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덩어리 대입②] [단독] 수백만원 비용 ‘학교 해외여행’ 급증(下)
  • 오종탁·조문희 기자, 김윤주 인턴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9.10 14:39
  • 호수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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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자료 단독입수…대입 제도 불신 속 또 하나의 뇌관 ‘학교 해외여행’

 

[편집자 주] 

 

수시전형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현 대입(大入) 제도하에서 각종 부작용이 튀어오른다. 최근 불거진 서울 강남의 숙명여고 사태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 학교 교무부장이 두 딸을 위해 내신 시험지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확대되자 교육현장 반응은 “터질 게 터졌다”는 것이었다. 비뚤어지고 과열된 수시 경쟁 속에 해마다 시험지 유출 사건이 벌어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사저널 취재 결과, ‘수시 전쟁’ 속 무리수에 따른 시한폭탄은 또 있었다. 바로 학교 주관 해외여행이다. 무분별한 고(高)비용 해외여행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학교는 멍들고, 학부모와 학생은 울상 짓고 있다.



※앞선 ☞[불신덩어리 대입①] [단독] 수백만원 비용 ‘학교 해외여행’ 급증(上)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2016년 학생 1인당 경비 100만원 이상 해외여행 현항(자료: 교육부)


 

해외여행, 학종에 도움 될 거라 여겨 활발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 7월25일 발표한 ‘2019학년도 수시모집 요강 주요 사항’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은 내년 봄 신입생(34만7478명) 중 76.2%인 26만4691명을 수시모집으로 뽑는다. 1997학년도 입시에서 수시모집이 도입된 이후 가장 높은 비중이다. 수시모집 가운데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32.1%(8만4860명)다. 지난해(32.3%)와 비슷한 규모로 2017학년도 입시(29.5%)보다 높다. 특히 소위 ‘인(in)서울’로 불리는 서울 소재 대학들의 학종 선발 비중이 상당히 높다. 

 

서울 10개 대학이 올해 수시모집에서 뽑는 인원은 2만3816명인데, 여기서 61.4%(1만4632명)를 학종으로 뽑는다. 학종은 학생부에서 동아리·수상경력·봉사·독서활동 등 비교과 영역도 종합 판단해 선발하는 전형이다. 학교생활을 성실히 해 온 학생들이 유리하다지만, 평가 근거나 기준 등이 모호해 ‘깜깜이 전형’이라 비판받기도 한다. 학교 해외여행이 바로 이 학종과 관련 있다. 

 

교육부 규정에 따라 고등학교는 2011년부터 학생의 해외 봉사활동을, 지난해부터는 봉사활동이든 수학여행이든 해외 활동 자체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일절 기재하지 못하게 됐다. 학교 주관 고비용 해외여행을 줄이려는 조치였으나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미봉책이 해외여행에 대한 학교·학부모의 욕구를 잠재우긴 역부족이다. 곳곳에 뚫린 구멍은 ‘우리만 규정을 곧이곧대로 따랐다가 뒤처질 수 없다’는 불신을 퍼뜨리기 십상이다. 

 

학생이 해외여행 보고서를 써내면 학교가 이에 대해 시상하거나(수상 경력 기재), 입학사정관들에게 보내는 학교 소개글에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명시되는 등 우회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 교육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러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 ‘진짜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누구도 속 시원히 하지 못했다. 서울의 한 특수목적고 교사는 “해외여행 경험이 대학 진학에 직접적으로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는 말 못 한다”면서도 “‘옆에서 간다는데 우리만 안 갈 수 있겠느냐’는 관성이 작용하고 있어, 앞으로도 학교 해외여행이 늘면 늘었지 줄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교·학부모 멍드는데 뒷짐 진 교육 당국  

 

더 큰 문제는 일선 학교와 교육부 모두 어떤 현실적인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고, 내놓을 생각조차 없다는 점이다. 대입을 위해 학교 해외여행이 이용되는 데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에서 어떻게든 편법을 쓰려고 해서 현장점검을 강화했다. 그래도 학교와 학생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일일이 가서 (학생부) 한 글자 한 글자를 확인하기는 어렵다”며 “당국의 점검과 별도로 학교에서 아이들의 대학 진학을 놓고 편법을 자행할 게 아니라 교육적으로 나아가려는 자정 작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는 문제 없고 학교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식의 반응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당장 전국 초·중·고교의 해외여행 실태부터 교육부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자료를 요구하자 교육부는 “2016년까지밖에 파악해 둔 것이 없다”면서, 이마저도 “숫자가 잘못된 게 많아 검토가 필요하다”고 시간을 끌었다. 더구나 제출한 2016년 현황 자료와 시사저널의 취재 내용을 비교해 보니 교육부가 빠뜨린 것으로 보이는 학교들도 있었다. 이를 고려하면 100만원 이상 고액 해외여행 추진 학교는 자료(98개교, 139건)보다 더 많아진다.

 

한편 초·중학교에서도 해외여행이 만연한 현실은 대입을 위한 '스펙' 관리가 비단 고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닌 현실을 방증한다. 

 

문유석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저서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명문대일수록 정시보다 각종 수시모집으로 선발하는 비율이 높고, 수능시험은 해마다 쉬워지는 와중에 '차별화된 인재'로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끝도 없이 많다"면서 "(교과 외에도) 사회성이 높다는 걸 증명해 보이기 위해 학생회, 동아리, 운동부 활동에, 봉사정신이 투철하다는 걸 증명해 보이기 위해 굳이 방글라데시까지 가서 우물을 파기도 한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그냥 나열만 되면 안 되고 '스토리'가 있어야 한단다. 그래서 요즘 대치동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리 한 방향의 스토리에 맞춰 스펙을 설계해 준다"며 교육 현실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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