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테러범이 '애국 열사'? 분노 넘은 방조 사회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11.2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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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들 "사법농단에 일갈" "잘했다"…정작 개인소송 불만

'이해 된다' '잘했다' '애국 열사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태운 출근 차량이 화염병에 습격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나온 네티즌 반응이다. 주요 포털 사이트 기사들엔 화염병을 던진 남모(74)씨를 옹호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출근 승용차에 화염병을 던진 70대 남성(사진 가운데)이 11월27일 서초경찰서 지능범죄수사과에서 다른 곳으로 이송되고 있다. 이 남성은 이날 오전 9시10분께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김 대법원장 차가 들어오는 순간 화염병을 던졌다. ⓒ 연합뉴스


 

사법 불신 속 터진 대법원장 테러

 

11월27일 오전 9시5분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남모씨는 김명수 대법원장 승용차가 들어오는 순간 차를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 화염병에 붙은 불은 승용차 보조석 뒷바퀴에 옮아붙었다. 다행히 현장에 있던 청원경찰들이 소화기로 화재를 즉시 진화했다. 김 대법원장 신변에는 이상이 없는 상태다. 남씨 옷에 붙은 불도 역시 곧바로 진화돼 별다르게 다치지 않았다.

 

남씨는 현장에서 청원경찰들에게 제압당한 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넘겨졌다. 경찰은 남씨 가방에서 시너로 추정되는 인화물질이 들어있는 페트병을 4개 더 발견해 압수했다. 조기에 막지 않았다면 추가 범행이 벌어졌을 여지도 있는 정황이다.

 

일각에선 해당 사건을 두고 '사법 농단' 의혹으로 추락한 사법부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각종 재판거래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법원의 신뢰도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소송 당사자들이 패소 판결 등에 승복하지 않는 경우도 증가했다. 남씨처럼 법원 앞에서 시위하는 소송 당사자는 최근 들어 대폭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그동안 재판 결과를 두고 1인 시위를 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대법원장을 상대로 직접 물리력 행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차량 테러와 관련한 포털 사이트 기사에 달린 댓글들 ⓒ 네이버 뉴스 캡처


 

우려보다 호평 봇물…정작 개인소송 관련 범행

테러를 당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와 판사 탄핵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시점에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는 지난해 9월 취임 뒤부터 우유부단함으로 도마에 올랐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지난 5월 그 존재를 부인했던 '판사 블랙리스트'는 이어진 검찰 수사에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 등으로 드러났다. 사법 농단 의혹을 받는 판사들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건을 제외하면 법원에서 잇달아 기각됐다. 이는 김 대법원장이 6월 대국민 담화에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힌 사실을 무색하게 하는 결과였다.

그러나 생명권을 침해하는 테러 행위는 목적이 어떻든 정당화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김 대법원장을 겨냥한 극단적인 분노 표출에 박수 치는 반응이 주를 이루는 것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포털 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에서 테러를 비판하는 댓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테러범 남모씨를 '애국 열사' '고난의 시대를 지켜내고 일구고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라고 치켜세웠다. '잘 좀 던지지, (김 대법원장이) 살아있다니 안타깝다' '수류탄을 던졌어야 한다' '대통령 차에도 하나 던져 달라'는 등 극단적인 댓글도 눈에 띄었다.

더군다나 남씨의 범행 사유는 사법 농단과 무관한 개인 소송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남씨는 "민사 소송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내 주장을 받아주지 않아서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자신이 제조한 사료에 대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친환경인증 부적합 처분을 내려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이후 대법원 앞에서 공정한 재판을 촉구하며 약 3개월여간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해 왔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사법부가 문제를 노출하고 위상을 스스로 떨어뜨렸다고 해도, 이번과 같은 테러 행위에 '잘 했다' '더 해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사회가 정상적이진 않아 보인다"며 "극단적인 불신 혹은 출구 없는 분노를 방조하는 세태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사법부가 내외부의 파열음을 수습하고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사회에 각인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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