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기림의 재발견 “온순하며 사려 깊고…”
  •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07 11:03
  • 호수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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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도호쿠대학 학적부로 보는 시인 김기림

‘조선 함경북도 성진군 학중면 임명동 276’
‘양반 병연의 장남’
‘메이지(明治) 40년(1907년) 4월5일(41년 5월11일이라 써 있는 곳에 빨간 선을 긋고 그 위에 적혀 있음)’
‘가족: 김병연(실부 62세, 농업), 이성연(52세, 계모), 신보금(25세, 처)’
‘부(父)의 과수원으로 상당한 생계’
‘생년월일이 본인 신고와 호적등본이 다름’
‘온순하며 사려 깊고 양국 문필에 능함’
‘취미 등은 특별히 없음’
‘신장: 169.3cm, 흉부 84cm, 체중 69kg, 호흡기 주의 요함’
‘졸업 후의 근무처: 조선일보사 편집국’.

 

김기림 학적부를 보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일행과 1936년 입학생 김기림의 학적부(도호쿠대 사료관 소장) ⓒ 이인자 제공


노랗게 색 바랜 김기림의 학적부에 적힌 내용입니다. 1936년 입학 당시 가족사항 등을 적게 하고 학생 시절에 했을 건강진단, 가정 사정, 지도교수의 학생에 대한 인상, 졸업 후의 진로 등을 적어 보관한 학적부 기록입니다.
양복 차림 단정한 표정의 김기림

11월29일 아침, 도호쿠대학 사료관(史料館)을 찾았습니다. 저는 호스트 입장으로, 그리고 대학 주최의 한국학진흥간담회에 초대받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 김창겸 부단장과 사업기획실 우평균 선임연구원, 한국국제교류재단 도쿄사무소 한재호 소장은 손님으로 함께 방문했습니다. 다음 날 있을 김기림 기념비 제막식에 맞춰 9월부터 김기림에 관한 특별 전시회를 사료관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사료관 문을 열자 가토 사토시(加藤諭) 교수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한 달 전부터 면밀하게 짜인 스케줄이었습니다. 가토 교수는 사료관에 관해 짧은 설명을 해 주고 모두가 흥미진진할 학적부 원본을 꺼내 펼쳐 보여줬습니다. 옛 제국대학 중에 이렇게 학적부를 보관하고 있는 곳은 도호쿠대학뿐이라고 합니다.

양복 차림의 단정한 표정의 김기림 사진이 돋보였습니다. 입학 시 제출한 사진인 모양입니다. 동급생들 생년은 대략 1912~13년으로 돼 있습니다. 사진의 모습도 김기림의 양복 차림과 달리 고등학교 교복 차림의 아직 어린아이 모습이 역력히 남아 있습니다. 몇 안 되는 여학생은 줄무늬나 체크 문양의 기모노를 입고 총기 어린 눈의 앳된 모습으로 학적부 종이 위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무도 가족란에 처(妻)를 써놓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센다이에서는 오래전부터 김기림 기념비를 도호쿠대학에 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반드시 나오는 인물이 있습니다. 루쉰(魯迅)입니다. 도호쿠대학 의학부의 전신인 센다이 의과전문학교에서 1년 반 정도 공부했다고 합니다. 시대적 고민과 학업의 어려움으로 중퇴한 그는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선생님을 소설로 씁니다. 그게 중국과 일본 두 나라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단편소설 《후지노 선생》입니다. 1915년 도호쿠제국대학으로 의과전문학교가 편입되면서 후지노 선생은 도쿄제국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교수 자격을 박탈당하고 낙향해 개인병원을 차립니다. 이런 관계로 후에 루쉰이 그를 찾고 싶었지만 찾지 못해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베이징의과대학 교수로 모시겠다는 의뢰도 있었지만 고사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지요. 중국은 물론 일본 내 루쉰 연구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입니다.

1992년 중·일 국교정상화 20주년을 기념해 루쉰의 동상이 대학 본부 앞에 세워졌습니다. 도호쿠대학은 그가 수업을 받았던 계단교실과 김기림의 학적부가 있는 사료관에 루쉰 관련 자료를 상설 전시하고 있습니다. 중국 유학생들은 모두 교과서에 실린 그의 작품을 통해 도호쿠대학의 존재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동경하는 대학이 되고, 실제 유학 와서 배우는 학생도 많습니다.


루쉰 이어 김기림 기념비 도호쿠大에 건립

11월30일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해 김기림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서울대 남기정 교수가 김기림 기념비 건립위원의 대표가 돼 추진했고, 도호쿠대학 측에서는 우에키 도시야(植木俊哉) 이사 겸 부학장이 힘을 다해 도와줬습니다. 지면 관계상 자세히는 쓰지 못하지만 언어의 장벽은 쉽게 넘나들 수 있었으나 문화적 차이가 어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에키 이사의 처음과 다름없는 도움으로 무사히 기념비가 건립됐습니다. 루쉰의 동상과는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말입니다. 저는 도호쿠대학의 내부자이면서 한국인인 입장에서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며 그 경계를 얕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제막식을 마친 후 조용히 떠오르는 게 두 가지 있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김기림의 학적부 내용과 서울대 김민수 교수의 기념비에 담은 디자인 철학에 관해서였습니다.

“저는 도호쿠대학 유학 시절 품었던 김기림 선생의 마음을 담아 그의 ‘영혼이 깃든 장소’를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운을 뗀 디자인 설명은 센다이라는 지역이 품고 있는 역사적 아픔까지도 보듬어낸 내용이었습니다. 제막식에서 김민수 교수의 설명에 감명을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김기림 기념비가 단지 한국 유학생이나 한국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센다이 시민도 함께 가꾸고 기릴 수 있게 디자인을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제막식을 마치고 오찬자리로 함께 이동하던 오노 히데오(大野英男) 도호쿠대학 총장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총장 주최로 이뤄진 오찬자리가 디자인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이날 세워진 김기림 기념비가 앞으로 품어갈 스토리가 더욱 풍요로울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다시 학적부 이야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현재 김기림의 생년월일은 대부분의 기록에 1908년 5월11일로 돼 있습니다. 학적부를 통해 일부러 붉은 줄을 긋고 1907년 4월5일로 바꾼 것은 아마도 진짜 생년월일이 이날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달랑 한 장, 두 페이지의 학적부입니다만, 그가 도호쿠대학에서 수학하던 시절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끔 해 줍니다. 동급생보다 월등히 많은 나이, 결혼해 가정을 갖고 있는 만학도, 이미 신문기자라는 사회생활을 경험한 사회인 학생…. 결코 밝은 모습의 그를 떠올리게만 하지는 않습니다. 빨간 줄을 긋고 한 살 많은 실제 나이를 적은 부분, 아버지가 양반인 점을 기입하고 과수원으로 경제적 사정이 좋은 점을 피력한 듯한 기록과 심지어 어머니가 계모인 점까지 사실에 입각해 작성된 학적부는 사진까지 더해져 실존하는 그와 마주하고 있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킵니다. 조선일보 기자였다는 기록을 토대로 찾아보니, 그는 조선일보 공채 1기생(1930년 입사)으로 최연소 합격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1936~39년까지 도호쿠제국대학 영문과에서 수학하던 시절 조선일보를 퇴사하지만 학업을 마친 후 복직합니다.

2009년 《조선 문학의 지성 김기림》이라는 제목으로 김기림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한 아오야기 유코(柳優子)씨와 함께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던 분들이 센다이에 계셨습니다. 정기적으로 모여 김기림에 대해 조사하고 토론하면서 번역서가 탄생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는 60대를 훌쩍 넘긴(80대도 계십니다) 그분들이 이번 기념비 설립을 계기로 다시 모이게 됐다고 합니다.

루쉰과 더불어 유학생이었던 김기림의 기념비가 세워진 것을 기뻐하는 연구실 중국 유학생들은 청소를 자진해서 하겠다고 나섭니다. 조금 지나면 잊힐 수 있지만 강력한 태풍과도 같은 정치적인 난항 속에서 김기림 기념비 건립이 이뤄졌습니다. 기념비 건립은 마쳤지만 이걸 계기로 김기림과 한국, 김기림과 센다이, 김기림과 유학생 등등 김기림에 관한 스토리는 수없이 잉태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념비 건립을 염원한 ‘인류 평화’의 몸짓은 이제 시작임을 알게 됩니다. 꾸준히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 다행입니다. 또한 미야기(宮城)현을 찾는 한국인이 방문할 만한 3대 성지로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변호사의 이시노마키(石), 안중근 의사 기념비의 다이린지(大林寺), 그리고 김기림 기념비의 도호쿠대학이 완성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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