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보다 진일보한 한반도 영화가 절실하다
  • 서영수 영화감독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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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분단’ 소재 외면 말고 다양한 시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야

《강철비》는 연이은 북한 핵도발로 전쟁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12월 관객과 만나 445만 명이 지켜본 한반도 소재 영화다. 첩보액션 블록버스터《강철비》가 보여준 임팩트는 북한 핵 위기상황과 맞물려 영화 속 이야기가 허구라기보다 증강현실처럼 어필했다. 북한의 선전포고에 강경하게 맞대응하는 대한민국과 미국은 전쟁시뮬레이션과 전후복구비용까지 점검한다. 전쟁돌입 초읽기에 들어간 순간 극적인 반전을 끌어내는 《강철비》의 서사는 2018년 1월1일 김정은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예언하듯 평화모드로 마무리된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필두로 3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당초 김정은국무위원장의 답방이 예정되어 있던 2018년은 현실이 상상을 초월하는 한 해였다.

《강철비》를 연출한 양우석 감독이 2011년부터 연재한 웹툰 《스틸레인, Steel Rain》에 뿌리를 둔 《강철비》는 한반도가 핵으로 인한 전쟁위기에 내몰리는 단초를 북한군이 탈취한 미군의 MLRS(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다연장 로켓포에서 발사하는 확산탄) 두발로 시작한다. 집속탄(Cluster Bomb)이라고도 부르는 MLRS는 지상이 아닌 공중에서 폭발하며 수만 발의 강철탄환이 비처럼 뿌려져서 주변을 초토화시킨다. 제대로 된 사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살상능력 때문에 140여개 국가는 사용 금지협약을 맺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군이 사용한 집속탄에 이라크군이 붙여준 악명이 ‘스틸레인’이다.

ⓒ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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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비》의 두 주인공에게 모두 ‘강철비’를 뜻하는 ‘철우’라는 이름을 부여한 양우석 감독은 북한에서 무자비하게 벌어지는 쿠데타로 강렬한 서막을 전개한다. 정찰총국장(김갑수)이 극비리에 부여한 ‘쿠데타 사전차단’ 임무를 수행하던 임철우(정우성)는 ‘스틸레인’으로 초토화된 개성공단에서 쿠데타세력의 눈을 피해 중상을 입은 ‘북한1호’를 엄호해 대한민국으로 내려온다. 쿠데타를 피해 남한으로 탈출하는 중국 관료와 공단관계자 차량들에 뒤섞여 북한을 탈출해 일산까지 오는 과정은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북한1호가 피신해왔다는 엄청난 설정에 묻혀 큰 오점은 되지 않는다. 

《강철비》는 북한 쿠데타세력이 대남선전포고를 하고 핵탄두를 발사하는 긴박한 상황을 보여준다.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은 자국이익을 위해 확전을 막으려하지만 대한민국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북진통일의 기회로 삼으려한다.  임기가 끝나가는 대통령(김의성)과 대통령당선인(이경영)의 이견은 남남분열을 상징한다. 사망한줄 알았던 북한1호가 남한에 내려온 것을 눈으로 확인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는 남북공멸을 막기 위해 북에서 내려온 임철우와 손을 잡는다. 

《강철비》에서 임철우는 영국학회(English school, 국제사회학파)를 이끈 헤들리 불(Hedley Bull, 1932~1985)이 피력한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하여 더 고통 받는다"라는 곽철우의 대사에 공감한다. 북으로 돌아간 임철우는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 정찰총국장에게 이 말을 유언처럼 전달한다. 얼핏 무질서해 보이는 국제사회에서도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음을 강조한 《무정부 사회(The Anarchical Society, 1977)》를 저술한 헤들리 불의 이론은 냉전이 끝나고 새롭게 인정받아 미국외교통상정책에 많은 지침이 되기도 했다.

《강철비》는 근래에 만들어진 한반도 소재영화가운데 군계일학이다. 같은 해에 선보인 《공조》와 《VIP》에 견주면 분명한 메시지와 비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한나라당에서 국면 전환을 위해 북한에게 휴전선에서 도발을 요청한 '총풍사건'에 협조하지 않은 ‘흑금성’을 다룬 영화《공작》과 《강철비》는 결은 다르지만 정권이 아닌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 봉사한다는 지향점은 같은 영화다. ‘웰 메이드 무비’임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 모두 ‘한민족 화해’라는 센티멘털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강철비》의 남북한 철우들이 보여주는 가족 사랑과 ‘깽깽이국수’를 통한 한민족 강요정서는 한반도 소재영화에서 그 옛날 번성했던 ‘반공영화’ 만큼 식상하다. 관에서 주도했던 대종상영화제에서 ‘반공영화상’부분이 1987년까지 존속했다. ‘반공영화상’을 수상하면 외국영화수입쿼터를 제작사에 주는 특혜가 있어 경쟁이 치열했다. 연간 외국영화수입편수에 제한이 있었던 그 당시 외국영화수입쿼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정부에서 ‘반공영화’제작을 적극 지원하고 독려하던 그 시절에도 ‘반공’과 무관한 ‘반동’영화가 나왔다. 

《강철비》처럼 ‘반공’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한반도소재 영화의 효시를 1999년 개봉한《간첩 리철진》과 《쉬리》로 흔히 알고 있지만, 1984년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남북한민족의 웃음코드와 해학을 다룬 엉뚱한 영화가 있었다. 《난타》로 유명한 송승환이 남파간첩 역을 맡은《나도 몰래 어느새》는 서슬 시퍼런 제5공화국 시절에 ‘반공영화’가 아닌 ‘한민족영화’로 만들어졌다. 제작비지원과 외국영화수입쿼터라는 당근 대신 검열이라는 채찍을 선택한 《나도 몰래 어느새》는 정권이 바뀐 후에 개봉할 수 있었다.

《강철비》는 30여 년 전부터 다뤄온 ‘한민족딜레마’가 더 이상 신선한 미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반부에 설정한 다이내믹한 서사대신 ‘브로맨스’에 의존해 김빠진 후반부를 보여준다. 분단현실과 한국전쟁을 영화소재로 삼으려면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더 이상 신선함이 아닌 식상함으로 전락한다. 한반도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죽어있는 시신을 해부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에게 메스를 가하는 진중함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민감한 소재일수록 감독의 유연한 시각과 높은 완성도를 요구한다.

《강철비》를 연출한 양우석 감독을 포함해 한반도에서 활동하는 모든 감독들은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태어난 축복 받은 숙명이다. 현실보다 못한 상상력 부재의 영화에서 벗어나 전 세계 어느 나라 영화인보다 잘 만들 수 있는 ‘분단’이라는 소재를 외면하지 말고 《강철비》보다 진일보한 한반도영화가 다양한 시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져야한다. ‘봄이 온다’에 이어지지 못한 2018년 ‘가을과 겨울’이다. 겨울에 온다던 ‘그'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2019년에도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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