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된 히틀러의 고향 린츠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연구실 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2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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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오스트리아 '린츠', 산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유럽에서는 매년 ‘문화수도’라는 것을 정한다. 유럽연합 회원국 도시 중 몇 곳을 지정해 1년 동안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장려하는 프로젝트다. 1985년에 아테네가 최초의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된 이래, 현재까지 약 60여개의 도시가 유럽문화수도의 영예를 안았다.

 

그 과정을 빛나게 한 것은 린츠만의 색깔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그것은 때로는 역사이기도, 미래적인 기술이기도 했다. 도나우 강변의 야경을 수놓는 화려한 문화시설들의 불빛 아래로, 히틀러가 꿈꿨던 문화도시 린츠의 설계도가 어른거리고 철강회사의 압도적 경관이 겹쳐 보였다. 그제야 비로소 린츠라는 도시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 있었다.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그 어떤 유명도시보다 ‘문화’의 힘을 온전히 실감할 수 있던, 묘한 경험을 선사하는 도시였다.

 

 

도나우강이 흐르는 린츠 시의 풍경 ⓒ김지나

 

 


히틀러가 계획한 문화도시

 

오스트리아의 린츠는 2009년에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됐다. 린츠는 유럽문화수도 중에서도 과학과 예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도시브랜드를 갖춘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히틀러가 유년기를 보낸 도시’로 린츠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실제로 ‘히틀러’와 ‘나치’는 린츠에 있어서 절대 지울 수 없는 과거다. 린츠는 히틀러가 제3제국의 문화중심지로 낙점했던 도시였다.

 

나치는 린츠에 거대한 문화지구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는 오페라하우스, 호텔, 극장, 도서관, 갤러리 등 각종 문화시설들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곳을 채우기 위해 제2세계대전 동안 전 유럽에서 문화예술 작품들을 강탈해왔다. 가끔은 히틀러가 사비를 털어 사기도 했다니, 문화도시에 대한 그의 꿈이 결코 사소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린츠는 이런 역사를 굳이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린츠를 알리는 스토리로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2009년 당시 유럽문화수도 프로그램의 메인 테마 중 하나가 ‘20세기의 역사’였는데, 린츠가 겪어내야 했던 국가 사회주의와 나치의 문화정책에 대한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작년에는 히틀러가 린츠 시에 기증했다는 아프로디테 조각상을 박물관에서 전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 조각상은 한 나치 조각가가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만든 것으로, 2008년에 철거되기까지 시내 공원에 전시돼있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한동안 박물관에 보관돼 있기만 하다가 작년에서야 전시 결정이 난 것이다. 다만 조각상에 얽힌 자세한 설명을 함께 기록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린츠에 본사를 두고 있는 철강회사 푀슈탈핀(Voestalpine) 홍보관 내부에는 철강생산 공장의 모습과 함께 도시의 풍경사진을 포토샵으로 합성해놓은 거대한 사진이 있다. ⓒ김지나

 

 

 

린츠는 철강 산업으로 유명하다. 한 때 린츠가 유럽의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철강 산업 덕분이었다. 이 역시 나치정권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니, 나치의 유산이라면 유산이다. 세계적인 철강회사인 푀슈탈핀(Voestalpine)의 본사가 1938년 린츠에 자리를 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도시로 재도약 중이지만 아직까지 철강 산업은 린츠의 중요한 경제기반이자, 도시를 장악하는 풍경이다. 푀슈탈핀의 거대한 공장지대는 마치 도시 속의 도시 같은 모습을 그려내며 그 위상을 과시하고 있었다.

 

철강 산업을 바탕으로 크게 번성했지만, 린츠는 칙칙하고 오염된 산업도시라는 오명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문화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 첫 번째가 ‘브루크너하우스(Brucknerhaus)’의 건축이었다. 이것은 오스트리아의 세계적인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공연장이다. 차례로 야외 조각전시, 디자인 전시 등이 열리며 시민들의 문화향수를 북돋았다. 1979년이 되면 세계 최초의 미디어아트 축제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Ars Electronica Festival)’이 개최되기에 이른다. 매년 9월에 열리는 이 페스티벌은 올해로 3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린츠가 문화도시로 변신을 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도나우강의 야경. 미디어아트 관련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Center)가 보인다. ⓒ김지나

 

 

 

주변 도시와 차별화된 린츠만의 색

 

오스트리아에는 비엔나, 잘츠부르크와 같이 문화예술로 유명한 전통적인 도시들이 많다. 린츠는 지리적으로도 비엔나와 잘츠부르크 사이에 끼여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린츠의 문화전략은 이들과 확실히 다른 결을 보여준다. 귀족 중심으로 향유됐던 고급문화 대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을 추구한 결과다.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것들을 강조한 것이 20세기 산업도시의 화려한 부활이라는 목표와도 맞아떨어진 듯 했다.

 

그 과정을 빛나게 한 것은 린츠만의 색깔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그것은 때로는 역사이기도, 미래적인 기술이기도 했다. 도나우 강변의 야경을 수놓는 화려한 문화시설들의 불빛 아래로, 히틀러가 꿈꿨던 문화도시 린츠의 설계도가 어른거리고 철강회사의 압도적 경관이 겹쳐 보였다. 그제야 비로소 린츠라는 도시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 있었다.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그 어떤 유명도시보다 ‘문화’의 힘을 온전히 실감할 수 있던, 묘한 경험을 선사하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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