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원책 “옛 친이계까지 아우르는 보수 단일대오 절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5 21:29
  • 호수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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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원책 前 자유한국당 조강특위 위원 “김병준 비대위 2월 전대 고집 이해 안 돼”

전원책 변호사는 기자들 사이에서 ‘올빼미 생활’로 유명하다. 왕성한 방송활동 속에 틈틈이 시간을 내 저술 및 개인 공부를 하려다 보니 새벽 3~4시까지 잠을 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때문에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오전엔 잠을 청하고 일상생활은 오후부터 이어간다. 그래서인지 기자들도 전 변호사에게 오전에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거나 오후 또는 밤늦은 시간에 연락한다. 새벽에 문자를 주고받는 일도 종종 있다. 공교롭게도 전 변호사가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 위원직에서 해촉(解囑)됐다고 통보받은 시점은 11월9일 오후 1시20분경이었다.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서다. 그로부터 10분 뒤 비대위는 해촉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 김용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은 “라이프사이클상 아직 기상 전인지 아닌지 몰라 문자로 통보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전 변호사는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느냐”는 반응이다. 정치권에선 전권을 주겠다며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영입한 당 외부인사와 비대위가 갈등 끝에 헤어지는 것을 두고 말이 많다. 당장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리더십에 큰 상처가 났다.

반대로 전 변호사에겐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비대위 결정에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감히 청하진 못하나 본래부터 바라던 바)이다”고 화답한 것에서 그의 의중이 읽힌다. 전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조강특위와 비대위는 전당대회(전대) 개최 시점을 놓고 그동안 갈등을 빚어왔다.

조강특위 위원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전 변호사는 독자행보를 이어나갈 뜻을 내비쳤다. 그는 11월14일 저녁 시사저널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보수단일화를 이뤄낼 결사체를 조만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벌써부터 이 조직에 현역의원을 비롯해 정치권 인사 누가 참여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1월14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 위 위원이었던 전원책 변호사가 해촉된 지 2일 만에 기자 회견을 열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전대 시점 놓고 조강특위-비대위 갈등

시사저널이 전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준비한 것은 11월 초순부터다. 물론 당시도 전당대회 연기론을 놓고 비대위와 조강특위가 이견을 보였지만, 지금처럼 갈등이 표면화될지는 생각지 못했다. 위원으로 있던 전 변호사는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도 높은 쇄신을 통한 보수정치 부활을 약속했다. 실제로 의욕적으로 일했다는 평가다.

해촉 사실을 통보받은 그날도 오후 3시 조강특위 회의가 잡혀 있었다. 결과적으로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전원책 카드’는 실패로 끝났다. 왜 실패로 끝난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해촉 가능성이 흘러나오던 11월초 전 변호사는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묵언수행(默言修行) 중인 사람을 흔들어선 안 된다”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전 변호사와의 인터뷰는 기자회견이 있었던 11월14일 오후 2시경 여의도 모처에서 진행됐다. 일부 질문은 시간이 부족해 당일 저녁 늦게 전화로 물어봤다.

당에 섭섭한 마음은 없나.

“혁신이 물 건너간 당에 무슨 미련이 있겠나. 내가 미련 같은 게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 느낀 바는 어땠나.

“지금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 있지 않나. 사실상 정권을 헌납한 거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아무도 자기반성, 자기성찰이 없다. 개인적으로 헌재 심리가 졸속 처리됐다고 생각한다. 뇌물죄는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심리가 진행되지 않았나. 탄핵재판 자체가 위헌이다. 형사재판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10시간씩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과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됐겠나.”

보수정당이 박 전 대통령과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자기성찰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비박(非朴)이든 친박(親朴)이든 갔어야 했다. 가는 것만이 간극을 줄이는 일이고, 자기성찰의 기회였다. 그런 다음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서울 구로구, 추미애 의원의 광진구, 신경민 의원의 영등포구에 아무도 출마할 생각이 없다. 그러면서 대권·당권을 찾고 있다.”

김병준 위원장이 전권을 준다고 했을 때 또 요구한 것이 있었나.

“조강위원 선임권을 달라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에 조강특위 위원으로 활동하신 이진곤 위원(전 국민일보 주필), 전주혜 위원(전 부장판사) 그리고 마지막에 합류한 강성주 위원(전 포항MBC 사장)과는 과거 단 한 번도 개인적으로 밥 먹어본 적이 없고 술도 마셔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커피 한 잔 같이 마셔본 적이 없는 분들이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을 조강위원에 모시지 않았다. 사심이 개입할지 모르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내 고등학교 동기 중에 교수만 79명이다. 개인적 인연으로 뽑으려 했다면 벌써 했다.”


“비대위에 2월 전대 불가 충분히 설명했다”

2월 전당대회 개최를 놓고 처음부터 이견이 있었나.

“처음 김용태 사무총장이 찾아와 조강특위 위원직을 제의하면서 12월말까지 대강 조직을 정비하면 된다고 했다. 그때는 10, 11, 12월 석 달 정도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더라. 그래서 김병준 위원장, 김성태 원내대표, 김용태 사무총장 등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2월 개최는 힘들다는 뜻을 전했다.”

그랬더니 어땠나.

“부정을 안 한 채 고개만 끄덕이더라. 특별한 거부반응이 없으니 나는 그때 내 의사가 전달됐다고 봤다. 현역들 쇄신을 못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기억으로 불출마 선언을 한 사람이 7명 가까이 되는데, 그분들 중에 ‘나는 당연히 빼주세요’라고 말한 사람은 2~3명밖에 안 된다. 그런 사람들 빼고 어떻게 쇄신이 가능하겠는가.”

김병준 위원장이 대권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순리를 따르자는 의미에서 말한 거다. 순리를 따르면 본인이 대권 욕심을 갖든 말든 그건 본인의 권력의지다. 하지만 순리를 벗어나면 문제가 된다. 난 김 위원장에게 대권 욕심을 갖지 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욕심이 모든 걸 다 방해하면서 전대(전당대회)까지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거다. 나는 그분이 대권 욕심 때문에 일을 이렇게 벌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2월 전당대회를 고집한다고 보는가.

“솔직히 지금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모 신문에서는 배후설을 이야기하는데 그걸 믿고 싶진 않다.”

비대위 말고 당내 특정 계파에서 압력을 행사한 적은 있었나.

“없었다. 있었으면 내가 참았겠나. 가만히 있지 않았지. 그런데 처음부터 의견이 맞지 않은 건 있었다. 조강위원 선임을 놓고 이견이 있었다.”

조강특위 내 쇄신 기준은 세웠나.

“이제 막 자료를 모으던 참이었다. 이를 이유로 당내 원로 등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다음 내 스스로 내린 결론이 현역의원 절반 정도를 물갈이해야 한다는 거였다. 한 원로급 인사는 70% 정도 현역을 교체해야 한다고 하더라. 다들 하나같이 대폭 물갈이를 주장했다. 이제는 남의 일이 됐으니, 그 건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

조강특위 내 이견은 없었나.

“개혁 프로그램이 가동하려면 2월말 전대는 불가능하다는 공감대는 있었다. 필요하다면 6~7월까지 갈 수도 있다는 컨센서스도 이뤘다.”

조강특위 활동을 언제까지 할 생각이었나.

“잘만 진행됐으면 3월말 내지 4월에 전대를 열 생각이었다. 최악의 경우, 갈등이 계속되고 중간 보스들이 쇄신을 거부하면 6·7월 전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조강특위 위원 해촉 가능성은 감지했나.

“당연히 알았다.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현실정치에 뛰어들 계획은 있는가.

“보수정치의 단일대오를 만들거나 새로운 보수를 제시하기 위해 작은 조직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이름도 정해졌다(이후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혁신과 대안’이라고 밝힘). 현역의원 10여 명이 참여하는 정파를 초월한 단체라고 보면 된다.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차기 총선에 출마할 계획은 있나.

“아직까지는 전혀 없다. 그러고 싶지 않다. 새로운 보수 운동을 하는데 이것이 정치로 번져갈지 안 갈지는 모르겠다. 순리를 따르는 거지, 순리를 역행해 뭘 하겠다고 생각하는 건 없다.”

 

11월14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에서 전원책 변호사가 시사저널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현역 10여 명 참여하는 정치 결사체 구성”

준비 중인 단일대오엔 중도보수 세력까지 포함되나.

“보수 단일대오가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합당은 아니다. 나는 우리 보수의 원류를 자기는 배를 굶고 헐벗으면서도 자식을 교육시킨 우리 부모 세대로 본다. 이들이 우리나라 정통 보수다.”

전 변호사가 꿈꾸는 단일대오는 바른미래당 내 옛 친이계까지 포함되는 건가.

“당연하다. 보수를 단일대오로 만들되 자숙할 사람은 자숙하고 반성할 사람은 반성하고 안식년을 보낼 사람은 그러면 되는 거다.”

조강특위 위원직을 맡은 걸 후회한 적은 없나.

“왜 없겠나.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사람을 쳐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전국 253개 모든 지역의 당협위원장은 일생을 걸고 하는 거다. 그런데 조강위원들이 이틀밖에 안 되는 당무감사 결과를 갖고 그 사람의 일생을 평가한다? 그게 참 힘들었다. 과거 중진의원들이 찾아와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던 것도 거부한 내가 왜 조강특위 위원을 한다고 했겠나. 엄청나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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