노력해 봐야 한 회장 아들 몸에 섞인 피 한 방울 못 이긴다”고 일갈하는 미술관 관장 화란(라미란)의 대사 등에서 엿보이는 날카로운 문제의식까지 무의미해져 버린다. 이쯤 되면 진지하게 묻고 싶다. 이 영화는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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