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근로자만을 위한 조직 아니다
  •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5 11:00
  • 호수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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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기반 훼손과 직결, 상생 해법 모색해야

국내 금융산업은 최근 여러 가지로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정책기조가 금융산업을 산업으로 인식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실물을 지원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이러다 보니 금리는 낮추고, 빚은 탕감해 주고,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는 지원해 주는 식의 산타클로스 접근을 통해 산업으로서의 금융이 추구해야 할 수익성, 그리고 이에 따른 건전성에 대한 고려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카드수수료 문제만 해도 그렇다. 약 1.4조원의 수수료 감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카드회사들은 충격에 휩싸여 있다. 카드회사도 주식회사로서 적정한 수익을 창출해야 기업가치도 유지되고 신규투자도 일어나는데, 이런 부분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 카드사와 고객의 이익을 가져다가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해결하겠다는 식의 정책이 난무하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매우 위중한 가운데 국민은행 노조가 파업을 강행했다. 노조가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은행은 근로자만을 위한 조직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은행은 수많은 국민들에게 송금, 결제, 예금,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자체적으로는 주식회사다. 주주들의 자본이 투입된 이상 적정한 수준의 이익을 내야만 주가도 상승하고 건전성도 유지된다. 은행의 성과배분과 관련해서는 근로자 말고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대단히 많은 것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얼마 전 근로자 추천 이사제로 인해 논란을 야기한 바도 있다. 노조의 지지를 받는 이사가 이사회에 참석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경우 과연 그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이 든다. 특히 근로자에 대한 처우나 보상과 직결된 문제에 있어서 노조 추천 이사가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 단기적 관점에서 편파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1월8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KB국민은행 지부 조합원들이 총파업을 선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1월8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KB국민은행 지부 조합원들이 총파업을 선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노조와 경영자 입장 충돌로 파행 

이번 국민은행 파업은 페이밴드, 성과급, 임금피크제 등을 놓고 벌어진 갈등이 원인이 됐다. 더 챙기려는 노조, 너무 지나치다는 경영자 측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중재 결렬 결정이 나온 것을 보면 상황은 복잡하다.   

조직과 개인의 관계는 간단치 않다. 제로섬(zero-sum)적 시각으로 보면 조직과 개인 간에는 갈등구조가 존재한다. 그러나 상생의 구도도 가능하다. 조직이 잘되면 결국은 근로자에게 상당한 보상이 돌아간다. 사실 우리나라의 리딩뱅크 내지 수많은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에서 근무한다는 것 자체도 상당한 수준의 무형적 보상일 수 있다. 조직이 향후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보면 조직과 개인의 상생 가능성은 커진다.   

금번 파업과 관련해 54명의 임원들이 사표를 제출한 바 있다.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고객에게 돌아간다. 교사가 파업을 하는 경우 학생이 피해를 보는 구조와 비슷하다. 업무가 지연되거나 연기되는 상황도 있었고, 이에 따라 실망한 고객들의 항의도 있었다. 특히 경제 상황이 어려운데 고객까지 잃게 되면 시장점유율은 낮아지고 은행의 명성과 가치는 추락할 수도 있다. 은행의 브랜드 가치가 한번 훼손되면 회복이 어려울 수도 있다. 

파업은 고객 기반 훼손과 직결돼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인내심이 그다지 많지 않다. 기다리는 것을 못 참아 하는 분들도 많다. 또 직원들의 연봉 수준이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화이트칼라 고액연봉자들의 파업은 진심 어린 지지를 받아내기 힘들다. 금융권 전체가 불신의 대상이 되는 현 상황에서 해당 은행에 대한 반감이 조성되는 경우, 은행 성과도 나빠지고 노조에 대한 비판도 거세질 수 있다. 파업은 한 번으로 족하다. 금융업의 가장 큰 어젠다가 바로 ‘리스크 관리’다. 노조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향후에는 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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