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미워하는 운동은 성공할 수 없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11.29 16:54
  • 호수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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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40년 진보 운동가 정성헌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1970년대 박정희 정신으로 출발해 오십 줄을 바라보고 있는 새마을운동중앙회. 줄곧 대표적 관변단체, 보수정권의 전유물이라는 딱지가 따라붙던 이곳은 지난해 정권교체로 인해 크나큰 위기를 맞는 듯 보였다. 모호한 정체성에, 시대정신에도 뒤처져 있다는 지적들이 폭격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지난 2월, 방향을 잃어가던 이곳의 수장으로 진보진영의 원로 정성헌 회장이 깜짝 임명됐다. 단연 근래 가장 파격적인 인사 중 하나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이라는 경력들과도 좀체 연결되지 않는 인사였다. 게다가 그는 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내란죄 혐의로 구속된 바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오랜 ‘악연’을 가진 그가 지금, 새마을운동이라는 멈췄던 시계를 되살리며 새마을운동중앙회 조직 전체에 새 숨을 불어넣고 있다. 고루한 새마을운동 정신에 생명평화운동이라는 새 옷을 입혀서 말이다.

정 회장은 지난 40여 년간 굵직한 우리 사회 운동사의 흐름과 함께해 왔다. 학생운동·농민운동·민주화운동·통일운동까지 거치며 화려한 타이틀도 많이 가졌다. 그러나 그는 그저 ‘운동가’라는 부름을 가장 선호한다. 운동가라는 이름 안엔 꾸준히 가치를 지향하고 실천한다는 의미가 담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앞다퉈 다양하게 목소리를 내는 소위 ‘운동가’들에 대한 쓴소리에도 아낌이 없다.

11월20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정 회장을 만났다. 그는 오늘날 많은 운동들이 대중과 함께하지 못하고 교조적이며, 운동 정신의 뿌리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오랜 운동을 거치며 ‘생명’을 정신의 뿌리로 삼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을 수단화한 거대문명과 자본, 그곳에 기생하는 세력으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한 어떤 사회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며 “‘생명평화운동’이야말로 더 이상 환경운동가들의 영역으로만 맡겨선 안 될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어떻게 이 뜻밖의 자리(새마을중앙회장)를 맡기로 결심했나.

“지난해 여름쯤, 같이 운동하던 후배들을 비롯해 내가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이 돼서 새마을운동을 좋게 바꿨으면 한다는 강력한 요구들이 여러 군데서 있었다. 내가 몸도 안 좋고 강원도 인제에 그냥 있겠다 했지. 새마을중앙회가 행정안전부 소관 단체인데, 김부겸 장관이 마침 나랑 30년 넘게 같이 운동해서 서로 잘 안다. 김 장관도 ‘선배님 다른 말씀 마시고 좀 맡아주시라’ 하더라. 한번 거절했는데, 새마을운동을 좋은 운동체로 바꿀 사람이 없으니 몸이 고달파도 봉사 좀 하라는 간곡한 요청들이 그 후로도 계속 있었다. 그래서 12월쯤 하겠다고 해 오게 됐다.”

임명 당시 현 정부의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도 있었다.

“일단 낙하산이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그 사람이 낙하산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정권을 잡았으면 여기저기 낙하산도 보내고 해야지. 그 사람이 낙하산인 게 아니라, 능력이나 인품이나 그 자리에 맞느냐가 중요한 거다. 그게 맞으면 낙하산 수천 개도 갈 수 있지. 나 역시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하는지를 평가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마을중앙회 처음 들어왔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이전부터 여길 아주 잘 알았다. 내가 여기 올 때, 이 조직은 틀려먹은 ‘관변단체’니까 내 사람들 여럿 데려가 점령군처럼 싹 바꾸라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건 잘 모르는 소리’라고 했다. 내가 아는 이 조직은 다르다고, 잘못해 온 것도 있었지만 잘해 온 게 더 많다고 말했다. 그거 다 무시하고 새 사람들 끌고 들어와 전부 바꾸려 들면 싸움만 나지 않겠나. 그래서 나 올 때 아무도 안 데려왔다.”

새마을중앙회가 그동안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못했다고 보나.


“제일 잘한 건 우리 구성원들, 특히 조직의 8할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돈과 시간을 써서 봉사를 하는 게 나라나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활동하게 했다는 것, 그런 사람들이 전국에 3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올바른 목표와 과제만 이해하고 움직이면 나라도 바꿀 수 있다. 이 정도 규모의 활동조직 국내에 또 없을 거다. 반면 제일 잘못된 점은 과거 오랜 시간 권력과 함께해 왔기 때문에 조직 내 자주성이 부족하다. 주체적으로 해도 되는 일들도 머뭇거리는 성향이 있다.”

그동안 보수정권에 밀착한 관변단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새마을중앙회는 공직선거법에 어떠한 정치 행위도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는 단체 중 한 곳이다. 그게 전두환 시절 민간화되면서 취지와 다르게 활용이 됐던 거지. 사실 이 조직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가장 많았고 박근혜 정권에서 제일 없었다. 보수색 강한 대구나 부산에서 ‘새마을 노래 어색하다’ ‘4·27 판문점 회담에 대한 환영 성명 내야 한다’는 등 요구를 먼저 해 오기도 했다. 사람들 생각과 다른 점이 많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 변한 게 아니라 실력 드러난 것”

인터뷰에 동석한 이갑수 새마을중앙회 조사홍보국장은 정 회장이 취임한 후 조직의 분위기나 방향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역에 있는 회원들까지 조직 전체의 변화를 곧장 느낄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는 “운동의 방향이 과거에 비해 훨씬 명확해졌다는 것. 여기가 막연한 봉사 조직인가 하는 모호한 지점이 있었는데 생명평화운동을 추구하는 활동 조직으로서 방향성이 생겼다는 게 가장 큰 변화였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곳곳에 많은 나무를 심고, 부지 한편에 친환경적으로 농작물을 키울 수 있는 유기농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한 것도 정 회장 취임 후 나타난 가시적인 변화다. 정 회장은 50년 가까이 유지된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새마을운동의 3대 정신도 머잖아 교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물 본관에 들어서면 바로 근면·자조·협동이라고 쓰인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를 무엇으로 바꿀 계획인가.

“우리의 목표는 한마디로 생명·평화·공경운동이 목표며, 따라서 이 세 가치를 새롭게 내걸 계획이다. 근면·자조·협동은 어느 일에서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다. 1970년대엔 이게 맞았지만 지금도 이걸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내거는 건 좀 맞지 않는다. 후년이 우리 조직의 50주년이니까 그 전에 의논해서 새롭게 정리를 할 거다.”

이 세 가지로 기조를 정한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좋은 운동이 되려면 사회의 가장 절실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때보다 생명과 평화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생명 살리기 운동·평화 살리기 운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 하나 공경. 이건 위에 대한 예우의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 예를 들어 학생 인권을 주장하는 운동에 공경이 없으면 학교·교사와 끊임없이 싸움이 벌어진다. 현재 한창인 미투 운동도 마찬가지다. 못난 남자들이 남성 지배구조에서 여성을 수단화하고 나쁜 언행 일삼는 현상을 폭로하고 대결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미투 운동의 지도부가 이쪽으로만 치중하면 근본을 잃고 극심한 남녀 대결구도로 바뀌어 버린다. 이미 그렇게 됐다. 못난 자끼리 서로를 혐오하게 된다. 미투가 한 차원 높은 운동으로 가려면 상대를 부끄럽게 하고 반성하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반격하게 만들었잖나. 이젠 남녀가 공경하는 운동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좀 나와 줘야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운동은 근본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일생을 운동가로 살아온 정 회장은 “환경운동 한다는 단체들이 아주 많아졌는데 왜 환경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걸까. 민주주의를 내건 단체들도 정말 많아졌고 덩치도 커졌는데 왜 민주주의는 나날이 위태로워지는 걸까”라고 스스로 물음표를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제대로 자기반성은 않고, 내부의 다른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자기주장만 하는 단체들이 많아져서일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공격을 받았을 때 무조건 ‘너는 보수, 너는 진보’ 이렇게 규정해선 안 된다”며 “이 세상은 보수와 진보, 노동과 자본으로만 구분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안에 설치돼 있는 유기농 태양광발전소. 태양광 패널 아래로 마늘·양파 등이 심어져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통일을 포기해야 통일이 빨리 온다”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최근 북한에 나무심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반도 생명 살리기 운동의 시작으로, 내년 나무를 심는 철에 맞춰 평양이나 개성에 갈 예정이다. 정 회장은 “남북협력에 있어 사업의 가짓수나 속도보다, 확실한 기조나 방향이 필수적”이라며 이 점에 있어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아쉬움도 일부 드러냈다.

한반도 평화국면에서 정부의 방향성을 어떻게 평가하나.

“물론 일단 급하니까 북한의 핵과 미사일 폐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실 더 크고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 상태로 가면 한반도는 2040년대에 준사막으로 바뀔 것이다. 핵무기를 쓴 것보다 더 황폐한 한반도가 펼쳐질 텐데, 남북이 하루빨리 생명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깊은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핵 문제에만 매달리니까 더욱 미국·중국의 눈치를 계속 보게 될 수밖에 없지 않나. 또 하나, 이번에 남북이 DMZ 안에 휴전선 감시초소(GP)를 각각 한 개씩만 남겨두고 철거했다. 무조건 철거할 게 아니라 역사적 교훈의 장으로 남겨두고 활용해야 했는데 북한에서 파괴해야 한다 하니까 서둘러 해 버렸다. 기조와 방향이 분명치 않아 그렇다. 다소 아쉬운 결정이었다.”

오랜 기간 통일운동도 이어온 입장에서 통일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나가는 게 옳다고 보나.

“역설로 들리겠지만 통일하지 말자고 하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될 거다. 북한이 생각하는 통일이랑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이랑은 아주 다르다. 저들은 이미 우리 자본주의체제가 더 우월한 걸 알아서 통일을 얘기하면 곧 우리에게 먹힌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통일을 얘기 않고 북한과 대화를 나누면 더 깊은 얘기가 이뤄진다. 통일을 포기하면 통일이 빨리 오며, 통일에 집착할수록 통일과 더 멀어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통일을 하자 말자가 아니라, 진짜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뭔지 봐야 한다. 표어만 생각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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