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銀, 인니 교민 상대 불완전 판매 의혹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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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400여명 “투자보험을 예금이라 속여 팔았다” 주장

하나은행이 불완전판매 논란에 휩싸였다. 우리나라가 아닌 인도네시아에서다.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인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고객 400여명은 2016년부터 제이에스 프로텍시(JS Proteksi)라는 저축성 보험에 가입했다. 은행에서 보험을 파는 방카슈랑스 방식으로 판매된 이 상품은 인도네시아 국영보험사인 지와스라야(Jiwasraya)가 기획한 상품이다.

인니 국영보험사, 유동성 위기로 원금 반환 못해

상품 만기일은 지난해 10월과 12월이었다. 당연히 만기 도래후 약속대로 고객에게 원금와 이자를 돌려줬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8일 지와스라야가 약속한 날짜에 원금을 돌려주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국영보험사임에도 불구하고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서 고객들의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지와스라야는 인도네시아 정부 소유의 보험사로 운영자산만 40조원에 이른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쿠닝안 거리에 위치한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본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쿠닝안 거리에 위치한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본점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타붕안 느가라 은행(BTN)‧라크얏 인도네시아 은행(BRI) 등 인도네시아계 은행을 비롯해 ANZ‧QNB‧빅토리아 인터내셔널‧스탠다드 차타드 등 대형 은행들이 이 상품을 팔았으며, 한국계 은행으로는 하나은행 인니법인이 유일하게 판매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1월 현재 1만7000여명이 이 상품에 가입했다. 한인 교민 가입자수는 474명이며 1월 현재 150여명이 원금 상환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상품 판매에 적극 나섰던 하나은행이 문제가 터지자 나 몰라라 한다는 데 있다.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은행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중 교민들의 신뢰도가 가장 높았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합쳐지면서 거래금액 규모도 한국계 은행 중 가장 많았다. 그러다보니 한국에 있는 하나은행 본사에서도 자사의 해외 진출 성공사례로 이 은행을 많이 홍보했다.

자카르타 쿠닝안 본점에서 한 인도네시아 여성이 하나은행  ATM기를 이용하고 있다.
자카르타 쿠닝안 본점에서 한 인도네시아 여성이 하나은행 ATM기를 이용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부 교민들은 하나은행이 제대로 상품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어 파장이 일고 있다. 하나은행이 금융기관의 도덕적해이로 볼 수 있는 불완전판매에 나섰다는 것이다. 피해자 박지현씨는 “창구 직원과 마케팅 직원이 상품을 설명하면서 ‘적금이며 보험 혜택도 받는다’고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최근 하나은행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유인물을 입수했다. 이 유인물에는 관련 상품을 소개하는 맨 첫 부분에 인도네시아어로 예금이라는 뜻의 ‘데포지토’(Deposito)가 분명히 나와 있다. 교민 김기봉씨는 “분명 계약 당시 하나은행 로고가 박힌 명함을 받았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지와스라야 직원이었다”면서 “계약 당시 이 직원은 여러 차례 해당 상품이 투자 상품(Investasi)가 아니라 예금(Deposito)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최근 이 직원과 고객이 주고 받은 휴대전화 문자 자료를 입수했다. 자료에는 고객이 투자상품 아니냐고 묻자 ‘투자 상품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Bukan Investasi. Ini pasti)라고 정확하게 설명했다. 문자 내용대로라면 해당 직원이 하나은행 직원이 아니라고 해도 불완전 판매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한국계 은행에 대한 관리감독 사각지대

교민들은 “인도네시아 금융권에 지난해 1분기부터 지와스라야 재정이 불안정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도 문제를 따져보지 않고 상품판매에만 열을 올린 것은 분명 하나은행의 책임”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하나은행은 올 2분기부터 순차적으로 원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 하나은행 본사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만기 경과 고객에게 은행이 원금을 대신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고객이 "투자상품 아니냐?(Investari Bukan)"고 묻자 하나은행 직원이 "아닙니다, 여사님(Bukan Mrs.) 절대 아닙니다(Pasti ini)"라고 확실하게 말하는 내용이 담긴 휴대전화 문자.
고객이 "투자상품 아니냐?(Investari Bukan)"고 묻자 하나은행 직원이 "아닙니다, 여사님(Bukan Mrs.) 절대 아닙니다(Ini Pasti)"라고 확실하게 말하는 내용이 담긴 휴대전화 문자.

최근 들어서는 불완전 판매로 보이는 또 다른 잘못이 터져 파장이 일고 있다. 교민 한유정씨는 “지와스라야의 상품 소개 자료에 보면, 중도해지 패널티가 7.5%였는데, 하나은행 인니법인에서는 10%라고 했고 유인물에도 10%라고 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피해자 A씨는 “지난해 10월부터 만기 상환에 차질을 빚었는데도 하나은행은 판매를 계속했으며, 만기가 된 고객에게는 1년 연장을 권유했다”며 하나은행을 맹비난했다. 피해자들은 청와대 신문고를 비롯해 금융위와 금감원 등 감독기관에 관련 사실을 적극 알리며 피해자 구제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해외 한국계 은행에 대한 관리 감독 권한이 우리에게 없다는 데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지에 지점을 설치할 때 해당국가 금융당국에 우리쪽이 언제든 감사를 나갈 수 있다고 말할 뿐, 통상적인 관리감독 업무는 해당 국가 책임”이라면서 “우리 금융당국이 할 수 있는 조치는 한국 본사쪽에 관련 사태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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