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KLPGA 평정한 ‘대세녀’ 프로골퍼 이정은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6 11:06
  • 호수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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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돈 많이 벌어 오랫동안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

이름 뒤에 숫자가 붙는다. 1, 2도 아닌 무려 6이란 숫자가. 같은 이름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6명이나 된다는 의미리라.

이정은6(22·대방건설). 팬들은 그를 ‘핫식스’라고 부른다. 지난해 역대 최초 6관왕(상금, 대상, 평균타수, 다승, 인기상, 베스트플레이어)에 오르며 KLPGA 무대를 평정했던 이정은은 올 시즌 상금왕(9억5764만원)과 평균타수 1위(69.8705타)를 지켰다. 성적만 놓고 봤을 때 지난 시즌보다 미흡한 부분이 눈에 띄지만 미국과 일본 등 해외 투어를 병행하느라 KLPGA 대회를 10개나 출전하지 못했다는 걸 떠올리면 놀라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나이로 23세에 불과한 이정은의 가장 큰 강점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해 내는 강단은 그를 KLPGA의 ‘대세녀’로 만들었다. 특히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골프를 해 온 그의 스토리에는 감동이 넘쳐 흐른다.

 

ⓒ 이영미 제공



올 시즌 KLPGA 최종전이었던 ADT캡스 챔피언십 대회를 마치고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많은 걸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잦은 해외 원정으로 체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무려 12개 대회를 치를 때까지 우승이 없었다. 올 시즌 첫 우승이 9월 세 번째 메이저대회인 한화클래식에서 나왔다. 두 번째 우승도 메이저대회였다(KB금융스타챔피언십). 17개 대회에서 2승 포함해 8차례 톱3에 진입했다. 미국과 일본을 오가는 강행군 속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6관왕에 올랐지만 오히려 아쉬움이 많은 시즌이었다. 우승 기회를 여러 차례 놓쳤기 때문이다. 올 시즌은 우승을 상상도 못할 만큼 경기가 잘 안 풀렸다. 체력 난조에 하반기 투어가 걱정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뒤늦게 두 차례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대회 출전 수가 부족하지만 메이저대회 2승으로 상금왕에 올랐고 평균타수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그래서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상금왕 타이틀을 앞두고 해외 투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상금왕 2연패를 위해서라도 해외 투어 참가를 고민했을 것 같은데.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골프 시작하면서 상금왕 타이틀을 목표로 한 것도 아니고, 올 시즌은 해외 투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경험을 쌓고 싶었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지면 무조건 나가려고 했다. 상은 욕심낸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후 벌어지는 일들은 내 권한 밖의 일이라 연연해하지 않는 편이다.”

굉장히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다.

“고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마음을 편히 가지려 하는 것이다.”

해외 원정과 국내 투어로 심신이 지쳤을 것 같다.

“솔직히 많이 피곤하고 힘들다. KLPGA 대회는 끝났지만 이벤트 대회가 남아 있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 LPGA 메이저대회 5개와 국내에서 열린 LPGA투어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 등 6개 대회에 참가했었다.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컷 탈락한 것 외에 5개 대회에선 모두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정은은 ANA 인스퍼레이션 대회와 롯데 챔피언십에서 공동 16위, US 여자오픈에서 공동 17위,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공동 6위,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공동 14위에 올랐다.)

“KLPGA 투어를 뛰고 바로 출국해서 LPGA 대회에 나간 적도 있을 만큼 여유 있게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성적이다. 시차·체력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 나름 선전했다고 본다. LPGA의 메이저대회에만 출전했는데도 쉽지 않은 투어 일정이었다. 그 속에서 느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다.

“LPGA투어가 골프하는 데 가장 좋은 환경이란 걸 느꼈다. 실력 면에서도 차이가 많이 나는 듯했다. 대회를 거듭할수록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LPGA에서 투어 생활하는 한국 선수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모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니 더 고민되더라.”

그런 상황에서 LPGA투어 퀄리파잉(Q) 시리즈에 출전했고, 수석을 차지하면서 2019년 LPGA투어 시드를 확보했다.

(Q시리즈는 지난해까지 열린 퀄리파잉 토너먼트(QT)를 대신한 LPGA투어의 새로운 입문 과정이다. 108명의 선수가 2주일 동안 총 8라운드 경기를 펼쳐 상위 45위까지 내년 시즌 시드권을 받는다. LPGA투어 상금랭킹 101~150위로 내년 시즌 시드가 필요한 선수들, 2부 투어인 시메트라 투어 상금랭킹 11~30위 선수들, 여자골프 세계랭킹 75위 이내 선수들, Q시리즈 1~2차전을 통과한 선수들이 참가하는데 이정은은 여자골프 세계 랭킹 19위로 파이널에 직행해 1위에 올랐다.)

“Q시리즈는 원래 1차전부터 출전해야 하지만 세계 랭킹이 높아 곧장 파이널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신청 마감일을 얼마 남기지 않고 이런 사실을 알게 돼 프로님(지산CC아카데미의 이준석 코치)과 상의했었다. 내가 Q시리즈에 나가면 그걸 LPGA 직행으로 연결시키는 시선 때문에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프로님께서 미국 가고 안 가고는 Q시리즈 통과해 시드가 있어야 고민할 수 있는 문제라며 일단 출전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급하게 신청서를 제출했고 여느 LPGA 대회에 나갔던 것처럼 경험이나 쌓자고 생각했던 게 수석으로 통과해 주목을 받게 됐다.”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10언더파로 공동 6위에 오른 이정은 ⓒ AP 연합


2주간 8라운드로 총 144홀을 돌았다. 강행군이었을 텐데.

“KLPGA 대회가 2주 연속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단 스코어를 갖고 가는 터라 대회 기간이 길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4라운드까지 잘해도 골프장이 바뀌면 그다음 라운드부터 스코어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8주 동안 긴장감 잃지 않고 경기하는 게 몹시 어려웠다. 그러나 진정한 프로는 어느 환경에서도 꾸준히 잘해야 한다. 그런 선수들에게만 시드를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수석은 꿈도 꾸지 못했다. 시드 받을 수 있는 45등 안에만 들어가자고 생각했었는데 덜컥 1위를 차지했다.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타수를 좁혀 나갔던 게 긴장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사실 운도 많이 따랐다.”

(세계 랭킹 19위 자격으로 출전한 이정은은 1라운드 2언더파 공동 2위, 2라운드 4언더파 4위, 3라운드 6언더파 4위 등 꾸준히 선두권에 이름을 올렸다. 4라운드에서 타수를 줄이지 못해 선두에 6타 뒤진 공동 7위로 잠시 주춤했지만 5라운드부터 한 타를 줄여 6위에 올랐다. 6라운드에서는 11언더파로 공동 1위를 3타 차로 추격했다. 7라운드에선 5타를 줄여 선두와 1타 차였고, 마지막 8라운드에서 2언더파를 보태 합계 18언더파 558타로 2위 제니퍼 쿱초를 1타 차로 제치고 1위를 꿰찼다.)

 

그런데 Q시리즈 수석 통과 후 내년 시즌 LPGA투어 진출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Q시리즈 출전 자체가 LPGA투어 진출을 고려했던 게 아니었나.

“앞에서 말했듯이 만약 Q시리즈를 1차부터 나가는 거였다면 아예 출전 신청도 안 했을 것이다. 세계 랭킹으로 파이널에서 시작할 기회를 얻었고, 일단 Q시리즈에서 시드권을 획득한 다음 고민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솔직히 지금은 준비가 안 됐다. 국내 대회도 아니고 LPGA투어 아닌가. 내가 진심으로 미국에서 골프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준비가 안 됐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은 가서 해 보라고 말씀하시지만 내가 결심이 서야 움직일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겨울 동안 훈련하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 확신이 설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인가.

“내가 멘토로 삼고 있는 이준석 프로님을 비롯해 모중경·백규정·고진영 프로한테 모두 물어봤다. 아무리 많은 얘기를 들어도 미국 투어의 장단점이 있다 보니 결국은 내가 결정해야 할 부분이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많은 걸 준비해서 나가야 한다. 레슨 프로, 트레이너, 마사지사, 매니저, 집, 차 등 팀으로 움직이는 게 필요하다. 현재 매니지먼트사가 이와 관련된 내용을 준비 중에 있다. 준비가 된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 모두 가야 한다고 해서 등 떠밀려 가고 싶지 않다. 제대로 준비를 마친 후 나가고 싶다.”

올 시즌 첫 우승이었던 한화클래식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후 눈물을 많이 흘리더라. 그 눈물의 의미가 느껴질 정도로 우여곡절이 담긴 우승이었다.

“시즌 초반부터 경기가 잘 안 풀렸다. 지난해 성적으로 기대치는 높아졌고 성적은 안 나오고, 굉장히 부담도 되고 답답했었다. 외국 투어를 넘나들면서 체력과 샷감이 많이 흔들렸다. 그걸 잡아가는 게 힘들더라. 성적이 안 나오니까 일부 기사의 댓글에는 ‘이정은6, 한물갔다’ ‘이젠 핫식스가 아닌 콜드식스다’ 등등의 비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라. 댓글을 보지 않으려 해도 자꾸 눈이 갔다. 감정적인 동요가 심했지만 그래도 다잡아 가려 노력했다.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것도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상에 서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일이라고 위안 삼으면서 최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놓지 않았다.”

1996년생한테 한물갔다는 표현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작년 성적이 워낙 좋아서 그렇게 지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017년 11월27일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이정은이 대상을 수상한 뒤 트로피에 키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는 비결이 궁금하다.

“어렸을 때 골프를 시작하면서 여유 있는 환경에서 운동한 게 아니라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면 정신이 번쩍 드는 편이다. 덕분에 버티면서 이겨내고 살아가는 게 몸에 배었다. 그런 모습들이 정신적으로 강해 보이게 하는 것 같다.”

 

골프는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스포츠다. 어려운 환경에서 골프를 하다 보면 매번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텐데 어떻게 그 환경들을 이겨낼 수 있었나.

“어렸을 때 아버지가 아시는 티칭 프로님의 도움을 받으며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채 살 돈이 없어 중고를 구입해서 썼는데 대회 나갔다가 놀림을 받은 적도 있었다. 큰 상처가 됐다. 그걸 그대로 되갚아주고 싶었지만 난 힘이 없었다. 무조건 골프로 복수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 대회에서 오기로 골프를 쳤던 것 같다. 복수심이 내가 처한 어려운 환경들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들었다. 2016 시즌 신인왕에 오르기 전까지 정말 힘들게 생활했다. 신인왕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그걸 갖고 싶어서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골프를 하면서 그때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생애 한 번 받을 수 있는 상이라 더 신경을 쓰고 압박감에 시달렸다.”

신인왕 수상 이후 골프를 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진 건가.

“이전에는 내 골프에만 집중했다. 골프장 환경이 어떠한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무조건 티박스와 페어웨이, 홀컵 등만 쳐다봤다. 그래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신인왕 이후에는 골프장의 나무와 산, 코스를 보는 여유가 생겼다. 그 점이 가장 큰 차이가 될 것이다.”

이정은의 아버지 이정호씨는 이정은이 4살 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딸을 뒷바라지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성장한 이정은으로선 하루라도 빨리 성공하고 싶은 의지가 강했다.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정은은 상금과 계약금 등을 모아 지난해 경기도 용인에 전세 아파트를 마련해 부모님을 모셨다. 2년 연속 상금왕에 오른 지금은 어떨까.

“내년에 전세 탈출해서 집을 구입하려고 한다. 그 집은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이다. 아버지가 사고로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포기하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날 뒷바라지해 주셨다. 아버지의 불편한 모습을 보며 골프를 했기 때문에 내가 잘해야 아버지가, 우리 가족이 행복해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우승을 하고, 방송을 타고, 상금을 챙기면서 조금씩 가정 형편이 나아졌고, 가족들도 이전보다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게 됐다. 그게 굉장한 동기부여가 된다. 골프를 더 잘 치고 싶다. 돈 많이 벌어서 오랫동안 부모님한테 효도하고 싶다.”

2017년 9월, 이정은은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 2라운드에서 KLPGA 역대 18홀 최저타인 12언더파 60타의 신기록을 세웠다. 11언더파의 기존 기록을 14년(2003년 전미정의 파라다이스 인비테이셔널)만에 경신한 것이고 앞으로 12언더파 60타 기록이 깨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정은은 이 기록과 관련해서 “내가 죽을 때까지 깰 수 없는 숫자다. 말도 안 되는 기록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22세의 나이에 이정은은 기록, 순위, 타이틀, 돈, 명예를 모두 품에 안았다. 한때 돈을 벌기 위해 티칭 프로를 꿈꿨던 인생역전 스토리가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도록 그의 골프를, 인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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