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경제는 현장이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17 09:11
  • 호수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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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청와대 집무실 벽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참모들 앞에서 터치스크린 형태로 설치된 상황판을 직접 시연해 보이고 난 후 만족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1년3개월여가 지난 지금, 대통령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졌고 일자리 개선에 ‘신의 한 수’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상황판은 도리어 야당의 표적이 되었다. 야당들은 앞다퉈 일자리 상황판은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고 비판하며 상황판 운영의 실제를 공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된 상황판에 지금 어떤 수치들이 입력되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현재의 경제지표들이 당시와는 다르게 크게 악화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 들어 경제와 관련해 들려오는 소식들은 대부분 우울하다. 최저임금이 남긴 앙금은 여전히 큰 덩어리로 경제 저변에 깔려 있고, 생산·소비·투자 등의 지수 또한 좋지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에 더해 부동산 시장은 눌러도 눌러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하나같이 먹고살기가 고단한 서민들로서는 답답한 상황들이다.

 

ⓒ pixabay

 

 

일자리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사실은 통계가 아니라 집 앞 공터만 나가 봐도 선연하게 드러난다. 한창 일할 시간에 공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 모습을 보는 일이 이젠 드물지 않다. 청년·노인 가릴 것 없이 일자리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이들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고용 쇼크’라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재정을 집중 투입하겠다고 하지만 얼마나 효과를 낼지 의문스럽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재정 투입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일자리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만큼 추후 더 큰 실업 난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와 같은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는 일자리 만들기 못지않게 일자리를 지키고 키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 돈을 풀어서 아무리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도 영속성이 떨어지면 장기적으로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대기업의 고용 확대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우리 경제의 허리를 떠받치고 있는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의 기를 살려 그들이 고용 창출에 앞장서도록 길을 터주는 일이 시급하다.


경제는 통계 이전에 현장에서 손끝에 만져지는 실물로 이해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눈앞의 고용 지표에 몸 달아 땜질 처방에만 몰두하면 현장 경제는 시간이 흘러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크게 망가지게 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은 경제에서만큼은 ‘현장 중심’이 되어야 옳다. 


“경제가 만사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이 말이다. 경제 앞에서 더 겸허해져야 하는 것이 정부·여당의 도리이고 숙명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가 최근의 고용 현황에 대해 “경제 체질이 바뀌며 오는 통증”이라고 한 것은 매우 적절치 않은 표현으로 보인다. 경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바뀐 경제 체질을 탓할 게 아니라 그 바뀐 체질에 맞춰 정책을 개발해 내는 것이 정부의 할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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