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단둥 현지 르포④] 자정 넘어 새벽까지 불 밝히는 북한식당
  • 중국 단둥=김지영 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8.11.02 14:54
  • 호수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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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종업원, ‘南조선 손님’ 손잡고 춤추기 제안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일대에서 영업 중인 북한식당. 여기선 ‘한반도 정세’가 어떤지 몸소 체감할 수 있다. 남북관계를 측정하는 온도계 눈금에 따라 북한식당 여성 복무원(종업원)의 ‘남조선 손님’ 대하는 말투와 자세가 확연히 달라진다. 남북관계가 비교적 원만할 땐 한국 손님을 반갑게 맞는 편이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냉각되면 그 냉기가 북한식당에도 고스란히 전이된다.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 경색국면에 들어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북한식당 종업원들은 음식 주문만 받았다. 한국 손님과 좀처럼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싸늘한 눈빛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광명성 로켓 발사 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 당시 우리 정부는 ‘북한식당 출입 자제령’을 내렸다. 북핵 실험에 대한 대응 조치 가운데 하나였다. 그해 3월, 관광객을 가장한 취재진은 단둥의 한 북한식당을 찾았다. 북한식당에서 매일 열리는 저녁 공연 장면을 사진 찍자 여종업원이 급히 다가와 제지했다. “사진을 찍으시면 안 됩니다”라며. 취재진은 “예전엔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은 왜 못 찍느냐”고 가볍게 항의했다. 하지만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라는 말만 되돌아왔다. 이미 찍은 사진을 삭제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그렇게까지 냉랭하진 않았다.
 

요즘 중국 단둥의 북한식당은 자정 넘어 새벽까지 문을 연다. 사진은 단둥의 한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이 춤 공연을 하는 모습 ⓒ 시사저널 송창섭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식당이 변했다. 올해 들어 남북 정상회담이 세 차례 열렸고 4차 회담도 예정돼 있다. 휴전선 일대 군사 긴장도 대폭 완화되고 있다. 그 훈풍이 해외 북한식당에도 스며든 것이다. 한국 손님 대하는 태도가 2년여 전과 사뭇 달라졌다. 대화는 물론 함께 노래하며 손잡는 것도 스스럼없어졌다.

북·중 최대 교역 창구인 중국 단둥(丹東) 일대엔 현재 북한식당 10여 곳이 영업 중이다. 북한이 직영하는 곳도 있고 중국인과 합자한 곳도 있다. 북한식당도 여느 식당과 마찬가지로 영업실적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 인근 압록강변에 있던 대형 북한식당 ‘평양고려관’은 손님이 줄면서 문을 닫았다. 반면 단둥 신(新)도시인 국문만(國門灣)에 ‘평양특산물식당’이 새로 문을 열어 성업 중이다. 한국보다 반일(反日) 감정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이 최근 단둥에 초밥 뷔페식당을 열기도 했다. 1인당 199위안(약 3만3000원, 술값은 별도).

 

최근 중국 단둥시에 신장개업한 북한식당 ⓒ 시사저널 송창섭


손님 줄어 문 닫기도…신장개업한 곳도 있어

북한식당은 일반 중국식당에 비해 음식 가격이 3배 이상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음식이 정갈하고 식당 위생 상태가 좋아 중국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도 관광명소처럼 들른다. 무엇보다 매일 오후 6시30분에서 7시까지 30여 분 동안 진행되는 공연은 북한식당에서만 즐길 수 있는 볼거리. 북한과 중국 가요, 《새 타령》 등 우리 민요, 춤과 악기 연주가 이어진다.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로 막을 올리고 《다시 만나요》로 막을 내린다.

최근 들어 북한식당의 가장 큰 변화는 ‘영업시간 연장’이다. 북한식당은 ‘공식적으로’ 매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11시까지 12시간 영업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저녁 11시가 넘어서도 불 밝히고 영업을 계속한다. 손님만 있으면 새벽 1~2시까지도 영업한다.

지난 10월24일 저녁 9시경 취재진은 한국인 관광객처럼 압록강변에 있는 북한식당 ‘봉선화’를 찾았다. 여종업원은 한국 손님들을 ‘룸’(노래 기기가 설치된 방)으로 안내했다. ‘동무’라고 서로 칭하는 여종업원들은 손님들에게 노래와 춤을 ‘봉사’한다. 여종업원들은 노래방 기계에 입력된 북한 가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등 ‘수령님(김일성 주석)’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 ‘원수님(김정은 국무위원장)’ 찬양 노래를 불렀다. 화면은 백두산과 평양시 등 홍보 영상물로 채워졌다. 한국 노래로는 《두만강》 《고향의 봄》 《홀로 아리랑》 등 비교적 옛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 ‘남조선 손님들’에게 무대(?)로 나오라고 하더니 손을 스스럼없이 잡고 노래를 불렀다. 여종업원이 먼저 ‘가벼운 춤’을 제안하기도 했다. 남쪽 사람들에 대한 반감 내지 거부감이 그만큼 사라졌다는 방증이다. 한편으론 ‘외화벌이’에 더 적극 나섰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정치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정색하며 대응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북한 고급 담배인 ‘727’에 대해 취재진이 웃으며 “(1953년 7월27일) 휴전한 날을 담배 이름에 붙인 것이냐”고 물었다. 여종업원은 대뜸 굳은 표정으로 “아닙니다. 우리가(북한이) 전쟁에서 이긴 날입니다”라고 응대했다. 담배 값은 100위안(1만6000원). 상당히 비싼 편이다.

북한식당도 업소마다 영업방침이 조금씩 다르다. 영업시간을 비롯해 실내 흡연 가능 여부, 종업원의 손님 접대 방식 등에서 차이가 난다. 2층 건물에 1층만 100평 규모로 단둥에서 가장 큰 북한식당 ‘류경식당’. 이곳은 여느 북한식당과 달리 실내 흡연이 금지돼 있다. 종업원들 표정도 경직돼 있었다. 그래선지 10월25일 저녁 8시도 안 돼 식당이 한산했다. 손님들로 북적였던 몇 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썰렁했다.


“조국 위해 봉사…힘든 줄 모른다”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은 주로 평양에서 파견 나온 엘리트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식당에서 공연하거나, 일부 음식을 직접 만들고 손님 시중을 드는 이들 대부분은 20대 초반이다. ‘조국’(북한인은 북한을 ‘조국’ 혹은 ‘조선’으로 부른다)의 외화벌이를 위해 3년간 유효한 비자를 받고 중국에서 일한다. 그런데 여종업원 숫자가 점점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단둥 현지의 한 한국인 사업가는 “중국 정부가 북한식당 종업원들 비자를 신규로 발급해 주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종업원 수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사업가는 “북·중 관계가 다시 가까워졌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북한 종업원 비자를 다시 발급해 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들 여종업원은 개인행동이 일절 금지돼 있다. 외출도 최소 2인1조로 가능하다. 그만큼 관리·감독이 철저하다. 단둥의 한 북한식당 여종업원은 평양냉면 먹는 법을 손수 알려주기도 했다. 냉면 육수에 겨자를 풀고 면발을 젓가락으로 들어 식초를 뿌린 후 한데 섞어 먹어야 맛있다고 설명했다. 이 종업원은 “매일 오전 11시30부터 밤 10시까지 ‘봉사’한다”며 “쉬는 날은 특별히 없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쉬지 않고 일하면 힘들지 않냐”고 묻자, 북한 억양으로 “조국을 위해 봉사하기 때문에 힘든 줄 모릅니다”며 옅은 웃음을 보였다.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한국 손님을 반갑게 맞이할 땐 남북 기상도(氣象圖)가 대체로 맑을 때다. 반대로 한국인을 냉대할 땐 남북관계 역시 한겨울이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쾌청하다. 요즘 북한식당에서 ‘남조선 손님’을 환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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