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은 길을 잃었다”
  • 김종섭 영남취재본부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24 09:58
  • 호수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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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민 고신대 총장 “획일화된 대학평가가 문제”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지방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방의 위기는 고스란히 지방대학의 위기로 이어진다. 그런 면에서 2018년 2월, 고신대 제9대 총장으로 취임한 안민 총장의 최근 행보는 여러 면에서 눈길을 끈다. 그는 “현재 한국의 대학은 길을 잃었다. 획일화된 대학평가에서 대학의 특성화를 유인할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신대는 1946년 개교한 부산 지역의 종합대학이다. 1981년 의대가 설립됐고, 의과대학 부속병원인 고신대복음병원은 부산 지역 의료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의학 발전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평양의과대학 외과과장을 지낸 고(故) 장기려 박사가 1951년 6·25전쟁으로 인한 피난민과 병마에 시달리는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부산에 무료병원인 복음진료소를 개설한 것이 시초였다. 장 박사는 고신대복음병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25년간 병원장을 지내면서 영세민들에게 의료복지 혜택을 주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으며, 1979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병원은 1978년 전국에서 두 번째, 지방에서는 최초로 암센터를 개설하기도 했다.

이렇듯 지역 사학의 명문으로 자리매김한 고신대 역시 지금의 절박한 지방대학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안 총장은 지난 2월 취임 일성으로 “교육 붕괴의 시대에 신앙에 뿌리를 내려 교회와 사회를 책임질 인재를 키워냄으로써 대학의 존재 이유를 증명코자 한다”며 “평범한 학생이 소명을 발견하고, 그 사명에 따라 탁월한 삶을 살게 하는 대학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어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한가운데 있는 대학의 총장으로서 ‘대학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되물으며 획일적인 교육부의 대학평가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안 총장은 경남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1984년 3월 고신대 교수로 임용된 후 학생처장·교무처장·부총장·총장직무대행·교회음악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국제복음주의학생연합회(KOSTA) 주강사, 부산마루국제음악제 공동대표, 부산장애인전도협회 상임이사, SFC청소년교육센터 이사, 부산시립예술단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안민 총장을 만나 지방대학의 위기 속에 그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고신대의 현주소와 미래를 들어봤다.

 

ⓒ 김종섭 제공

 

총장 취임 후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한마디로 ‘희망을 봤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수로 37년간 고신대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와 학생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학생들에게 헌신과 희생이 요구될 때 그들의 선택에 의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외 봉사활동을 통해 낮은 자리에서 나누며 베푸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이 시대에도 소망은 있다는 결론을 갖게 됐다.”

대학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교육부는 이 과정을 통해 대학특성화를 유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

“현재 한국의 대학은 길을 잃었다. 대학이 전문화와 특성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자율성과 최소한의 지원, 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획일화된 대학평가에서 대학의 특성화를 유인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교육부의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대학평가가 절실하다.”

지방대학 총장으로서 위기감이 큰 듯하다. 교육 당국에 바라는 바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인구 감소로 인한 자연스러운 신입생 부족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의 전공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전문화와 특성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자율성과 최소한의 지원, 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대학이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특성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는 교육부의 지원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에 대해 지금처럼 한 체계 아래서 획일화된 평가를 한다면 대학은 그것에 맞출 수밖에 없고, 이런 평가는 오히려 대학의 특성화를 저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고신대가 추구하는 인재상은 무엇인가.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학생들에게 의사를 꿈꾸지 말고 의사 이상을 꿈꿔라, 목사를 꿈꾸지 말고 목사 이상을 꿈꾸라는 말을 한다. 모두가 꼭대기에 올라가려 할 때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주며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고신대의 진정한 존재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품고 헌신하는 인재를 양성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꿈이자 고신대가 바라는 인재상이다.”

고신대가 모델로 삼고 있는 해외 대학이 있다면.

“나는 ‘대학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늘 던지며 대학을 경영하고 있다. 우리의 모델이 되는 대학은 현실적인 요구뿐만 아니라 ‘가치’를 핵심이념으로 대학의 존재감과 함께 국가와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학들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휘튼칼리지나 돌튼대학, 미시간의 칼빈대학 등을 들 수 있겠다.”

지방대학의 위기감이 커지는 최근, 대학발전기금 모금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꿈을 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를 책임지고 우리가 꿈꾸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아낌없이 투자할 것이다. 역사는 다수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뜻을 세운 한 사람, 준비된 소수가 이 시대를 이끌어가고 다음 세대를 책임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기 민족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를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불러서 양성하고 사람을 세우는 데 투자하고 사용하도록 하겠다.”

고(故) 장기려 박사가 고신대에 끼친 영향과 의미가 상당하다고 들었다.

“장기려 박사님은 고신대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분이 의사이자 교수로서 편한 자리에 머물 수 있었지만 낮은 자리로 가서 마지막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직접 보여주었기에 우리가 지금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음병원을 통해 세계를 섬기는 고신대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그분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기 내에 꼭 실천하고 싶은 사업이나 업적이 있다면 무엇인가.

“외형적인 업적보다도 평범한 학생들이 고신대에 들어와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세계를 살리는 비범한 학생들로 탈바꿈하는 일에 전념할 것이다. 전체 졸업생 중 30% 이상을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등 우리를 절실하게 원하는 국가들에 헌신하고 책임지는 인재로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실증해 내는 대학’을 만드는 기초를 세우는 데 전력할 것이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매일 새벽 5시마다 경건의 시간을 갖고 있다. 총장으로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고신대의 건학이념인 ‘코람데오(CORAMDEO, 하나님 앞에서)’를 떠올리며 부르심을 받은 종으로서 기쁨과 감사로 섬기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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