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탄 자살’ 많은 지역도 찾아내는 심리부검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0 17: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역별 자살 원인 분석해 ‘맞춤 예방대책’ 마련
“자살자 수, 연 1만 명 이하로 낮출 것”

최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자살 소동으로 세간이 떠들썩했다. 실제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지만, '요즘 일로 힘들다'거나 '행복해라'는 등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를 남기고 잠적했었다. 

자살자는 생전에 자살을 암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 또 자살이 많이 발생하는 장소, 시간, 방법도 모두 다르다. 이런 것들을 매우 세밀하게 분석하면 구체적인 자살 예방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이것이 심리부검이다. 부검이 죽은 자의 시신을 검사해서 사망 원인을 찾는 것이라면, 심리부검은 자살 사망자의 유족 면담과 경찰 조사 등을 통해 사망에 영향을 끼쳤을 원인을 찾아 분석하는 일이다. 투신을 많이 하는 다리 난간에 '힘을 내라'는 식의 문구를 써놓는 것이 간접적인 자살 예방법이라면, 심리부검은 직접 자살률을 낮추는 효과를 낸다.  

심리부검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 미국에서 자살이 증가하자 그 원인을 파악해 대책을 세울 목적으로 고안됐다. 이후 핀란드가 전 국민을 상대로 심리부검을 진행하면서 그 중요성이 입증됐다. 과거 핀란드의 자살률은 한국의 2배를 넘을 정도로 심각했다. 핀란드 정부는 자살자 전체에 대한 심리부검을 진행해서 대책을 마련했다. 이후 핀란드 자살률은 그 이전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심리부검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가족에 대한 배려다. 유가족은 일반인보다 자살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이 이들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제2의 자살'을 막을 수 있다. 


10~39세 사망원인 1위 '자살' 

국내 자살자는 한해 1만2000명대에 이른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자료에 따르면, 자살자는 2013년 1만4427명에서 2017년 1만2463명으로 다소 줄었다. 이 시기에 여러 지역에 자살예방센터가 마련돼 자살 예방 활동이 이뤄진 덕이다. 그러나 스펙트럼을 조금 더 넓혀 2007년과 비교해보면, 자살자 수는 10년 동안 매년 약 1만2000명 수준으로 큰 변화가 없다. 

이는 연간 인구 10만 명 당 23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 사망률 국가군에 속한다. 2018년 기준, OECD 평균은 11.9명이다. 미국 13.8명, 일본 16.6명이고 터키는 2.1명, 영국 7.5명이다. 

이처럼 자살 예방 활동이 한계를 드러낸 것보다 더 심각한 점은 젊은 층의 주요 사망원인이 자살이라는 사실이다. 통계청의 '2017년 사망원인 통계'자료를 보면, 자살은 10~39세 사망원인 1위이고, 40~59세에선 2위다. 

국내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에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정작 자살자에 대해서는 우울증, 신변 비관, 경제적 문제 등 표면적인 이유를 붙여 개인의 일로 치부한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부족해 자살 예방이 부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종현 시사저널 기자=지난해 2월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하는 다리난간에 박선욱 간호사 추모 리본이 달려있다. 박 간호사는 지난해 초 '태움'이라는 간호사 따돌림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종현 시사저널 기자 = 지난해 2월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하는 다리난간에 박선욱 간호사 추모 리본이 달려있다. 박 간호사는 지난해 초 '태움'이라는 간호사 따돌림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 경고 신호의 공통점, 말·행동·정서로 표출  

이를 위해 정부는 심리부검을 도입했다. 보건복지부는 2014년 중앙심리부검센터를 설립해 350명의 자살자에 대한 심리부검을 진행했다. 그 결과, 자살자는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자살 경고 신호를 보낸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경고 신호란 자살자가 자살을 생각하거나 자살할 의도가 있음을 드러내는 징후를 의미한다. 

자살 경고 신호는 크게 언어적·행동적·정서적 방식으로 표출된다. 자살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거나, 아예 말수가 줄어들기도 한다. 잠을 못 이루거나, 체중이 감소하는 증상도 보인다(별도 표 참조). 주변 사람이 이런 증상을 발견하고 자살을 예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만일 어떤 행동과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짧은 자살 예방 교육을 받아두는 것도 좋다. 예들 들어, 중앙자살예방센터는 단체나 개인을 대상으로 3시간짜리 게이트 키핑이라는 교육을 무료로 진행한다. 지금까지 20~30만 명이 이 교육을 받았다. 

전홍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오랜 기간 옆에서 같이 생활한 가족이나 친구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말·행동·정서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평소 대화를 잘하던 사람인데 말수가 적어지거나, 출근이나 등교를 하지 않으려는 변화 같은 것 말이다. 또 자살자 본인도 힘든 점을 주변에 말한다"며 "많은 자살자의 심리를 부검해보니, 대부분 자살 직전까지 비관적인 생각에 함몰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좋지 않은 생각에 몰입해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럴 때 주변 사람이 말을 걸어서 비관적인 생각에서 빠져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가 비관적인 생각에 몰입한 사실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기도 한다. 그런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심한 상태라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을 받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에 맞는 자살 예방 정책 수립 가능"

자살이 많고 적은 지역에 대한 통계는 있지만, 그 원인을 분석한 자료는 없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매우 세밀한 심리부검을 통해 자살 원인 자료를 제공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 데이터를 기초로 삼아 특정 지역에 맞춘 자살 예방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 

전 센터장은 "특정 지역에 맞는 '맞춤형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심리부검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부터 경찰청 자료 등으로 전국 지역별 자살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실직자가 많은 도시가 있고, 고령화가 과하게 진행한 마을이 있으며,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주민 이동이 많은 곳도 있다. 또 집에서 자살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숙박업소가 주요 자살 지역인 곳도 있으며, 자살에 번개탄을 주로 사용하는 지역도 있다. 자살의 원인과 방법 등이 제각각이라는 의미"라며 "이런 정밀한 심리부검을 통해 그런 지역과 장소에 맞는 자살 예방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예컨대 아이들의 자살률이 높은 지역에서는 자살 예방 교육이 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심리부검을 통해 국내 연간 자살자 수를 1만 명 이하로 낮추려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 심리부검으로 밝힌 자살 경고 신호  

1. 언어  
-자살, 살인, 죽음에 대한 말을 자주 한다. 
-신체적 불편함을 호소한다. 
-자기비하적인 말을 한다. 
-자살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한다. 
-사후세계를 동경하는 말을 한다. 
-자살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편지, 수양록, 노트 등에 죽음과 관련된 내용을 적는다. 

2. 행동     
-수면 상태의 변화: 평소보다 너무 많이 자거나 너무 적게 잔다. 잠들기 어려워하거나 잠이 들고 난 후에도 자주 뒤척이고 너무 일찍 잠에서 깬다. 
-식사 상태의 변화: 평소보다 덜 먹거나 더 많이 먹는다. 다이어트를 하거나 신체적 질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체중이 감소하거나 증가한다. 
-주변을 정리한다. 
-자신의 자살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평소와 다른 기괴하거나 비일상적인 행동: 위험하고 무모한 방식의 운전 등을 한다. 
-집중력 저하 및 사소한 일에 대한 결정의 어려움: 이로 인한 수행 저하가 발생한다. 
-외모 관리에 대해 무관심하다. 
-자해 행동이나 물질남용을 보인다. 
-죽음과 관련된 음악, 시, 영화 등에 과도하게 몰입한다. 
-어긋났던 인간관계를 갑자기 개선하려고 노력하거나(예전에 잘못했던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등) 신변정리를 한다.
-평소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 

3. 정서    
-감정 상태의 변화: 죄책감, 수치감, 외로움, 평소보다 화를 잘 내거나 짜증을 낸다. 멍한 모습을 보인다. 절망감, 무기력감, 스스로 무가치하게 여긴다.
-무기력, 대인기피, 흥미 상실: 평소에 기쁨을 느끼던 활동을 더 이상 즐기지 않거나 타인과의 관계를 피한다.
(중앙심리부검센터)

 

■ 심리부검으로 도출한 생애주기별 자살사망자 특성

1. 청년기(19~34세) 
위험요인=성인기 이전 부정적 사건. 연애 관련 문제.  
특성=성인기 이전에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한 비율이 높음. 
연애 관계와 관련하여 연인과 다투거나 불화 혹은 연인과의 이별 문제가 높음. 

2. 중년기(35~49세)  
위험 요인=경제적 어려움. 직장 스트레스.  
특성=직장 내 대인관계, 이직 및 업무량 변화, 실직 등 직업 관련된 스트레스 사건을 경험하는 비율이 높음. 
경제적 문제가 많았으며 세부 항목으로는 부채가 주요 요인이었음. 
부채 중에서도 주택 관련된 부채 비율이 타연령보다 높음. 

3. 장년기(50~64세) 
위험요인=직업 및 경제 관련 스트레스. 자살 관련 행동. 
특성=직업 관련하여 실업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높음. 
경제적 문제에서 부채와 관련된 스트레스 비율이 높은데 부채의 원인은 사업자금, 생활비인 경우가 많으며, 수입 감소로 인한 스트레스도 상대적으로 높음. 
과거 자살을 시도한 비율, 정신건강 치료·상담 비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으며 가족의 자살 시도·사망을 경험한 비율도 높음. 

4. 노년기(65세 이상)
위험요인=신체 질병 관련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 
특성=만성질환을 비롯한 신체 건강 관련 스트레스 사건 비율이 높음. 
혼자 지내거나 친구가 적고 믿고, 의지할만한 신뢰자가 없는 경우의 비율이 높은 등 사회적 관계가 취약함. 

5. 공통(전 연령)  
위험요인=정신건강 문제. 가족 관련 스트레스.      
특성=전 연령대에서 우울장애, 물질 관련 장애와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는 비율이 전반적으로 높음. 
연령대에 따라 가족 관련 스트레스 양상 다소 상이함. 
(중앙심리부검센터)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