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번역통이 살려낸 처연한 황제의 삶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05 16:00
  • 호수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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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김택규에 의해 다시 살아난 쑤퉁의 명작 소설 《나 제왕의 생애》

한 왕이 있다. 중국이고, 아래에 번왕이 있으니 황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은 한 황제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많은 이가 생각날 것 같다. 어떤 이는 진시황에게 대를 이어받은 뒤 환관 조고에 놀아난 호해나 무측천에게 휘둘린 당고종을, 어떤 이는 명나라 마지막을 장식한 숭정제나 청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연상할 것이다. 중국 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정치정세에 대책을 못 세우고 주연에 빠져 살았지만 음률에 정통하고, 사(詞)로 유명한 5대10국 남당(南唐)의 후주(後主) 이욱(李煜)을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나 조선 2대 정종 등도 떠올릴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이들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소설의 주인공은 섭국의 왕이 된 단백이다. 4번째 아들이 왕에 오르자 다른 형제들은 혼돈에 빠지고, 특히 황실 여인네들은 더 혼돈스럽다. 14살의 왕 대신에 당연히 할머니인 황보부인이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모든 것이 그녀의 발아래 움직인다. 졸지에 왕이 된 단백은 왕이 가진 권위와 새들을 사랑하는 심약함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를 가르쳤고, 의지하던 스승 각공마저 그의 옆을 떠난다. 할머니의 권위, 여인들의 질투, 정치에 대한 미몽 속에서 8년이 지난다. 결국 그를 덮던 먹구름 같은 황보부인은 그에게 부왕이 진짜 내린 왕은 이복형 ‘단문’이라는 비밀을 남기고 떠난다. 

《나 제왕의 생애》 쑤퉁 지음 | 김택규 옮김 | 문학동네 펴냄 | 344쪽 | 1만5000원 © 조창완 제공
《나 제왕의 생애》 쑤퉁 지음 | 김택규 옮김 | 문학동네 펴냄 | 344쪽 | 1만5000원 © 조창완 제공

섭국의 왕 ‘단백’의 삶에 대한 기록

유약한 왕은 어지러운 국제정세와 번왕들의 굴기에 맞서기에 벅찼다. 결국 왕권은 단문에게 넘어가고 그는 첫 순행길에서 만난 곡마단을 찾아서 길을 떠난다. 모옌, 위화와 더불어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 쑤통의 소설 《나 제왕의 생애》가 중국에서 나온 것은 2005년이다. 한국에도 2007년에 번역 출간됐다. 그런데 처음 이 작품의 번역 요청을 부탁받았다가 거절했던 중국 전문 김택규 번역가가 이 책의 번역을 맡았다.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사연을 쓰면서까지 이 소설을 번역했던 김택규 번역가를 만나 이번 책의 출간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택규 번역가는 중국 인문사의 걸작인 《이중톈 중국사》의 메인 번역자며, 《암호 해독자》(마이자 저), 《환성》(궈징민 저)등 수많은 소설을 번역했고, 지난해는 《번역가 되는 법》을 출간했다. 이번 책에 대한 의미와 더불어 중국 전문 번역가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물어봤다.  

쑤퉁의 소설은 국내에도 적지 않게 번역됐다. 《성북지대》 《다리 위 미친 여자》 등 여러 작품이 번역되고, 근래에도 《참새 이야기》가 번역됐지만 문단의 평가와 달리 국내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성장소설과 세태소설에 능한 쑤퉁의 작품세계는 다양합니다. 장편뿐만 아니라 단편소설도 대단한 분량입니다. 그 가운데 이 소설은 보기 드문 순수 가공의, 상상력을 극한까지 발휘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단백이 줄타기꾼이 돼 천하를 주유하는 광경을 중국어로 읽으면서 느꼈던 처연함은 잊을 수 없는데, 그 느낌이 이번 번역을 하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김택규 번역가는 인문, 아동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지만 무엇보다 중국 문학에 애정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를 통해 번역에 대한 애환은 물론이고, 느낌을 과감히 전달해 구독층을 가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명사이기도 하다. 그런 그를 지속적으로 당기는 중국 소설의 매력은 무엇일까. 

“중국 소설은 스토리의 힘이 압도적입니다. 한국 소설은 언젠가부터 일상적 삶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지요. 반면에 중국은 다양한 서사나 상상력을 소설 속에 불어넣습니다. 거기에 중국은 한 나라가 아니라 지방마다 각기 다른 특색과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화에게는 항저우 등 화동지방의 음산한 공기가, 모옌에게는 산둥지방의 들판 냄새가 있습니다. 거기에 근 50년 동안 해방, 대약진, 문혁, 개혁·개방이라는 롤로코스터를 탔는데, 그런 게 스토리로 결합돼 더 큰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번역가 되는 법》 출간…번역 멘토 역할도

다양한 분야를 번역하면서 김택규 번역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중국에 대한 가장 큰 오해와 편견이 궁금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을 이해할 때 가장 큰 특징은 모든 문학이나 문화를 거대한 역사적, 정치적 사건과의 연관성 속에서만 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문화대혁명이나 개혁·개방의 틀로 중국을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문학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습니다. 제가 번역한 마이자의 《암호 해독자》는 독특한 시각과 자극적인 서술에 복잡한 수학 이론을 결합해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몰입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중국이 가진 인문의 힘을 더 정확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택규 번역가는 올해 2월 《번역가 되는 법》을 출간하는 등 번역 멘토로서 역할도 하고 있다. ‘두 언어와 동고동락하는 지식노동자로 살기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국에서 번역가로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한 보고서다. 새벽 첫차로 집 근처에서 멀지 않은 수도권 도시의 카페로 나가, 종일 번역서와 씨름하고, 그러다가 주변이나 지인들에 대해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방문자들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그는 그런 삶에 만족할까.

“제가 만나고 어울리는 출판인이나 번역가나 모두 경계인처럼 삽니다. 불안정하지만 그들 모두 착합니다. 프리랜서라지만 관여하는 일의 종류가 여러 가지이고 호주머니가 바닥나는 것을 못 참는 성격이어서 열흘에 한 번 정도는 밤을 새우는 게 당연할 정도로 빡빡한 생활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다 페이스북 친구가 포스팅에서 제 습관을 일본 군국주의 시기의 ‘총동원체제’와 연결시키는 논리를 보고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그걸 그만두고 싶어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시 돌아가는 관성도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그는 《책 물고기》처럼 변신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책 물고기’는 그가 지난 10월 번역한 왕웨이롄의 책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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