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와 만난 사모펀드 입김 세진다
  • 송준영 시사저널e. 기자 (song@sisajournal-e.com)
  • 승인 2018.11.27 09:15
  • 호수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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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기업구조개선·주주행동주의 펀드 태동 10%룰 폐지 등 규제완화도 우호적 요인

지분 확보를 통해 대주주나 경영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사모펀드들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만 하더라도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한 플랫폼파트너스자산운용이 국내 대표적인 인프라펀드인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MKIF·맥쿼리인프라)를 상대로 주주권을 행사했고,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을 9% 매입하면서 주요 주주로서 감시와 견제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할 것을 예고했다. 외국계 사모펀드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이러한 활동들이 이제는 토종 사모펀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시장의 생태계 변화는 앞으로 더욱 촉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다수 국내 기관들의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주주권 행사 모범 규준) 도입 등으로 주주권 강화 움직임이 확대된 데다, 금융위원회가 사모펀드의 의결권 행사 규제를 푸는 사모펀드 제도 개편을 예고하고 나선 까닭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주주권 강화 움직임이 확대되면서 토종 사모펀드의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사진은 KB금융지주 임시주주총회 모습 ⓒ 연합뉴스


경영진에 목소리 높이는 토종 사모펀드

11월15일 자본시장을 흔든 공시가 하나 나왔다. 전날 그레이스홀딩스라는 투자목적회사가 한진칼 지분 9%를 매수했다는 ‘주식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레이스홀딩스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지분 28.95%)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단순한 투자로 보기엔 확보한 지분율이 너무 컸고 단번에 이뤄진 것이기에 ‘한진칼 경영 참여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특히 그레이스홀딩스의 뿌리에 사모펀드 운용사 KCGI가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러한 소문에 불을 댕겼다. 올해 7월 설립된 KCGI는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 가치를 제고한 다음 투자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회사 수장이 지배구조 전문가로 불리는 강성부 LK투자파트너스 전 대표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KCGI의 생소한 투자전략에도 그의 이름만 믿고 모인 자금이 약 1400억원에 이를 정도였다.

다만 KCGI는 경영권 장악보다는 우선 주요 주주로서 경영활동에 대한 감시 및 견제 역할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밝힌 상황이다. KCGI 관계자는 “한진칼 계열사들은 유휴자산의 보유와 투자지연 등으로 매우 저평가돼 있는 측면이 있다”며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 가치 증대의 기회도 매우 높아 주요 주주로서의 감시와 견제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할 경우 한진칼의 기업 가치 증대가 이뤄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올해 하반기 한 차례 더 있었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인 플랫폼파트너스자산운용이 3.17%의 맥쿼리인프라 지분을 사들인 이후 맥쿼리인프라 이사회에 보수구조와 방만경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맥쿼리인프라 이사회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펀드 운용사 교체 등 안건을 제시하고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플랫폼파트너스는 올해 9월 열린 임시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였지만 결국 패배하며 운용사 교체에 실패했다.

그동안 이같이 국내 펀드가 주주권을 쥐고 대주주와 경영진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미국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하는 등 외국계 헤지펀드가 주주행동주의 측면에서 나선 경우가 다수였다. 국내 사모펀드가 주주권 행사를 목적으로 적극 나선 대표적인 경우는 2006년 이른바 장하성펀드(한국지배구조펀드), 2016년 라임자산운용이 국내 민간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와 만든 ‘라임-서스틴데모크라시’ 사모펀드, 지난해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이 출범시킨 ‘행동매주식전문투자형펀드’ 등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금 규모 탓에 대상 기업의 지분을 많이 확보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제2의 KCGI 나올까

그러나 향후 토종 사모펀드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관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사모펀드 규제 완화 등 사모펀드가 주주권을 행사하기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까닭이다.

우선 스튜어드십 코드는 사모펀드의 주주권 행사로 우군을 만드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지침을 말하는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기관투자가는 단순히 주식 보유에 그치지 않고 보유 주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특정 기업의 지분을 취득한 사모펀드가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유휴자산의 매각 등을 골자로 주주제안을 했을 때,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기관투자가들의 찬성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진 것이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도 제2의 KCGI 발현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국내 사모펀드는 의결권 제한, 10%룰 등으로 해외 사모펀드와 비교해 주주권 행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현행 기준으로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PEF)는 △기업 지분 10% 이상 확보 △6개월 이상 보유 △대출 금지 등 규정을 지켜야 한다. 예컨대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인 KCGI의 경우 한진칼 지분 9% 확보에 그쳐 현행 기준으로는 1%포인트 지분을 더 확보해야 한다. 전문 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는 10% 이상 지분을 확보하더라도 의결권이 제한되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말 밝힌 사모펀드 제도개편 추진 방향을 통해 경영 참여형과 전문 투자형으로 이원화된 운용 방식을 일원화하고 10%룰을 폐지키로 방침을 정한 상황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유명 해외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의 경우 현대차 지분을 3%가량 들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럼에도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강화를 요구한 바 있다”며 “실제 규제가 완화된다면 단기적 차익을 노리는 행동주의 펀드나 장기적으로 기업과 윈윈을 꾀하는 스튜어드십 펀드도 다수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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