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세운 슬픈 신기록…파인텍 노동자 2명 409일 굴뚝농성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12.2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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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 기미 보이지 않는 파인텍 사태…회사는 요지부동

거리마다 화려한 불빛과 웃음 띤 인파가 가득한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서울 양천구 CBS 건물 앞 작은 천막 앞에도 모처럼 환한 촛불들이 밝혀졌다. 홍기탁 전 금속노조 파인텍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75m 높이의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 오른 지 408일째를 맞아,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 지회장 등이 무기한 단식 농성 중인 천막 앞에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든 것이다. 차 지회장과 송경동 시인 등이 참여한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은 파인텍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를 규탄하고 굴뚝농성을 끝내기 위해 스타플렉스 본사가 있는 CBS 건물 앞에 천막을 치고 보름 넘게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10명도 채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천막엔 입구 바깥까지 30여명의 시민들로 붐볐다. 서울 각지에서 찾아온 이들은 서로 산타 모자를 나눠 쓰고 캐롤을 부르며 단식 농성자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저녁 7시, 이들은 텐트 옆 작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김세권 대표는 약속을 이행하라" 등의 구호를 함께 외친 후 2km 남짓 떨어진 굴뚝까지 1시간 넘게 거리행진을 이어갔다.

 

12월24일 저녁, 파인텍 굴뚝농성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서울 양천구 목동 스타플렉스 본사부터 굴뚝 농성장까지 2km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시사저널 구민주

 

초를 든 손이 금세 새빨개지는 영하권 추위에도 주최 측 추산 200여명의 시민들이 행진에 끝까지 동참했다. 두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행진에 나선 김은선씨는 “이 추운 날 하늘 위에 사람이 올라가 있다는 게 그저 안타깝다”며 “노사합의사항이 있다고 들었는데 왜 이토록 지켜지지 않는지 궁금하고 화가 나 거리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20~30대 청년들로 이뤄진 단체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청년광장’ 소속 선명규씨(22) 역시 “2015년 차광호 지회장이 408일 굴뚝 농성을 하고 내려왔는데 또 이렇게 긴 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전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얘기했다. 

 

이처럼 행진 참가자들은 현 정부가 사실상 이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며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무기한 단식 농성 중인 차광호 지회장 역시 “지금 정부가 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키고 탄력근로제 기간을 확대하는 등 온전히 재벌·자본가들을 위한 정책들만 늘어놓지 않느냐”며 “이렇게 단식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부가 뭔가 해결해주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들 행진을 인도하는 차량에서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고공농성이 있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100일 안에 내려오게 했다. 그런데 노동자 정권임을 자칭한 문재인 정부에서 지금 400일 넘게 고공농성이 이어지고 있다”며 “하늘에서 절규하는 노동자를 외면하면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뭐가 다른가”라는 내용의 오디오가 흘러나왔다. 

 

서울 양천구 목동 스타플렉스 본사 건물 앞에 설치된 무기한 단식 농성 천막. 12월24일 차광호 파인텍 지회장 등이 천막 안에서 보름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시사저널 구민주

 

회사와 투쟁한 시간만 8년여


행진 참가자들은 파인텍 노동자 차광호의 2015년 408일 굴뚝농성 기록을 또다시 파인텍 두 노동자가 깨고 있는 상황을 ‘비극’이라고 칭했다. 이들이 번갈아 굴뚝 위에 머문 날만 해도 900여일. 회사와 투쟁한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긴 8년여 세월에 이른다. 굴뚝에 올랐던 이들은 모두 처음엔 ‘한국합섬’이라는 섬유가공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2010년, 재정난을 겪던 이곳을 스타플렉스라는 회사가 인수하면서 오랜 갈등은 시작됐다. 스타플렉스가 세운 자회사 스타케미칼은 공장 가동 1년 반여 만에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을 선언했다. 한국합섬에서 승계된 100여명의 노동자들은 졸지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차광호 지회장 등은 당시 회사 측에 ‘먹튀’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 노조와의 단체 협약 등을 외치며 경북 구미시에 있는 공장 굴뚝에 올랐다.

 

회사는 별도법인 ‘파인텍’을 세워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겠다 약속하며 차 지회장을 408일만에 굴뚝에서 내려오게 했다. 그러나 이내 회사가 기존의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노동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무기한 파업을 이어갔다. 파업이 진행되는 도중에 회사는 적자를 이유로 또다시 공장 문을 닫았다.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차 지회장이 굴뚝을 내려온 지 2년여 만에 2017년 11월, 다시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생존권 보장을 외쳤다. 그리고 굴뚝 위에서 두 해를 넘기기 직전인 현재까지 사태는 조금의 진전도 없이 멈춤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 CBS 건물 15층에 위치한 스타플렉스 본사. 문 옆엔 '파인텍 문제 김세권이 해결하라'라고 적힌 팻말이 놓여 있다. ⓒ시사저널 구민주

 

“파렴치한 회사”, “이기적인 노조” 울분 토하는 양측 


노사 양측은 모두 현재의 갈등이 원만히 해결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파인텍 조합원을 비롯한 노동자들은 회사가 애초부터 합의사항을 지킬 의지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스타플렉스 측은 노조가 회사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워 줄곧 무리한 요구만 해왔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단식 농성자들이 스타플렉스 본사 앞을 보름 넘게 지키고 있지만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는 ‘해외 출장’을 이유로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차광호 지회장은 “이 문제가 마음만 있으면 해결이 불가능할 게 아닌데, 김 대표가 아예 노동자에 대한 개념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의지가 조금도 없다고 보면 될 것”이라며 한숨을 내비쳤다. 

 

12월24일 기자가 방문한 CBS 건물 15층 스타플렉스 사무실엔 10여 명의 직원들이 여느 때와 같이 근무하고 있었다. 사무실 문 앞엔 농성자들이 두고 간 팻말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오가는 직원들은 현재 사태에 대해 일절 언급하긴 꺼려했다. 그 대신 이날 시사저널과 통화한 강민표 스타플렉스 전무는 20여분에 걸쳐 사측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강 전무는 “노조원들은 스타케미칼 공장 폐업을 위장폐업, 먹튀라고 하는데 실제 매달 수억원씩 적자가 나던 때였다. 그런데 당시 노조가 무리한 연봉 인상을 요구하고 파업을 해 회사를 더 어렵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후 굴뚝에 올라 농성을 하니까 2015년 7월, 단체협약·고용보장 등 노조원 요구를 담아서 합의서를 작성했고, 신설 법인을 만들어 이들을 복직시키기로 했다”며 “그런데 노조는 신설 법인임에도 상여금 800%에 명절 휴가비 등 과도한 요구를 해 와서 회사는 들어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단체협약도 체결할 수 없었다. 이게 우리 책임인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 전무는 “지금 회사가 1년 전에 보도자료 써놓고 공개를 못하고 있다. 노조가 너무 무섭다. 지금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도 이후 또 다른 요구를 해 회사를 다시 어렵게 할 게 십중팔구”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조합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굴뚝 위에 머물고 있는 홍기탁 전 파인텍 지회장은 12월25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당장 팔아도 800억원은 족히 나올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생산 공장 한국합섬을 김세권 대표가 자본금 단 399억원에 인수했다. 우리가 먹튀 자본이라고 얘기하는 이유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첫 굴뚝 농성을 마치고 회사가 세운 신설 법인을 갔을 때도 충격 그 자체였다. 사측이 합의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노동자들에게 하루 밥 한 끼만 제공했고 공장을 제대로 가동시킬 의지조차 없었다. 그렇게 공장 돌린 지 단 보름 만에 회사가 적자를 운운하며 공장 못 돌리겠다고도 하더라”고 주장했다.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 대한 지적에도 그는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조직인데, 저들은 노조가 들어오면 회사가 망한다고 생각한다. 노조가 무리하다, 과격하다 비판하는 건 노조 하지 말고 자본가들이 착취하도록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라고도 말했다. 

 

홍기탁 전 금속노조 파인텍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굴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굴뚝 ⓒ사진=연합뉴스

 

크리스마스 이브 당일 밤 9시까지 행진을 이어간 이들은 굴뚝 앞에 도착해 약 40분 간 릴레이 발언과 작은 공연을 진행한 후 해산했다. 굴뚝농성을 응원하는 파인텍지회 조합원들과 금속노조 관계자, 그리고 문규현 신부 등의 발언이 이어졌고, 굴뚝 위 두 농성자들과의 짧은 전화 연결도 이뤄졌다. 

 

부끄럽고 씁쓸한 신기록의 첫날이자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 굴뚝 앞엔 하늘 위 농성자들이 외로운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않도록 적잖은 시민과 단체들이 모였다. 이날 오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길벗한의사회 등이 굴뚝 위를 방문해 두 노동자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선 농성자들의 건강과 투쟁 승리를 염원하는 굴뚝 기도회가 이어진다.

 

[인터뷰] 굴뚝농성 홍기탁 전 파인텍 지회장 “문재인 정부, 자본가를 위한 정부”

 

409일. 약 9816시간 동안 한 번도 땅을 밟지 못한 두 농성자의 굴뚝 위 두 번째 크리스마스는 많은 시민들의 응원 속에 따뜻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그들 앞에 놓인 투쟁의 앞날은 여전히 매섭기만 하다. 75m 상공, 그들이 눕고 설 수 있는 생활공간은 6m 남짓이다. 밥은 줄을 내려 받아 먹고, 함께 올라오는 생수통 두어 개 혹은 물티슈로 샤워를 대신한다. 지난여름 한낮 60도가 넘는 혹서를 겪었다. 이젠 영하 20도 추위에 맞서고 있다. 

 

12월25일 오전 시사저널은 굴뚝 위 농성 중인 홍기탁 전 파인텍 지회장과 통화했다. 25분 가까운 통화 내내 홍 전 지회장의 목소리보다 더 큰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몸이 확실히 정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드러냈다. 통화 내내 그는 “촛불 요구를 역행하고 있다“고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끝까지 농성을 이어갈 의지를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파인텍 문제를 비롯해 노동자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고 보나.

"2017년 11월12일, 우리가 굴뚝에 올라온 건 단순히 우리 문제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촛불의 요구가 사라지겠다, 노동자들이 싸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마음이 컸다. 그게 점점 더 심각한 현실이 돼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했잖나. 그 이후로는 아예 정부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올 한해 돌아보면 민중이나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적폐청산 중 어떤 것도 해결된 게 없다." 

 

정부여당의 노동정책에 대해 ‘후퇴하고 있다’며 노동계가 비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한번 찾아왔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중적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유한국당과 협치해 탄력근로제, 부당노동행위 처벌 폐지 등 법안을 내놓고 있지 않나. 이런 친(親)재벌 정책으로 인한 고통은 온전히 노동자들이 감내하게 된다. 이렇게 반(反)노동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현 정부가 그럼 박근혜 정부랑 다를 게 무엇이겠나.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대가 있던 만큼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도 더 클 것 같다.

"감나무에 홍시 떨어지길 바라던 노동자들은 반성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들은 단 한 번도 노동자와 민중들을 위한 법안을 만든 적이 없었다. 법안을 만들었다가도 누더기가 돼 통과시키곤 한다. 이들에게 무얼 바라겠나. 촛불의 요구와 갈망을 바꿔갈 자신이 없으면 그 자리를 내려놓으라고밖에 우리는 요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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