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식물이 ‘문화’가 될 수 있을까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연구실 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2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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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내년 5월 개장으로 서울의 새 랜드마크 될 ‘서울식물원’

10월11일, 서울 마곡동은 서울식물원의 임시 개장으로 떠들썩했다. 개장 첫날부터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더니, 주말에는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서울식물원은 인기폭발이었다. 서울시민들이 식물에 이렇게 관심이 높았던 것일까. 아니면 새로 생긴 공원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일까. ‘서울 서남권에 처음으로 생긴 대규모 공원’이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서울식물원은 그동안 미처 충족되지 못했던 사람들의 니즈를 제대로 건드린 듯 했다. 

 

10월11일 임시개장 당시 공개된 서울식물원의 온실 내부 ⓒ김지나

 

 

 

 

식물원은 자연에 대한 도시의 포용력

 

서울에 식물원이 생겼다는 소식이 이렇게 화제가 되는 것을 보고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질문은 ‘그동안 서울에 식물원이 없었나?’였다. 물론 있었다. 가장 먼저, 일본에 의한 오랜 치욕의 역사를 상징하는 창경궁의 식물원을 떠올릴 수 있겠다. 남산에도 90년대에 만들어진 야외식물원이 있다. 어린이대공원, 관악산공원, 서울숲과 같이 큰 공원 내에 조성된 식물원들까지, 크고 작은 식물원들이 서울 곳곳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서울을 대표한다고 할 만한 식물원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물원들을 보면 그 자체로 도시의 중요한 랜드마크다. 뉴욕의 브룩클린 식물원, 런던의 큐 왕립 식물원, 싱가포르 식물원, 몬트리올 식물원, 덴버 식물원, 뮌헨 식물원, 시드니 왕립 식물원, 교토식물원 등, 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식물원들이 도시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대개는 도시의 지명을 식물원에 그대로 사용해서 대표성과 상징성이 더 강조된다. 여러 여행 관련 기사에서는 ‘세계 10대 식물원’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하고, 그 도시의 시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발길을 끌고 있는 곳들이다.

 

서울식물원의 호수원. 호수 주변으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김지나

 

 

 

서울에는 그동안 그런 식물원이 없었다. 서울식물원에 대한 기대가 그래서 더 크다. 그저 도시 안에 나들이 갈만한 명소,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 하나 더 늘었다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식물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그 도시의 포용력과 지적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식물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여러 가지 다양한 식물들을 보존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교육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들고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런 부담을 도시가 용인한다 함은 곧 그 도시에 사는 시민들이 식물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는 시민의식이 있다는 뜻이 된다.

 

원래 서울식물원은 계획 단계에서 마곡중앙공원이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불리다가, 명칭공모전을 거쳐 ‘서울 보타닉파크’로 정식 명명되었다. 이것에 해당되는 한국어 이름이 ‘서울식물원’인 점이 특이하다. 식물원은 통상 ‘botanical garden’, 혹은 ‘botanic garden’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서울식물원은 ‘Seoul Botanic Park’다. 식물원과 공원이 합쳐졌다는 콘셉트에 따른 이름이었다. 식물원이 마치 공원처럼 편안한 여가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고, 공원이지만 식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얻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 

 

내년 5월 정식개장을 앞두고 있는 서울식물원. 시민들의 관심을 부탁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김지나

 

 

 

 

일상의 영역에 머무는 식물원

 

필자가 전 세계 모든 식물원을 다 가본 것은 아니지만, 해외도시에서 경험했던 식물원의 모습은 식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온실과 같은 특수한 시설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공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민들이 가볍게 산책을 나오고, 가족이나 연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식물원을 찾는다. 입장료가 있는 곳은 회원제를 운영하기도 한다. 그만큼 식물원을 가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임시개장을 했을 뿐이지만 서울식물원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밤늦게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서울식물원이 공원으로서 사랑을 받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식물원으로서는 어떨까. 

 

아무리 공원 같은 식물원이라지만, 식물원으로서 관리돼야 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실제로 식물원의 역할을 가장 많이 담당하는 온실과 주제원은 운영시간도 다른 구역들과 차이가 있고, 앞으로 이 구역만 유료로 운영될 가능성이 점 쳐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식물 보호를 위해 피크닉을 하거나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일이 금지된다. 온실과 주제원이 식물을 전시하고 보존, 교육한다는 식물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그러면서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공원으로서 이용하려면 그러한 분리전략은 오히려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다면 식물원과 공원은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이 공원의 배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원을 가는 동기가 되고 공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돼야 한다.

 

‘식물, 문화가 되다’는 서울식물원이 내걸고 있는 슬로건이다. 그 말대로, 식물을 배우고 즐기는 것이 서울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길 기대해본다. 그랬을 때 서울식물원은 이름뿐만 아니라 정말로 서울을 대표하는 식물원으로 성장할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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