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노사교섭 무산…파인텍 굴뚝농성 끝날 수 있을까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12.31 09:26
  • 호수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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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여일 만에 마주한 노사…“직접고용하라” vs “굴뚝 내려오라”

12월25일 크리스마스 당일, 409일이라는 최장기 굴뚝농성 세계 신기록을 세운 파인텍 사태가 12월27일과 29일 두 차례의 노사교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노조는 소속 조합원 5명을 파인텍 모회사인 스타플렉스 공장에 고용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사측에서 직접고용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끝내 합의가 불발됐다. 

 

굴뚝 농성 411일째인 2018년 12월2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차광호 지회장(왼쪽)과 이승열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첫 노사 교섭을 마치고 나와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들 간 합의는 당분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이지만, 400여일 만에 노사가 처음 마주앉아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것 자체로 고무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크리스마스 전후 굴뚝을 향해 보였던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노사 교섭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지난 12월24일 저녁, 홍기탁 전 금속노조 파인텍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75m 높이의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 오른 지 408일째를 맞아,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 지회장 등이 한달 가까이 무기한 단식농성 중인 천막 앞에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영하권의 날씨에도 이날 200여명의 시민들은 굴뚝농성장까지 2km 거리를 행진하며 투쟁승리를 외쳤다.

 

행진 참가자들은 2015년 차 지회장의 408일 굴뚝농성 기록을 또다시 파인텍 두 노동자가 깨고 있는 상황에 대해 ‘비극’이라 불렀다. 이들이 번갈아 굴뚝 위에 머문 날만 해도 900여 일. 회사와 투쟁한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긴 8년여에 이른다.

굴뚝에 올랐던 이들은 모두 ‘한국합섬’이라는 섬유가공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2010년, 재정난을 겪던 이곳을 스타플렉스라는 회사가 인수하면서 오랜 갈등은 시작됐다. 스타플렉스가 세운 자회사 스타케미칼은 공장 가동 1년 반여 만에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을 선언했다. 한국합섬에서 승계된 100여 명의 노동자들은 졸지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차광호 지회장 등은 당시 회사 측에 ‘위장폐업’ ‘먹튀’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 노조와의 단체협약 등을 외치며 경북 구미시에 있는 공장 굴뚝에 올랐다. 그리고 그 위에서 408일을 보냈다. 


회사는 별도 법인 ‘파인텍’을 세워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며 차 지회장을 내려오게 했다. 그러나 이내 회사가 기존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노동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무기한 파업을 이어갔다. 파업이 진행되는 도중 회사는 적자를 이유로 또다시 공장 문을 닫았다.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차 지회장이 굴뚝을 내려온 지 2년여 만인 2017년 11월, 다시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생존권 보장을 외쳤다. 그리고 처음 408일의 기록을 깨버리고도 며칠이 더 지난 지금까지 사태는 별 진전 없이 정체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12월24일 기자가 방문한 CBS 건물 15층 스타플렉스 사무실엔 10여 명의 직원들이 여느 때와 같이 근무하고 있었다. 시사저널과 통화한 강민표 스타플렉스 전무는 “노조원들은 스타케미칼 공장 폐업을 위장폐업, 먹튀라고 하는데 실제 매달 수억원씩 적자가 나던 때였고, 당시 노조가 무리한 연봉 인상을 요구하고 파업해 회사를 더 어렵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후 굴뚝농성을 하니까 2015년 7월, 단체협약·고용보장 등 노조원 요구를 담아 합의서를 작성하고 신설 법인을 만들어 복직시켰다”며 “그런데 노조는 신설 법인임에도 상여금 800%에 명절 휴가비 등 과도한 요구를 했고 그 때문에 단체협약도 체결되지 못했다. 이게 우리 책임인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 전무는 “지금 회사가 1년 전 보도자료도 써놓고 공개를 못 하고 있다. 노조가 너무 무섭다. 지금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도 이후 또 다른 요구를 해 회사를 어렵게 할 게 십중팔구”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조합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굴뚝 위에 머물고 있는 홍기탁 전 파인텍 지회장은 12월25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당장 팔아도 800억원은 될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생산공장 한국합섬을 김세권 대표가 자본금 단 399억원에 인수했다. 먹튀 자본이라고 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첫 굴뚝농성 후 회사가 세운 신설 법인에 갔을 때도 충격 그 자체였다. 합의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노동자에게 하루 한 끼만 제공했고 공장을 제대로 가동할 의지도 없었다. 그렇게 공장 돌린 지 보름 만에 회사가 적자를 운운하며 공장 못 돌리겠다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노조가 무리하게 요구했다는 지적에도 그는 “노조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조직인데, 저들은 노조가 들어오면 회사가 망한다고 생각한다”며 “노조가 무리하다, 과격하다 비판하는 건 노조 하지 말고 자본가들이 착취하도록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단식 중이던 차광호 지회장 역시 12월24일 “이 문제가 마음만 있으면 해결이 불가능한 게 아닌데, 김세권 대표가 아예 노동자에 대한 개념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의지가 조금도 없었다고 보면 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2018년 12월24일 저녁, 파인텍 굴뚝농성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서울 양천구 목동 스타플렉스 본사부터 굴뚝농성장까지 2km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 시사저널 구민주



두번에 걸친 노사 교섭 입장차만 확인


도통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상황은 신기록의 첫날이자 크리스마스였던 12월25일 이후 작은 변화 조짐을 보였다. 그간 파인텍 사태 해결에 도움을 주던 종교계의 중재로 농성 411일 만인 12월27일과 29일 노사가 마주 앉아 교섭에 들어간 것이다. 단식 농성자들이 스타플렉스 본사 앞을 보름 넘게 지키는 동안 ‘해외출장’을 이유로 모습을 보이지 않던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도 교섭 자리에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노사 간 만남이 진정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기엔 아직 갈 길이 요원하다.두 차례의 교섭은 모두 서로의 입장차만 있는 그대로 확인한 자리였다. 이들 간 이견은 몇 차례 만남만으로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납득할 만한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진 굴뚝농성 역시 지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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