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남 대담아트센터 관장 “지역 축제, 民이 주도하는 문화 행사 돼야”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09.14 14:31
  • 호수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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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네방네미술관’으로 주민과 소통하는 정희남 대담아트센터 관장

 

가을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축제를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특산물이나 지형을 토대로 열리는 축제, 인위적으로 상징물을 만들어 개최하는 축제도 있다. 관람객들의 만족도와 콘텐츠의 독창성, 수익성 등이 지역 축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지만, 그에 앞서 지역 특색을 살리고 현지 주민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희남 대담아트센터 관장이 “지역 축제는 민(民)이 주도하고 관은 뒷받침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정 지역의 고유한 지역적·문화적 색채를 유지하고,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전남 담양군 향교리에 있는 대담아트센터는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10년 건립된 ‘커뮤니티 뮤지엄(Community Museum)’이다. 국내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죽녹원 근처이자, 영산강 상류 관방천과 대나무밭 사이에 놓인 이 아트센터는 지역 할머니들을 화가로 키우고, 전남의 젊은 작가들을 엄선해 전시 기회를 주는 등 지역사회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이렇게 운영을 이어온 대담아트센터의 ‘竹竹方方(쭉쭉빵빵) 동네방네미술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지역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2018년 문화가 있는 날 지역문화 콘텐츠 특성화 사업’의 민(民) 주도 사업자로 처음 선정됐다. 9월28일에는 ‘징검다리 축제’라는 이름으로 지역민과 관람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정 관장은 “지금까지 지역 주민들과 쌓아온 유대감을 바탕으로 주민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 축제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정 관장과의 일문일답. 

 

© 시사저널 고성준


 

관광 명소 근처에 문화 공간을 운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담양은 대나무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지역의 지속 가능한 성공을 이어가려면 문화 콘텐츠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것과 옛것, 지역적으로도 도시와 시골을 연결하는 ‘올드 앤 뉴(Old and New)’의 조화를 문화 공간을 통해 이루고 싶었다.” 

 

미술관으로는 독특하게 지역사회와 연계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아트센터는 전시 기능을 넘어 지역 주민들이 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공모를 통해 전남과 전북의 젊은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주고 있고, 음악회나 토크쇼 등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도 열고 있다. 대담아트센터를 세우고 8년 동안 담양군 향교리와 주변 마을 어르신들을 상대로 미술 교육도 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지역 주민이 모두 참여하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1층은 미술관과 카페가 공존하는 복합 문화 공간, 2층은 다양한 강좌와 행사가 열리는 ‘열린 공간’이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미술을 교육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 그림에 어려움을 느끼셔서, 신문이나 잡지에서 먹고 싶은 것을 오려 붙여 작품을 만드시라고 했더니 굉장히 즐거워하셨다. 자체적으로 한복을 입는 패션쇼를 열거나, 영정사진을 찍어 드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미술에 대해 어려움을 느꼈던 70~80대 어르신들이 이제는 스스로 ‘향교리 화가’라고 하신다. ‘화가’들은 전남 신안이나 보성 등 다른 지역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직접 교육을 진행하시기도 했다.”

 

일반인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하나.

 

“초·중·고교생들이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티셔츠 등에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도 있고, 자기 자신을 타일에 표현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일명 ‘Who am I’ 프로젝트로,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발견하기 위함이다. 그 외에도 부부나 연인, 가족들이 찾아와 타일에 그린 그림을 나눠 가지며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전남 담양군 향교리 주택가에 마을 주민들이 그린 작품이 걸려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지역 주민들의 작품을 결과물로 전시한다는 점도 독특하다. 어떤 작품이 전시되나.

 

“어르신들이 타일에 그린 그림들을 각자의 집 앞에 붙여 전시해 놓고 있다. 향교리 집 앞 ‘한켠 갤러리’다. 투박한 문패에도 색을 입혔다. 어르신들의 그림에는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남편에 대한 애정 등이 담겨 있다. 할머니들은 맞춤법이 틀린 글도 직접 그림 옆에 쓰신다. 그 문구에도 삶의 관록과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비가 오고 해가 뜬께 무지개가 있는 거여.’ 직접 쓰신 문구다. 얼마나 멋진가.”

 

특히 이번에는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는 축제를 직접 기획했다. 

 

“9월28일 열리는 ‘징검다리 축제’는 매월 진행되는 ‘문화가 있는 날’을 맞이해 지역을 알리는 축제로 기획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지역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지역 문화 콘텐츠 특성화 사업이다. 다른 지역은 시나 군 단위로 선정됐는데, 유일하게 민 주도로 선정한 게 특징이다. 징검다리의 의미는 따로 떨어진 땅을 이어주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뜻이다. 관방천의 징검다리와 죽녹원 등 자연경관을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 공연을 보여주고, 미디어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각종 행사들과 밴드 공연 등을 통해 ‘함께 즐기는 지역 축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기획을 맡았다.”

 

지역 축제는 보통 관 주도로 진행한다. 민 주도로 운영하는 축제를 추진한 배경은.

 

“지역 축제가 대부분 관(官) 주도로 이뤄진 터라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주민 복지’, 주민들의 즐길 거리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부작용이 있었다. 각 지역의 축제는 해당 지역 주민이 주체가 돼야 한다. 특히 지역 주민들과 함께 그 지역의 특색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향교리 어르신 화가’들을 비롯,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늘렸다.”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행사는 어떤 것들이 있나.

 

“축제 때마다 난립하는 떼거리 음식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직접 이곳의 재료로 만든 음식을 판매한다. 죽순빵과 같은 담양의 특산품, 대나무로 만든 수공예품을 비롯해 어르신 화가들이 그린 작품도 머그컵이나 에코백 등으로 만들어 판매할 것이다. 지역 축제를 기반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 효과도 돌아가길 바란다.”

 

궁극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이뤄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지역 주민들을 화가로 키우고 그들이 그린 작품을 전시해 ‘향교리 마을’이라는 또 하나의 작품이 탄생했다. 주민센터 건물 위에도 작품을 배치했다. 지역을 활성화하고 지역 축제를 유치하는 데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주체는 그 지역의 주민들이다. 전국 각 지역에 문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작은 예술 공간들도 많으니, 서로가 보완할 수 있는 역할들을 해 주길 바란다. 대담은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접목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다. ‘동네방네미술관’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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