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살 된 中 차나무 ‘차수왕(茶樹王)’은 누가 죽였나
  • 서영수 차(茶)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2 16:00
  • 호수 15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영수의 Tea Road] 1200살 中 낙수동 차나무 2017년 사망
방치 가까운 허술한 관리로 급격히 노쇠

중국 낙수동(落水洞)에는 1200살 된 차(茶)나무가 살고 있었다. 이우(易武) 지역 일대를 상징하는 차수왕(茶樹王)으로, 정부에서 지정한 이우 지역의 유일한 공식 고차수(古茶樹)였다. 조그만 산골마을은 차수왕을 보기 위해 몰려든 차 애호가와 학자, 차상들로 붐볐다. 살아 있는 화석, 차수왕 덕분에 낙수동은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핫스폿’으로 떠올랐다. 낙수동이 중국을 넘어 해외까지 명성을 떨치던 지난 2017년 8월22일 이우 지방정부는 “낙수동 차수왕이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낙수동 주민은 물론 이우 지역과 중국차 애호가에게 ‘낙수동 차수왕 사망’ 소식은 충격이었다. 사망 원인과 사후처리를 위해 학자와 차 산업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조사와 연구를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뒤늦은 관심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며 안타까워했다. 2000년대부터 불어온 보이차(普洱茶) 열풍에 낙수동 차수왕은 인기를 얻었지만 부작용도 컸다. 사시사철 밤낮없이 순례자처럼 찾아오는 탐방객들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보는 것만으로 부족함을 느낀 상당수 방문객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고 무단으로 찻잎을 채취하는 것도 모자라 나무껍질을 벗기고 가지를 꺾어 가기도 했다.

중국 낙수동의 1200살 된 차나무인 차수왕 ⓒ
중국 낙수동의 1200살 된 차나무인 차수왕

낙수동, 차수왕 보기 위한 인파로 ‘북적’

낙수동 차수왕은 인공 재배된 차나무다. 밑동 둘레가 1.27m로 수령에 비해 굵지 않았다. 하지만 신장이 12.6m로 장대하고 가지 둘레는 6m로 수려했다. 사람들의 시달림으로부터 낙수동 차수왕을 보호하기 위해 지방정부는 2011년 사방 3m 둘레에 사각형 철조망을 쳤다. 철조망 설치와 보호수라는 팻말이 낙수동 차수왕이 사망할 때까지 취한 조치의 전부였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해마다 낙수동 차수왕을 찾아가 볼 때마다 필자가 느꼈던 점은 보호하는 것인지, 가두어 놓고 방치해 둔 것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허술한 관리 속에 나날이 노쇠해 가는 늙은 차나무 모습이었다.

낙수동 차수왕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사람의 일탈행위만은 아니었다. 철망은 사람을 막아줬지만 토사유출은 막지 못했다. 비탈진 급경사면에서 서식하던 낙수동 차수왕은 흙이 유실돼 뿌리가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별다른 보호조치가 없었다. 노령으로 토양에서 영양분을 빨아들이기가 점점 힘들어져 자력으로 서 있기도 힘든 낙수동 차수왕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은 야생벌이었다. 말라가는 차나무에 작은 구멍을 내고 들어간 야생벌이 왕성하게 번식하면서 몸통 내부를 완전히 공동화해 고사(枯死)시켰다.

낙수동 주민과 지방정부는 손쓸 시기를 놓쳤다. 죽은 낙수동 차수왕의 나이는 800년 남짓으로 확정됐다. 원래 800여 년이었던 낙수동 차수왕은 2010년부터 매년 나이를 초고속으로 먹기 시작해 최고수령 1200년까지 올라갔다. 지역민들이 차수왕 나이를 터무니없이 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차 업계에서 차수왕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 지역의 차수왕을 기준으로 그 일대 차산의 차나무 수령도 대략 가늠해지기에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차수왕의 나이는 믿거나 말거나 상향 조정되기도 했다. 

낙수동 차수왕으로 명성을 얻은 낙수동은 고(古)6대 차산의 중심지 이우에서 동북향 5.5km 위치에 있다. 행정구역상 마흑채(麻黑寨)에 속한 낙수동은 이우를 대표하는 차산지로 인정받는 마흑채를 가기 위해 그냥 스쳐 지나가던 곳이었다. 해발 고도 1463m인 낙수동은 연평균 17도로 온화하고 연간 강수량도 1950mm 정도로 풍부해 차나무 성장에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지난해 기준 23가구가 살며 주민은 94명이다. 1명의 묘(苗)족을 제외하고 모두 이(彝)족으로 구성된 소수민족 마을이다. 주민 모두의 생계를 차에 의존하고 있는 전형적인 차산 마을이다.

낙수동의 원래 이름은 만락(曼落)이었다. 두 이름 모두 마을의 특수한 지형에서 유래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커다란 솥단지 바닥처럼 낮은 지대에 주거지가 형성돼 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우물이 있어 식수로 사용한다. 특이하게도 우물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있어 지하수로를 통해 근처 하천으로 물이 자연 방류된다.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물이 넘친 적이 없다 한다. 마을 촌장 말을 빌리면 “1년 내내 매일 비가 쏟아져도 절대로 범람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한다. 7선녀가 내려와 달밤에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깃든 ‘물 빠지는 넓은 구멍이 있는 곳’이 낙수동이다.

낙수동은 1970년대부터 국가지침으로 왜화(倭化) 작업을 실시한 인근 지역과 달리, 차나무 주간과 가지가 인위적으로 잘려 나가지 않은 키가 훤칠한 차나무가 많다. 사람 키 높이를 넘기지 않도록 왜화시키는 이유는 채취 작업의 편리함과 생산성 때문이다. 4km 옆에 있는 마흑채는 왜화된 차나무가 주종을 이루며 일찍부터 이우 지역을 대표하는 차산으로 ‘이우정산’이라는 광범위한 이름 대신 마을 이름을 차산지로 당당하게 밝히는 유명 차산이다. 고6대 차산인 만전(蠻磚), 만살(漫撒), 망지(莽枝), 유락(攸乐), 의방(倚邦), 혁등(革登) 등을 비롯한 그 일대의 여러 산을 통칭해 ‘이우정산(易武正山)’이라 한다. 

낙수동 마을 입구에 놓인 표지석 ⓒ 서영수 제공
낙수동 마을 입구에 놓인 표지석 ⓒ 서영수 제공

자연재해에 인재 더해져 차수왕 사망

낙수동보다 다원 규모가 크고 생산량이 많은 마흑채는 보이차 판매로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있다.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소수민족이 살던 산채에 석병(石屛)과 쓰촨(四川)성에 살던 한족이 명나라 때부터 집단으로 이주해 와서 차 산업에 종사하며 형성된 독특한 부락이 마흑채다. 낙수동 차수왕에 편승해 뒤늦게 알려진 낙수동은 생산량은 적지만 우월한 생태환경에서 서식하는 고차수로 만든 부드러운 감칠맛과 섬세한 향을 갖춘 보이차로 사랑받고 있다. 2013년 열린 제3회 이우차 경연대회에서 다른 차산들을 따돌리고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몸값을 한층 더 높이기도 했다.

낙수동 차수왕의 사망 원인은 누적된 인재와 자연재해로 결론지어졌다. 이미 서거한 낙수동 차수왕 사후처리를 놓고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지방정부가 내린 결론은 낙수동 차수왕의 ‘사망’을 ‘서거’라는 단어로 격상하고 낙수동 차수왕을 숭배의 대상으로 모셨던 사람들과 관광객을 계속 유치하기 위해 방부처리를 해서 보호벽을 만들어 살아 있던 원위치에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사람들의 지나친 사랑과 유명세로 유명을 달리한 낙수동 차수왕은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미라’가 돼 사람에게 헌신하는 볼거리로 전락했다. 지혜롭다는 인간이 자연에 저지르는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보는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