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효자’ 아마존·우버가 박수 못 받는 이유
  • 박형진 미국 통신원(시카고대 인류학 박사과정)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10 15:47
  • 호수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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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실업률에도 웃지 못하는 미국

한국이 ‘일자리 재난’ 상황에 빠진 사이, 미국은 전례 없는 고용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18년 만에 3%대로 떨어졌고, 청년실업률도 50여 년 만에 가장 낮은 9%대 수준이다. 이 통계는 2009년 금융위기 때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저학력, 저숙련 집단이 서서히 일자리를 되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호황을 누리는 데는 아마존·애플·구글·우버와 같은 테크 기업들의 약진이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미국은 완전고용 상태이거나 이를 넘어섰다”고 말할 정도다.

 

정작 미국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일자리 창출을 견인한 아마존과 우버, 이곳에 고용된 이들의 삶이 보여주는 풍경은 경제 관련 통계, 기업들의 주식가치가 보여주는 장밋빛 그림과는 묘하게 어긋나 보인다. 한국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인 고용 문제를 극복했는데, 미국인들은 왜 마냥 웃을 수 없는 것일까.

 

미국 시민들은 문득 필요한 물건이 생각날 때 습관적으로 아마존 애플리케이션(앱)을 켠다. 앱에서 추천 상품과 리뷰 등을 살펴본 뒤 결제 버튼을 누른다. 아마존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상품이 2일 내로 배송료 없이 배달되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연회비를 내고 프라임 서비스를 사용하는 회원들에게 자신들이 직접 취급하는 상품들에 대해 2일 내 무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넓은 미국 대륙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이틀 내에 손에 쥔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대목이다. 최근 아마존의 프라임 회원은 1억 명을 넘어섰다. 이는 미국 내 가구의 64%가 아마존의 프라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아마존은 미국인들의 삶에 깊숙이, 폭넓게 들어와 있다.

 

미국이 완전고용 상태에 가까운 고용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일자리 질은 떨어지고 있다. 5월1일 뉴욕에서 노동절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들 ⓒ EPA 연합


아마존의 배송 실험, 일자리는 늘렸는데…

 

아마존은 사업 초기부터 최근까지 미국 내 운송 전문업체인 UPS, 페덱스(Fedex), USPS 등에 배송업무를 위탁해 왔다. 그러나 최근 변화가 시작됐다. 서부 연안지역 및 대도시를 중심으로 아마존이 ‘직접’ 배송하는 택배가 늘어나고 있다. 노란 조끼를 입은 배송기사가 일반 봉고차 혹은 승용차를 타고 와서 물건을 배달한다. 아마존의 직원이 아닌 일반 개인들이다. 아마존의 간단한 배경 조사를 거친 ‘배송기사’들은 플렉스 앱을 통해 원하는 시간대, 원하는 지역을 할당받아 아마존의 택배 물품을 배달한다. 이들은 일한 시간과 배송한 택배 물품의 숫자에 따라 정해진 급여를 받게 된다. 아마존 플렉스는 자신들의 배송기사들이 시간당 18~25달러의 급여를 받는다고 광고하고 있다.

 

아마존이 전문 운송업체가 아닌 개인들을 고용해 배송에 나선 이유는 연간 50억 건에 달하는 택배 업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다. 배송 업무를 직접 관리·감독함으로써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아마존 플렉스와 전통적인 운송 서비스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배송기사들이 아마존과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라는 점이다. 이들은 회사 차량이 아닌 개인 차량을 이용해 배송 업무를 수행한다. 아마존 플렉스는 구인 광고에서 자신의 차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만 일하고, 상사의 간섭 없이 ‘스스로 보스가 되어’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음을 장점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월간지 아틀란틱(The Atlantic)의 알라나 새뮤얼즈는 아마존이 직접 배송업무에 나선 진짜 이유를 비용 절감에서 찾는다. 전통적인 운송 전문업체에서 부담하던 각종 비용과 부담을 배송기사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우선 아마존 플렉스의 배송기사들은 아마존의 피고용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직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이나 연금 등의 혜택에서 배제된다. 최저임금, 추가근무수당, 실업급여 등도 받을 수 없다. 근무 중 사고로 부상을 입거나 차량이 손상되어도 이는 전적으로 배송기사의 책임이다. 사실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의 특수고용직과 비슷한 양태다.

 

아마존 플렉스는 여러모로 라이드셰어링 서비스 우버(Uber)를 모델로 하고 있다. 직원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회사 차량과 기물 대신 개인사업자 소유의 차량을 사용하게 한다. 앱을 이용해 원하는 시간대와 지역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이러한 고용 모델은 지금의 우버를 있게 한 핵심이다. 이러한 고용 모델은 아마존 플렉스는 물론 각종 음식배달 서비스, 장보기 대행업체들이 차용하고 있다. 우버 역시 우버이츠(UberEATS)를 론칭해 음식배달 서비스에도 뛰어들었다. 이들 업체는 자사가 제공하는 유연한 일자리가 풀타임 일자리를 하면서 병행할 수 있는 시간제 일자리, 다른 정규직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인식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클릭 한 번’이 주는 편리함의 이면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최근 나온 통계 결과에 따르면, 뉴욕시에서 일하는 우버 및 다른 앱 기반 운전업 종사자 중 3분의 2 가까이가 다른 직업 없이 풀타임으로 우버 등을 운전한다. 이러한 추세는 아마존 플렉스 배송기사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나와 있지 않지만,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아마존 플렉스 기사 페이스북 그룹 운영자는 약 70~80%의 회원들이 풀타임으로 일한다고 소개했다. 

 

풀타임으로 아마존 플렉스나 우버를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언제든 원할 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장점이 아니다. 플렉스 배송기사들은 적절한 거리와 시간대의 일자리를 선점하지 못하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보상이 적은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원치 않게 집에서 쉬게 되고 돈을 벌 수 없다. 

 

우버 기사들 역시 시간 대비 높은 운임을 받기 위해서는 밤늦게 치안이 나쁜 지역으로 가야만 한다. 상당수 우버 기사들은 우버로 돈을 벌기 위해 차를 구매하거나 리스하기 때문에 (작년까지 우버는 우버 기사들을 위한 리스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차를 구매하거나 리스한 비용을 메워야 하는 이들 기사에게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아마존과 우버 기사들은 기업의 불투명한 정책결정 과정의 희생자가 되기 쉽다. 아마존 플렉스 기사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들의 계정이 정지된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우버 기사들은 자신이 모는 차가 하루아침에 고급형에서 일반형으로 재분류되어도, 특정 시간대의 운임이 바뀌어도 이를 사전에 고지받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가 생겼을 때 기사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우버나 아마존 고객센터에 전화해 문의하는 것밖에 없다. 문제를 상의할 상사도, 함께 항의하고 협상에 나설 직장 동료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운송업과 노동 문제를 연구하는 스티브 비셀리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자동화가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앞으로 수천 개의 배달 혹은 운전 관련 일자리가 더 생길 것으로 보인다. 기술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아웃소싱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정말 근본적인 문제는 일자리의 질”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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