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보고서] “‘버려진’ 게 아니라 ‘지켜진’ 아기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7 08:00
  • 호수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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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사각지대’ 국내 베이비박스 두 곳
10년간 정부 지원 없이 1600여 명 보호

#1. 새해가 밝은 지 열흘도 되지 않은 1월9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 베이비박스엔 벌써 올 들어 다섯 번의 벨이 울렸다. 건물 좌측면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의 문이 열리고 그 안 작은 공간에 아기가 놓이면, 건물 전체엔 클래식 《엘리제를 위하여》 벨소리가 울려 퍼진다. 건물 2층 가장 따뜻한 방 안엔 그렇게 들어온 다섯 아기가 아직 붉은 기운도 가시지 않은 채 나란히 누워 있다. 아기 수와 비슷한 직원과 봉사자들이 분주히 기저귀를 갈고 젖병을 물린다. 방문 옆에 걸린 화이트보드엔 엄마들이 일러두고 간 아기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가지런히 적혀 있다. 직원들이 가장 자주 들르는 창고 방엔 선반 가득 분유 수백 통과 다양한 사이즈의 기저귀 수백 개가 진열돼 있다. 모두 헌금 혹은 후원으로 마련한 것이다. 창고를 가득 채운 물품들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동이 난다. 

건물 우측으로 돌아 위치한 ‘베이비룸’은 전체 공간 중 가장 조용하고 은밀한 곳이다. 아기와 엄마가 찬 바람을 피해 천천히 이별할 수 있도록 2015년 새로 꾸려진 공간이다. 2014년 10월 새벽녘, 차마 베이비박스를 열지 못한 한 미혼모가 맨바닥에 아기를 두고 도망가버린 일을 겪은 후 이 목사 부부는 이 공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아기침대와 소파, 공기청정기가 설치된 이곳에서 엄마는 몇 번이나 아기를 안아보고 돌아보다 자리를 뜬다.

#2. 서울 주사랑공동체에 이어 2014년 국내 두 번째로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경기 군포시 새가나안교회. 이곳 역시 교회 정문 바로 옆, 50cm 남짓한 크기의 베이비박스가 설치돼 있다. 그 앞으로 신도들과 행인들이 매일 수시로 오가지만, 지난 한 해 밝은 한낮에도 아기가 들어왔다는 알림 벨은 적잖게 울렸다. 아기를 돌볼 고정 인력이 없는 탓에, 주로 신도들이 자원해 24시간 돌아가며 숙직을 한다. 많을 땐 7명의 아기를 동시에 돌보느라 여신도들이 대거 동원되기도 했다. “그때가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였던 것 같다. 전염이 우려돼 7명의 신도들이 각자 집으로 한 명씩 아기를 데려가 돌봤다. 그리고 그 7명이 각자의 아기를 입양 또는 위탁해 지금껏 키우고 있다. 우리가 베이비박스를 시작한 후 가장 따뜻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베이비박스를 담당하는 김은자 권사는 자신을 거쳐 간 100여 명의 아기들을 모두 사진으로 남겨두고 틈틈이 회상한다.

1월9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 이종락 목사가 교회 건물 한편에 설치된 60cm 남짓한 베이비박스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1월9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 이종락 목사가 교회 건물 한편에 설치된 60cm 남짓한 베이비박스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기자가 방문한 1월8일, 그 전에 있던 아기들이 모두 일시보호소·보육원 등으로 인계돼 교회에 머무는 아기는 없었다. 건물 3층에 위치한 아기방도 모처럼 불 꺼진 채 비어 있었다. 그러나 김은자 권사의 휴대전화엔 아기들과 관련한 여러 일정들이 메모돼 있다. 장애를 가진 채 찾아와 수개월째 병원에 머물고 있는 아이를 틈틈이 돌보기도 하고, 아기들을 보낼 자리가 있는 보육원이 어딘지 파악해 놓기도 한다. 한번은 수도권에 자리가 없어 전국으로 수소문한 끝에, 전라남도 영암의 한 보육원으로 아기들을 겨우 보낸 적도 있었다.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가장 작은 방’. 2009년 12월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에 의해 국내 최초 설치된 베이비박스는 올해로 10년을 넘기고 있다. 2010년 3월 베이비박스에 처음 몸을 누인 아기는 열 살이 됐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명절마다 이 목사를 찾아 안부를 전하고 있다. 10년간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를 거쳐 간 아기는 1520명. 2014년 두 번째로 생긴 군포 새가나안교회 베이비박스를 이용한 아기 116명을 더하면, 국내 베이비박스 두 곳에 의해 ‘생명’을 다시 얻은 아이들은 지난 10년간 1636명(1월9일 기준)에 이른다.

분리 위기의 母子 위한 국가 지원 ‘0원’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다.” 이종락 목사는 지난 10년 기억에 대해 가장 먼저 이렇게 밝혔다. 아내와 둘이 신생아 13명을 돌봐야 했을 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육체적 피로보다 10년간 이 목사를 더 힘들게 한 건 베이비박스 아기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후의 절차들이었다.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들어오면 주사랑공동체는 곧장 ①112에 신고를 해야 한다. 이내 ②관할 지구대의 방문 조사가 끝나면 ③며칠 내 구청 공무원이 방문해 아기를 병원으로 인도한다. ④서울시립아동병원에 가서 여러 차례 꼼꼼한 건강검사를 받고 나면 ⑤일시보호소에 머물다가 ⑥자리가 나는 보육원에 순차적으로 보내진다. 장애 판정을 받은 아기의 경우 별도의 장애아동시설로 배정된다. 그 후 ⑦보육원 원장의 재량에 따라 입양 가능 여부가 정해진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베이비박스에서 입양까지 6개월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 군포 베이비박스의 경우 시청에 담당 인력이 부족해 교회에서 119구급차량을 불러 아기를 병원까지 데려가야 한다. 인근에 신생아를 다루는 병원이 없어 차를 타고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병원으로 향한다. 

수개월의 기간 동안 아기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병원 검진비를 제외하고 모두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두 교회에서 지출한다. 생필품 등 각종 비용에 대한 정부나 해당 지자체의 예산은 ‘0’이다. 군포 새가나안교회 김은자 권사는 “밤새 아기를 돌봐줄 인력이 없으면 외부에서 급하게 사람을 쓰기도 하는데 그 사례비도 교회에서 지급한다”며 “장애아동을 시설로 보낸 경우에도 아이를 받아준 대가로 그에 필요한 물품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종락 주사랑공동체 교회 목사 역시 “최근 정부가 유기견 보호를 위한 예산으로 100억원 이상 편성했다는 얘길 들었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분리될 위기에 처한 엄마와 아기를 위한 예산이 하나도 없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2009년 설치된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 베이비박스(왼쪽)와 2014년 마련된 경기 군포시 새가나안교회 베이비박스 ⓒ 시사저널 박정훈·시사저널 구민주
2009년 설치된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 베이비박스(왼쪽)와 2014년 마련된 경기 군포시 새가나안교회 베이비박스 ⓒ 시사저널 박정훈·시사저널 구민주

10년째 합법과 불법 사이 사각지대 머물러

이처럼 베이비박스가 10년 내내 명확한 개선도 지원도 없이 법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온 까닭은 무엇일까. 익명의 산모로부터 아기를 위탁받아 보호하는 베이비박스는 현재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해당 관할 경찰도 이를 금지하거나 처벌할 경우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동안 용인해 온 것이다. 이 때문에 베이비박스에 대한 정부의 지원 논의가 몇 차례 진행되다가도 위법성 논란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되곤 했다. 베이비박스를 합법화하는 데 있어서도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힌다. 10년간 1600여 명의 아기들이 베이비박스를 거쳐 갔음에도 여전히 영아 유기를 조장하는 곳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미혼모연대 등 주요 관련 단체에서 베이비박스를 ‘영아 유기를 방조하고 아동복지법을 위반한 불법시설’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베이비박스 운영자들은 베이비박스를 ‘산모와 아기의 생의 끝에 놓인 마지막 선택지’라고 거듭 강조한다. 새가나안교회 김은자 권사는 “2017년 한 산모가 우리 쪽에 아기를 두고 돌아갔다가 경찰에 적발돼 아기와 함께 다시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 결국 엄마가 아기를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며 “열 달 내내 피 터지는 고민 끝에 택한 결정이지 결코 쉽게 유기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주사랑공동체 교회 이종락 목사 역시 “2018년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인 12개국이 모여 일본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그곳에서 독일 관계자를 만났는데, 독일엔 베이비박스가 100여 개 있고, 한 해 각각 아기 7명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한 생명이라도 더 제대로 보살피기 위해 계속해서 베이비박스를 늘려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베이비박스는 영아가 유기되는 곳이 아니라 영아를 살리는 곳”이며 “이곳 아기들은 부모에 의해 버려진 게 아니라 지켜진 아이”라고 강조했다. 


1년째 계류 중인 ‘비밀출산제’

현재 아기를 빠른 시일 내 정착시키는 데 또 다른 큰 장애물은 의무화돼 있는 ‘실명 출생신고’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는 대부분 출생신고를 거부한다. 대개 출산 사실이 노출될 시 곤란해지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2017년 실시한 통계에 따르면, 그해 1월부터 8월까지 베이비박스를 찾아 상담을 실시한 친부모 128명 중 72%(92명)가 베이비박스를 찾은 주된 이유로 ‘출생신고의 어려움’을 꼽기도 했다. 아기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출생신고가 된 아이에 한해서만 입양이 가능한 현행 입양특례법에 따라 아기의 정착지가 극히 제한돼 버린다. 입양의 기회가 원천 봉쇄된 채 대기를 거쳐 보육원으로 향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종락 목사를 비롯해 여러 관련 시민단체는 정부와 국회를 향해 꾸준히 법 개정과 지원책 마련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10년째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2018년 2월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허용하고 출생기록을 법원에서만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비밀출산 및 임산부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1년간 계류 중이다. 

오 의원은 1월9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어려운 상황에서 어쨌든 아이를 책임지고 키우는 미혼모 단체 등 여러 곳에서 여전히 반대하고 있고, 보건복지부에서도 유기가 정말 늘어날까 조심스러워하고 있어 법 통과에 진전이 느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종락 목사 역시 “법부터 제대로 구축해 더 이상 갈 곳 없는 엄마와 아기가 생기지 않았을 때 베이비박스를 없애야지, 유기가 더 늘까 우려해 무조건 이것부터 없애자고 하는 주장은 무책임한 얘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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