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⑧] 임기 없는 경제 권력 삼성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8.09.17 16:01
  • 호수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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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분야, 2000년대 이후 불변의 1위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순위 대물림

세계 유수의 유력 언론은 매년 주요 인사의 영향력을 평가한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인사
(The 100 Most Influential People)’를, 경제잡지 ‘포춘’과 ‘포브스’는 ‘세계 위대한 리더 50인(The World’s 50 Greatest Leaders)’과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인물(The World’s Most Powerful People)’을 조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시사저널이 매년 실시하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가 대표적이다. 이 조사는 시사저널이 창간된 1989년부터 매년 실시되고 있다. 이 조사를 보면 지난 29년간 한국 사회가 어떤 질곡을 거쳤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올해 역시도 시사저널은 전문가 1000명에게 지금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지 물었다. 조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국내 최고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에 맡겼다.

결과를 놓고 보면 우리 정치·경제·사회·문화는 여전히 ‘격동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탄핵정국과 장미 대선을 거쳐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최근 국내외 여러 곳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런 와중에 2인3각 경기처럼 호흡을 맞춰야 할 정책 부처는 혼선을 거듭하면서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가 ‘기대’였다면 올해 ‘실망’으로 돌아선 의견도 있다.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2018년 지금,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일까.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인물이 맞을까. 한 페이지를 넘겨보면 그 답이 나온다.

 

 

그동안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는 언제나 대통령 차지였다. 대통령제로 운영되는 한국 특성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 보니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는 대통령 임기에 따라 변동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순이었다. 

 

반면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및 경제관료’ 1위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서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1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69.1%라는 압도적인 지목률로 1위에 올랐다. 시사저널이 매년 실시하는 ‘차세대 리더’의 결과도 같다. 조사가 처음 시작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째 이 부회장이 1위를 지켜오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부회장 출소 이후 경영 보폭 넓혀


이재용 부회장이 10위권에 처음 진입한 것은 2014년이다. 이전까지는 이건희 회장이 불변의 1위였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회장직을 내려놓은 뒤에도 순위 변동은 없었다. 2013년에는 지목률이 90%를 넘기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2014년 5월 이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후계자로 지목된 이 부회장이 4위로 순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이 회장의 와병이 길어지면서 이 부회장의 순위는 꾸준히 올랐다. 2015년 이 부회장의 지목률은 41.6%로 이 회장(41.9%)에게 근소한 차로 뒤져 2위에 올랐고, 2016년 조사에서 처음으로 1위(60%)에 올랐다. 


지난해 1위도 어김없이 이 부회장이었다. 다만 지목률은 47.6%까지 낮아졌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돼 지난해 2월 구속 기소됐고, 같은 해 8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것이 지목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삼성은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도 해체된 상황이어서 각 계열사들은 자율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삼성 안팎에선 이 부회장의 부재로 신(新)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기업 인수·합병(M&A) 등 대규모 투자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아 글로벌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올해 2월 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나면서 지목률은 다시 올라갔다. 이 부회장은 이후 신성장동력 발굴에 주력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의 몸이 된 직후부터 핵심 사업부문 임원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고, 3월말부터는 연이어 해외출장길에 나섰다. 해외출장 대부분은 ‘미래 먹거리’ 발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유럽·캐나다 출장은 인공지능(AI) 관련 시설 방문, 중국 출장은 전기차·스마트폰 업체 대표 면담, 일본 출장 때는 자동차 부품업체 대표들을 만났다. 이후 삼성전자는 영국·캐나다·러시아에 AI 연구센터 설립 계획을 내놨고, AI 스타트업 투자를 위한 ‘넥스트 Q 펀드’도 발족시켰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방안도 고심했다. 그 일환으로 이 부회장 석방 이후 삼성전자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 8000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10년 이상 지속돼 온 ‘반도체 백혈병’ 논란과 관련해 중재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정도 내렸다. 삼성그룹의 사실상 총수인 이 부회장에게 쏠린 안 좋은 여론을 추스르기 위함으로 보인다. 투자·고용·동반성장을 위한 대규모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당초 투자안에는 중장기 100조원 신규 투자와 하반기 채용 확대 등이 담길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삼성은 ‘3년간 180조원 투자와 4만 명 직접 채용’ 계획을 내놨다. 기존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처럼 이 부회장은 경영 보폭을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어서다. 법조계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8월24일 항소심 판결이 이 부회장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그룹 승계 작업과 관련한 묵시적이고 부정적인 청탁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정유라씨를 위한 말 지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16억2800만원)이 ‘뇌물’로 뒤바뀌었다.


이는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의 해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승계 현안은 없었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도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액이 36억원으로 줄었다.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판결대로라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액은 86억원까지 늘어난다. 횡령액이 50억원을 넘기면 5년 이상의 형이 선고될 수 있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이 부회장에게 선고된 집행유예 4년이 유지될 수 있을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왼쪽부터)김동연 경제부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장하성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 시사저널 박은숙

 

경제관료 10위권 내 4명 포진…약진 두드러져

 

올해 경제인 조사에서는 경제관료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역대 조사 결과를 보면, 대개 정권 초기엔 경제관료들의 영향력이 컸던 게 사실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취임 첫해인 지난해에는 경제관료가 유독 강세를 보였다. 10위권 내에 무려 4명이나 포진한 것이다. 역대 최다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제관료들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먼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위를 지켰다. 지목률은 31.7%로 지난해(23.7%)보다 증가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지난해에 이어 3위(7.5%)에 올랐다. 지난 조사에서 경제부총리(장관), 한국은행 총재 외에 간혹 금융위원장, 청와대 경제수석(특보) 등이 순위에 이름을 올린 경우는 있었지만, 공정거래위원장이 10위권 내에 진입한 것은 김 위원장이 유일하다. 김 위원장은 대학교수 시절부터 ‘재벌 저격수’로 불려온 인물이다. 그런 김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위상이 크게 올라간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을 맡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돼 왔다. 이 밖에 장하성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도 지난해 10위(2.6%)에서 올해 4위(6.9%)로 순위가 급상승했다. 그는 김 부총리와 경제정책 투톱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0%의 지목률로 9위에 올랐다. 

ⓒ 시사저널 미술팀


구광모 LG 회장 새로 10위권 내 진입 

경제관료들이 강세를 보이긴 했지만 재벌가 총수들의 위상도 여전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올해 5위(4.6%)에 올랐다. 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7위(3.8%)였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8위(3.2%)로 그 뒤를 이었다. 재벌가 인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번에 처음으로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구광모 LG 회장(6위·4.5%)이다. 순위에 변동이 생긴 것은 올해 5월 구본무 LG그룹 회장(10위·1.1%)이 영면에 들면서다. 이로 인해 구광모 회장은 올해 6월29일 주주총회에서 LG 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70개 계열사를 거느린 연매출 160조원의 글로벌 그룹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구 회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당장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시장의 불신을 불식시켜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 그동안 경영수업을 받아오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당연히 경영능력도 검증되지 않았다. 다행히 LG그룹 주요 계열사는 호실적을 내는 등 순항 중이다. LG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연매출 60조원을 돌파했고, LG화학과 LG생활건강은 지난해 사드 악재에도 최대 경영실적을 냈다. 

그러나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LG전자에서 스마트폰 등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는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적자를 기록했고, 백색가전·디스플레이·배터리 등은 모두 성장 정체기에 진입했다. 글로벌 경영환경도 좋지 않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로 LG전자의 수출이 타격을 받았다. LG디스플레이도 최근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올해 1분기 6년 만에 영업적자를 냈다. LG화학의 배터리 분야도 경쟁 심화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향후 구 회장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존 주력사업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바이오·에너지·전장부품 등 신수종 사업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 과정에서 구 회장은 신수종 사업 발굴 및 육성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4년 임원으로 승진한 이후 신사업 발굴 작업에 주력해 온 바 있어 향후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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