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각료’ 프랑스 환경부 장관이 사표 던진 이유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11 14:17
  • 호수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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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거짓말할 수 없었다”…대통령 국정운영 방향과 달라

8월28일 프랑스의 환경부 장관인 니콜라 윌로(Nicolas Hulot)는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 도중 돌연 장관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주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행보였다. 그는 아내와도 상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퇴 소식은 모든 뉴스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됐고, 지지율이 내리막길을 걷던 마크롱 대통령에겐 최악의 악재로 작용했다. 


단순히 장관 하나가 자리를 떠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니콜라 윌로는 마크롱 내각 인사 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장관이다. 이미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환경운동가로,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물론, 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러브콜을 모두 받아온 인물이다. 장관직을 한사코 사양하던 그는 15년의 장고(長考) 끝에 “마지막 기회일 듯하다”며 지난해 마크롱 내각에 입성했다. 그리고 단 15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날 의사를 밝힌 것이다.

 

8월28일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히고 물러난 니콜라 윌로 프랑스 환경부 장관. 환경부 장관은 프랑스 내각 서열 3위지만 경제논리로 가득한 내각 안에선 줄곧 외톨이다. ⓒ AP 연합


프랑스 환경부 장관직은 ‘미션 임파서블’


사실 프랑스의 환경운동사는 그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우수아이아》라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프로그램을 제작·진행하면서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한 몸에 받아왔다. 1987년 프랑스 최대 민영방송인 TF1을 통해 첫 방송된 후, 그는 20년간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생태 현장을 소개했다.


방송을 통해 국민의 시선을 환경으로 돌리게 한 그는 방송을 떠난 후 방송 제목과 동명의 재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재단은 자신의 이름을 딴 ‘자연과 인간을 위한 니콜라 윌로 재단’으로 발전해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 중이다. 매년 프랑스 국민들이 뽑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 가장 좋아하는 인물 다섯 손가락 안에 빠짐없이 거론될 정도로 그는 국민적 신뢰도가 두터웠다.


원전 문제,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하며 그의 주가는 더욱 치솟았다. 특히 대선 시즌이 되면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모든 후보들이 그를 찾아가 지지를 요청했다. 그는 이 같은 구애를 역이용해 후보들 간 친환경적인 단일 공약을 영리하게 이끌어내기도 했다. 2012년 녹색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하기도 했으나, 쟁쟁한 경쟁자에게 패해 대선 진출은 좌절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대선 도전은 환경문제를 전국적으로 이슈화하는 데 오히려 더 큰 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화려했던 입각은 파격적인 사퇴로 마무리됐다. 대통령이나 내각의 수장인 총리에게 한마디 귀띔도 없이 방송에서 처음 사퇴의사를 밝힌 것이다. 당시 윌로가 출연한 방송의 진행자는 방송 1부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사퇴 기미를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발표였던 셈이다. 


그가 밝힌 사퇴의 변은 더없이 솔직했다.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재임 중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같은 방향이 아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 마크롱 정부 출범 이후 ‘원전 감축’과 ‘지구온난화 해결’을 위한 환경정책은 날로 후퇴일로를 거듭했다. 


윌로의 이번 사임은 가뜩이나 각종 스캔들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던 마크롱의 신뢰도 추락에 가속을 붙였다. 현재 마크롱의 지지율은 30% 선까지 주저앉았으며, 역대 같은 기간 중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서열 3위 환경부 장관, 내각에선 외톨이 신세”


프랑스에 환경부 장관직이 생긴 건 1971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 시절이었다. 퐁피두는 프랑스 산업화에 주력했으나 동시에 환경에도 관심이 많았다. ‘환경’이라는 단어도 생소했던 당시 환경부를 신설했고, 초대 장관으로 선이 굵은 정치인이었던 로베르 푸자드를 임명했다. 푸자드는 “나는 프랑스 국민들의 의식을 믿는다”며 자신이 추구하는 환경정책에 대해 강하게 낙관했다. 그러나 3년 후인 1974년 그는 환경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불가능한 장관》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그는 환경부 장관을 ‘불가능한 임무’라고 정의했다. 그 이유로 “전통적인 관료들의 관성”을 꼽았다. 초대 장관의 비관적인 회고록 이후로도 이는 개선되지 않았다. 1995년부터 3년간 환경부 장관으로 재직한 코린 르파주 역시 장관직을 물러난 후 회고록을 냈는데, 그 제목은 《장관님,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였다. 그는 “내각에서 환경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돈은 많이 들지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는 부처’였다”고 술회했다. 


좌파 정부였던 올랑드 내각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델핀 바토 환경부 장관은 환경부 예산삭감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물러났다. 그 역시 사임 후 낸 회고록에서 “대통령의 머리는 경제 세력들이 쥐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당시 프랑스 언론도 “환경부 장관은 내각에서 대표적인 외톨이 신세”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지난 20년간 총 13명의 환경부 장관이 임명됐고 이내 자리를 떠났다. 이들의 재임 기간은 평균 1년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사실 프랑스 내각에서 환경부 장관은 서열 3위다. 총리 다음으로 가장 높은 자리다. 그러나 실제는 허울뿐인 서열이며 실권 없는 명예일 뿐이다. 사퇴한 윌로는 “기업들의 각종 로비를 견딜 수 없었다”고도 고백했다. 이러한 고백에 마침표라도 찍듯 9월4일 이임식에서 그는 “경제와 환경 사이에서 나는 실패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윌로의 사임 후 마크롱 정부가 선택한 카드는 프랑수아 드 뤼지 하원의장이다. 40대에 하원의장 자리에 올라 화제가 된 그는 녹색당에서 출발해 마크롱이 이끄는 집권당 앙마르슈에 합류했다. 무게감 있는 인사였지만 시작부터 반대 진영의 혹독한 비판에 직면했다. “무늬만 녹색당인 정치인”이라는 평가다.


윌로는 자신의 이임식 자리에서 “그럼에도 감히 유토피아를 꿈꾸고 감히 미션 임파서블을 가능케 하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내각을 떠나 새로운 자리에서 이러한 꿈을 이어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의 외침은 벌써부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윌로가 사임하던 그날 아침, 알랭 들롱·줄리엣 비노쉬 등 프랑스 영화계 인사를 비롯해 전 세계 유명 예술인 200여 명은 프랑스 언론 르몽드를 통해 환경문제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환경부 장관직을 던지고 나온 니콜라 윌로의 진정한 도전은 이제 다시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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