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증오와 병적 집착이 부른 가족의 몰살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05 14:43
  • 호수 15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 일가족 살해 사건 전말…철저하게 계획하고 실행

부산시 사하구 장림동의 한 아파트에는 일가족 4명이 살았다. 가장인 조아무개씨(65)는 아내 박아무개씨(57)와 함께 어머니 박아무개씨(84)를 모셨다. 조씨 부부의 딸(33)도 함께 살았다. 여느 가족과 다르지 않게 평범했던 이 가족은 한날한시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고 말았다. 

 

박씨의 사위인 A씨는 10월27일 광안리에서 열리는 불꽃축제를 장모와 함께 보기로 약속했다. A씨 집에서 불꽃축제가 잘 보이기 때문에 이틀 전인 25일부터 장모를 모실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이날 오전부터 장모와 함께 사는 처남 조씨 내외에게 수 십 차례 연락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 

 

ⓒ 일러스트 정재환



범행 한 달 전부터 준비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이렇게 가족이 한꺼번에 연락이 안 된 적이 없기 때문에 걱정하는 마음은 더욱 커졌다. A씨는 직접 처가를 찾아갔지만 문이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불도 꺼져 있었다. 인터폰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려봐도 집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혹시 장모가 노인정에 있을지 몰라 찾아갔지만 그곳에도 없었다. 더욱 불길한 예감이 든 A씨는 오후 9시16분쯤 112에 신고했다. 경찰이 조씨 가족의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해 보니 마지막 위치가 아파트 인근으로 확인됐다. 늦은 밤, 가족이 있을 곳은 집 안밖에 없었다. 오후 10시31분쯤 A씨는 경찰 입회하에 열쇠수리공을 불러 강제로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등을 켜고 보니 현관에 가족들의 신발이 모두 있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상황이 목격됐다. 집안 곳곳에는 혈흔이 낭자했다. 화장실 욕조에는 장모와 처남 부부가 머리와 상체에서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 시신은 포개진 채 비닐과 대야로 덮여 있었다. 처남 조씨의 시신이 맨 아래, 그 위에 처남댁, 맨 위에 장모의 시신이 차례로 쌓여 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둔기에 맞거나 흉기에 찔려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거실에서는 조카의 시신이 발견됐다. 조카는 피 범벅이 된 상태였고, 흉기와 둔기 외에 목이 졸린 흔적이 있는 등 일가족 중 가장 참혹했다. 작은방에는 신아무개씨(32)가 가스에 질식된 채 숨져 있었다. 신씨의 시신은 침대에 누운 채 질소가스를 연결한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작은방에서는 신씨가 들고 온 것으로 보이는 가방이 있었다. 그 안에는 둔기와 흉기를 포함해 무려 14개의 도구가 들어 있었다. 현관에서 20m 떨어진 신씨의 차량에서도 고무장갑과 케이블 타이 등이 들어 있는 등산용 가방이 발견됐다.

경찰은 아파트 CCTV를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확인 결과, 10월24일 오후 3시쯤 가장인 조씨가 귀가한 후 오후 4시12분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신씨가 큰 가방을 들고 아파트 출입문에 나타났다.

신씨는 출입 카드가 있었던 듯 입구를 쉽게 통과했다. 경찰은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신씨가 전 동거녀의 아버지인 조씨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뒤따라간 것으로 보고 있다. 오후 5시52분에는 조씨의 어머니가, 오후 6시43분에는 조씨의 아내가 차례대로 귀가했다.

다음 날 오전 0시7분에는 딸이 마지막으로 귀가했다. 같은 날 오전 0시50분쯤 신씨는 아파트를 나와 자신의 차량에 보관 중이던 질소가스통을 들고 다시 계단을 통해 아파트로 들어간 것이 확인됐다. 신씨가 일가족을 차례로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다. 사건 전 조씨 집에 출입한 외부인은 신씨가 유일했다. 신씨는 한 가족을 몰살하고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4명과 용의자 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용의자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 뉴시스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된 외톨이

신씨는 약 한 달 전부터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을 제압할 목적의 ‘전자충격기’를 9월28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자살용 질소가스는 10월16일 양산에서 판매점을 방문해 구입했다. 신씨 집에 있는 컴퓨터에는 ‘전자충격기 사용방법’ ‘사하구 방범용 CCTV 위치 현황’ 등을 검색한 기록이 있었다.

신씨는 이렇게 범행에 필요한 물품 등을 하나하나 준비했다. 실제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신씨의 가방에는 다양한 범행도구가 들어 있었다. 전자충격기는 혈흔이 묻은 채 발견됐다. 이것은 9월 중순쯤 양산경찰서에 ‘호신용’으로 신청해 소지 허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신씨는 왜 이런 끔찍한 살인극을 벌인 것일까. 그의 부모는 10년 전에 이혼했다. 이때부터 신씨는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대학을 중퇴한 후 직장에 취직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자주 옮겨 다녔다.

살해된 딸 조씨는 신씨 고등학교 동창생의 아내였다가 이혼했다. 이후 신씨와 가까워져 동거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부터 부산에 있는 신씨 어머니 집에서 한 달간 동거하다가 이후 경남 양산의 한 전세 아파트로 이사했다. 두 사람은 올해 8월까지 10개월간 동거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동거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 신씨의 성격이 문제였다.

신씨는 끈기가 없고 집착이 강했다. 사소한 문제로 폭력을 행사했고, 자주 다툼이 있었다. 싸움 중에 가전제품을 조씨에게 던지기도 했다. 조씨가 반려견을 더 아낀다고 보고 질투심에 강아지를 집어던져 죽이기도 했다.

‘경제적 어려움’도 두 사람의 동거생활이 파탄 난 이유 중 하나다. 신씨는 지난 7월 양산 소재 선박부품업체를 그만두면서 무직 상태에 놓였다. 이때부터 이웃 주민들이 눈치를 챌 만큼 다투는 소리가 외부로 새어 나왔다.

결국 참다못한 조씨는 지난 8월 신씨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조씨는 동거하던 아파트에서 나와 부모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가족 간 앙금이 생기기도 했다. 조씨가 동거했던 양산 아파트에 짐을 가지러 갔을 당시 신씨에게 뺨을 맞는 등 폭행을 당했고, 조씨 어머니가 찾아가 항의하면서 다투기도 했다.

경찰이 신씨의 통화내역을 조사해 보니 그는 조씨와 헤어진 후 13회, 조씨 어머니와도 10회 정도 통화한 기록이 있었다. 경찰은 신씨 어머니에게서 “조씨와 헤어진 후 힘들어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신씨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친구들과의 교류도 단절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조씨와 헤어지면서 사실상 세상과 고립돼 있었다. 외톨이 신세나 다름없었다.

신씨는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된 상태에서 전 동거녀 조씨에 대한 ‘증오’를 더욱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 또 헤어지는 과정에서 조씨 부모와 갈등을 빚으면서 증오의 대상이 부모로 확대됐을 가능성이 높다.

범행을 오랫동안 철저하게 준비한 것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족에 비해 전 동거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은 범행 주 대상이 누구였는지를 말해 준다. 이런 신씨의 마지막 선택은 조씨 가족의 몰살과 함께 자신도 자살하는 것이었다. 이별로 인해 뒤틀린 증오가 부른 비극이다.

 

 

 

※연관기사


‘이별 살인’ 그들은 왜 살인자가 됐나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