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靑통①] “소통하던 대통령이 달라졌다”
  • 이민우·김종일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4 08:00
  • 호수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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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개월 문재인 정부 “의지는 충만, 결과는 미약”
‘청와대 정부’ 넘어 ‘만사청통’ 비판 직면

“늘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갈등을 겪으면서 사회가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지지도가 낮다면 정부가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엄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중략) 희망을 주는 사회가 되도록 보다 잘 소통해 나가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록 남녀 갈등과 20대 국정 지지율 차이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최근의 인식을 담았다. 청와대 일각에선 최근 문 대통령이 다시 긴장 모드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경제 문제 등에 대한 정부 대응이 국정 지지율 추락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조사에선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높아지는 ‘데드크로스’까지 나타났다. 이대로 안 된다는 위기인식이 팽배하다.

신년 기자회견일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0개월이 된 날이었다. 임기 60개월 중 3분의 1이 지난 셈이다. 지난 20개월의 문재인 정부를 요약하면 “의지는 충만했으나 결과는 미약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청와대 스스로 논란을 자초했고, 정책 추진력은 노무현 정부에 비해서도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정무적 실책은 지지율 추락으로 귀결됐다. ‘소통하는 정부’를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정부’를 넘어 ‘만사청통(萬事靑通·모든 일은 청와대로 통한다)’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지난 20개월, 무엇이 문제였을까.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기 위한 열쇠를 지난 20개월의 행보에서 찾아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내외신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월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내외신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게 나라냐’며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나라다운 나라’를 약속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며 적폐청산으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방법론도 제시했다. 대통령은 거듭 약속했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다고, 권위주의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약속이 담긴 2017년 5월10일 대통령 신년사에 시민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지지를 보냈다. 

대통령은 약속을 지켰다. 집권 초반, 문 대통령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행보로 박수를 받았다. 5·18 행사에 참석해 아버지를 잃은 유족을 포옹하며 위로하는 진정성은 국민들의 찬사를 받았다. 국민들은 초등학생에게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고, 경례하는 국가유공자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이게 나라다”라고 했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대화하고 소통하는 따뜻한 친구 같은 대통령’의 모습 그대로였다.

대통령의 약속은 해가 바뀌자 조금씩 깨져나갔다. 늘 낮은 자세로 소통하고 진솔한 모습을 보이던 대통령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자 국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지율은 조금씩 추락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소통하던 대통령이 달라졌다’고 여긴 결정적 장면은 뭘까. 바로 문 대통령이 2018년 12월1일 뉴질랜드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국내 문제는 질문 받지 않겠다”고 한 장면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세 차례 국내 현안과 관련된 질문이 나왔지만 “짧게라도 답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국민들이 기억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과 동떨어진 모습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취임 이후 정무적으로 잊고 싶은 최악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 문재인 정부의 큰 자산은 바로 이전 정부와 구분되는 ‘소통’의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 자산의 중심엔 문 대통령의 진솔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 장면을 목격한 국민들이 “진짜 야당과 언론 지적처럼 사람이 변했나?”라고 생각하고, 확인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임기가 진행되면서 ‘변했다’는 지적을 계속해서 받아왔다. 특히 각종 논란에 대처하는 방식이 그랬다.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김태우 전 특감반원의 폭로에 대해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고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 관련 보도에 “문재인 정부에는 민간인 사찰 DNA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오만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이전 정부에서 국민들이 실망했던 공공기관 낙하산 문제와 블랙리스트 논란이 자꾸 불거지면서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조금씩 옅어졌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우며 ‘우리는 깨끗하다’고 말해 왔지만 최근 내부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며 “청와대가 ‘DNA 자체가 다르다’고 말한 것이 오히려 부메랑이 돼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히 말실수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연일 고용 통계가 발표되면서 일자리 참사를 지적하자 청와대는 일부 통계만 인용해 반박하는 진실게임을 펼쳤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폭로한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등을 ‘의인’으로 내세웠던 현 정권이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에 대해선 180도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것이 편협한 사실을 기초로 만들어진 주장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의연한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확실한 리더십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6급 행정관하고 전직 사무관에게 흔들린다고 하면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며 “이런 모습을 보며 국민이 정부를 과연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1일 청와대 비서진들과 산책하고 있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대화하고 소통하는 따뜻한 친구 같은 대통령’의 모습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여겨졌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1일 청와대 비서진들과 산책하고 있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대화하고 소통하는 따뜻한 친구 같은 대통령’의 모습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여겨졌다. ⓒ 연합뉴스

스스로 고립 자초한 ‘뺄셈 정치’ 

정무적으로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책으로 꼽는 부분이 대야(對野) 관계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마이너스 정치’를 했다는 지적이다.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여소야대의 정치 구도에서 개혁 입법을 위해선 다른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다른 야당의 손을 잡지 못했다. 비슷한 정책 성향을 보였던 정의당, 민주평화당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정작 정책은 국회에서 바꿀 수 있는데, 국민에게 호소하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렇게 지적한다. 

“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탄핵 연대’를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개혁 연대’로 끌어안지 않았을까. 탄핵 연대로 지칭되는 국회의원은 무려 234명이었다. 국민의 80%가 지지했다. 그렇다면 탄핵은 우리끼리 한 게 아니니 그 에너지를 모두 모아 헌법도 바꾸고, 선거제도도 바꾸고, 수많은 개혁과제를 1년 안에 다 처리했어야 했다. 그렇게 ‘2017년 체제’ ‘2018년 체제’를 만들었어야 했다. 촛불혁명과 탄핵 주역을 민주진영으로 축소하며 골든타임을 다 허비해 놓고 이제 와서 국민들에게 ‘손을 잡아 달라’ ‘도와 달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아쉽지만 문 대통령도 결국 ‘비토크라시’의 늪에 빠졌다.”

‘뺄셈 정치’는 야당과의 협치 가능성을 좁혔을 뿐만 아니라 인사에 있어서도 한계를 드러나게 했다. 좋은 인재를 잘 뽑아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국정 운영의 핵심이다. ‘인사가 만사(人事萬事)’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집권 초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대조되는 실험적인 인사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책의 결과물이 나타나면서 그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실험적으로 구성한 1기 내각은 국정 지지율 추락에 일조한 ‘마이너스의 손’으로 꼽힌다. 집권 첫해 깜짝 인사로 ‘찬사’와 ‘참사’가 엇갈려 나타났다면, 집권 2년 차엔 비판적 여론이 강했다. 병역기피나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에 대해 공직 배제 원칙을 정했지만, 자신이 임명한 사람들에 대해선 면죄부를 줬다. 해명 과정에선 “배제 기준에 위배된 경우는 없었다”고 하며 오만하다는 이미지를 쌓았다. 대응 방식도 청와대 내부로 문제를 끌고 들어가 대통령을 위협하는 경우도 생겼다. 2018년 4월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14일 만에 사퇴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의 1기 비서진 역시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설 때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다. 임 실장에겐 ‘부통령급’ ‘국무총리급’ 비서실장이란 꼬리표가 뒤따랐다. 임 실장이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다.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비서실장이 전면에 나선 것은 이전 정권과 비교했을 때 이례적이었다. 2018년 10월 비무장지대(DMZ) 방문 당시 선글라스를 끼고 시찰하는 모습은 자기 정치 논란에 불을 붙였다. 

‘무능 프레임’에 갇힌 文정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실패했을까.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주요 담론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축을 이뤘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했다. 어느 정책이든 순효과가 있으면, 역효과도 존재하는 법이다.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히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여론은 찬반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자인 저소득 노동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의 목소리에 비해 자영업자들의 분노가 더욱 크게 울려 퍼질 뿐이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치솟는 임대료, 소비심리 위축으로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에게 인건비 인상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었다. 반발이 불 보듯 뻔했음에도 정부는 자영업 대책을 뒤늦게 땜질 처방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일자리 참사도 마찬가지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지만 고용 부진을 막지 못했다. 최악의 고용실적을 기록한 데는 제조업 구조조정과 건설업 부진이 큰 영향을 미쳤다. 주력산업인 자동차와 조선업이 부진에 빠지면서 기여를 하지 못했고, 건설 부문에서 취업자 증가가 저조했다. 보수 정부가 집권해 어떤 정책을 펼쳐도 막기 힘든 구조였다. 보수진영에선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의 취업자 수 감소를 최저임금 인상과 연결 지어 비판했지만, 과당경쟁과 업황부진, 온라인·무인화 확산 등이 중첩된 결과였다. 

논란이 됐던 소득주도성장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인 정책을 드러내지 못한 채 담론에 머물러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을 빼면 이렇다 할 정책으로 구체화된 내용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색다른 얘기가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추진했던 기업 살리기 정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2014년부터 정책 방향을 바꿨다. 박근혜 정부에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경기부양책인 ‘초이노믹스’를 추진할 때부터 정책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정작 문재인 정부는 최 전 부총리가 내세운 ‘가계소득 증대세제 3종 세트’와 같은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지도 못한 채 담론 논쟁에 빠져버렸다. 

더 큰 문제는 대응 방식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 위기’ 프레임에 맞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지 못했다. 정국 이슈에서 야권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응하는 수세적인 입장만을 취했다.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4대악 근절’ ‘노동 5법’ 등을 제시하며 이슈를 주도했던 모습과는 상반된다.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을 추진하며 예상됐던 역효과에 ‘임기응변식 처방’을 내놓으면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그나마 주도적으로 정책을 설계한 부동산 대책에 대해선 여권 내부의 불협화음으로 그 효과를 반감시켰다. 한반도 문제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민생을 외면한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최근 청와대 내부에선 정책에 대한 회의론마저 퍼지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현재의 경제적 상황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아니라 진보의 실패라고 보는 게 옳다”며 “이념적으로 외쳤던 주장들을 현실에 적용한 순간 부작용들이 속출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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