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영혼 판 ‘인터넷 방송 BJ’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9 14:11
  • 호수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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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시청률 높이기 위해 악순환 반복…단속은 사각지대

지금은 인터넷 1인 방송 시대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 유튜브 등에 채널을 개설하면 누구나 1인 방송을 운영할 수 있다. 독자나 시청자가 많을수록 영향력도 더욱 커진다. 더불어 금전적인 이익까지 얻을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너도나도 1인 방송에 뛰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인터넷 방송의 주제는 각양각색이다. 학습·놀이·게임·오락·음식·컴퓨터 등 개인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 골라 볼 수 있다. 이 중에는 유용한 방송도 적지 않지만 부작용도 심각하다. 선정성과 폭력성이 도를 넘은지 이미 오래다. 살인예고, 음주운전, 경찰서 난동, 옷 벗기기 등 갈수록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인터넷 방송 팝콘TV에서 방송진행자(BJ)로 활동하는 임아무개씨(여·26)는 음주운전을 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임씨는 11월2일 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술을 마신 뒤 차를 직접 운전해 인근 숙박업소까지 이동했다. 임씨가 음주운전한 거리는 700m 정도다.

이 과정은 실시간으로 방송에 중계됐으며 수천 명이 시청했다. 시청자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강남구청역 인근 숙박업소를 탐문했고, 2시간 만에 모텔에 투숙 중이던 임씨를 붙잡았다. 당시 임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86%로 면허 정지 수준이었다. 경찰은 임씨와 동승자 염아무개씨(29)를 각각 음주운전과 음주운전을 방조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했다.

 

ⓒ 일러스트 오상민



김아무개씨(48)는 지난 3월 유튜브에 1인 방송 채널을 개설했다. 그는 10월23일 밤 술에 취해 부산 사상경찰서 주례지구대를 찾아가 다짜고짜 경찰관의 멱살을 잡고 폭언을 했다. 김씨는 이 광경을 자신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에 실시간으로 내보냈다.

현행범으로 붙잡힌 김씨는 “인터넷 방송 시청자가 지구대로 가서 난동을 피워보라고 시켰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시청자 댓글에는 관련 내용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김씨가 방송 시청자를 늘려 수익을 얻기 위해 이 같은 난동과 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을 조롱하는 자극적인 장면으로, 방송 조회 수를 끌어올리려 했다는 것이다.

김씨의 일탈은 이번 한 번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 9월 “사람을 죽이러 가겠다”면서 찾아가는 과정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이를 보던 시청자들이 112에 신고했고, 김씨는 출동한 경찰을 향해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체포하라”면서 노상방뇨까지 했다. 


김씨는 같은 달 13일 오전에는 방송 중 비하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찾아온 부부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 기절하자 이를 실시간으로 방송하기도 했다. 경찰은 김씨를 공무집행방해, 특수상해 미수,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아프리카 BJ 철구는 자극적인 콘텐츠와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그의 방송에는 막말, 욕설, 비하 발언이 난무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철구의 욕설과 막말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으나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러자 방심위는 BJ 철구에게 7일간의 이용정지를 결정했다.

생방송을 진행하던 BJ가 창문을 열고 투신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3월 부산의 한 원룸에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던 그는 8층 창문에서 밖으로 뛰어내렸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 방송에서 우울증을 호소했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이를 조롱하는 채팅을 했다.

이른바 ‘벗방’(옷 벗고 하는 방송)과 ‘야방’(야한 방송)의 여성 BJ들은 신체 부위를 가감 없이 노출하고, 성행위를 연상하는 행동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옷을 벗을 때 채팅창에는 남성 회원들이 음담패설을 쏟아내고, BJ는 성적인 대화를 이어간다.


청소년들에게 무방비 노출

이처럼 1인 방송에서는 욕설·폭력·음란성이 난무한다. 문제는 이런 방송들이 연령별 시청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청소년들에게도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다. 실시간 방송뿐 아니라 인터넷이나 온라인을 통해 방송내용이 유통돼 청소년들의 정서를 크게 해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청소년의 26.7%가 인터넷 1인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영상에 노출되면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정서적 학대’ 상태에 놓인 것과 같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지만 나중에는 점점 선정적인 장면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따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돼 심각한 정서적 파괴현상이 일어난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윤아무개씨(여·35)는 얼마 전 유튜브 검색을 하다 깜짝 놀랐다. 아이에게 유익한 것을 검색하다 ‘놀이 방송’을 찾아들어갔더니 야한 얘기들을 서슴없이 내보내고 있었다. 윤씨는 “겉보기에 어린이 콘텐츠라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아무개씨(47)는 맞벌이 부부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퇴근하기 전에는 아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문제는 아이가 집에만 오면 습관적으로 TV를 통해 유튜브에 접속한다는 것이다. 욕설이 난무하고 폭력성이 강하거나 성인이 보기에도 민망한 영상이 나오는 곳에도 들어갔다.

김씨는 아들이 무의식중에 욕을 자주 하고 성격이 날카로워진 것이 유튜브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들에게 ‘유튜브 접속 금지령’을 내렸으나 반발에 부딪혔다. 아이들이 자주 접속하는 방송을 보지 않으면 대화에 낄 수 없어 왕따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이 문제로 청소년 상담센터를 찾아가 상담을 받기도 했다.

김씨는 “한번은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 학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해 보니 아이들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며 “지금은 무조건 보는 것을 막는 것보다는 건전하고 안전한 방송을 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1인 방송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송을 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대부분의 1인 방송 BJ들은 돈벌이 수단으로 방송을 진행한다. 1인 방송에서 ‘구독자 수’는 광고수익과 연결된다. 그러다 보니 구독자나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BJ들은 시청자들이 구매한 ‘유료 아이템(후원금)’을 받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현금으로 전환되는 유료 아이템은 BJ들의 주수익원이다.  

유료 아이템은 시청자가 구입해 BJ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개당 구입가격은 100원이다. 인기 BJ의 경우 인터넷 방송 사이트와 7대3으로 유료 아이템 수익을 나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정적인 방송을 하면서 받은 유료 아이템으로 하루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BJ들도 생겨나고 있다. 특히 벗방이나 야방 같은 경우는 BJ들이 시청자들에게 유료 아이템을 받기 위해 옷을 벗는다.

한 남성 BJ는 유료 아이템을 받기 위해 미성년자를 50만원을 주고 길거리에서 섭외해 남성 2명과 2대1의 성관계 장면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그는 음란방송을 사전에 알린 뒤 2만원 이상을 낸 유료 시청자 300여 명에게 성행위 장면을 20여 분 보여주고 700만원 정도를 챙겼다.

시청자들 중에는 BJ에게 유료 아이템을 선물하기 위해 범죄행각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부산의 한 선박회사에 다니던 최아무개씨(여·21)는 인터넷 방송 사이트의 남성 BJ가 진행하는 토크 방송에 푹 빠졌다. 최씨는 1년6개월간 모두 4억2000여만원의 회사 공금을 빼돌렸고, 이 중 1억5000만원을 BJ에게 유료 아이템으로 선물했다. 최씨는 하루에 많게는 200만〜300만원어치의 유료 아이템을 BJ에게 선물로 줬다. 이와는 별도로 5000만원을 BJ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단속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방심위가 올해 초부터 지난 8월까지 발표한 인터넷 1인 방송 징계 건수는 81건이다. 지난해 26건과 비교해 보면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근 3년간 위반 유형을 보면 음란(61%), 법질서 위반(17%), 폭력·혐오(17%) 순으로 많았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지만 규제나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8월2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언론공정성실현모임이 주최한 ‘통합방송법 제정 공청회’ 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뉴시스


강력한 법적 규제가 뒷받침돼야

가장 큰 이유는 법의 허점이다. 현재 인터넷 개인방송 사업자들은 ‘방송사업자’가 아닌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된다. 따라서 인터넷 방송은 방송법이 아닌 전기통신사업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방송법은 각종 법적 규제를 받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선정성과 폭력성, 혐오성 표현물을 생산할 수 없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은 이런 법의 테두리에서 자유롭다. 또 포괄적인 사후 심의를 받기 때문에 BJ들이 방송을 한 후에야 법에 저촉되는 사항이 없는지 확인하는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단속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 1인 방송에서 문제가 생기면 방송을 진행하는 BJ들만 처벌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인터넷 방송 사업자, 즉 플랫폼을 제공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BJ가 방송내용이 문제가 돼 이용정지 처분을 받더라도 다른 인터넷 방송업체로 옮겨 방송을 계속할 수 있다. 다른 아이디를 만들어 방송을 이어가면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인터넷 방송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고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통합방송법 제정안을 논의 중이다. 전문가들은 1인 방송의 이용자가 늘고 있고,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영상의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법적 규제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방송법에 준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놓고, 이를 어길 경우 인터넷 방송 사업자에 대해 사업승인을 취소하고, BJ들은 인터넷 방송에서 영구 퇴출시키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독일의 경우 지난해부터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법’을 시행하고 있다. 명백한 혐오 표현을 담은 게시물이나 영상 등을 24시간 안에 삭제하지 않으면 해당 인터넷 업체에 최대 5000만 유로(약 651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강력한 법안이다. 우리나라도 인터넷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콘텐츠 자정에 나서게 하려면 이에 준하는 법안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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