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노래는 이제 그만
  • 강헌 음악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2 17:00
  • 호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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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의 하이브리드 음악이야기]
평화 위협하는 세력에게 치명적인 문화적 무기였던 ‘음악’

이제 공은 미국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과연 미국과 북한 간 평화협정은 이루어질까? 그리하여 핵을 앞세운 지구촌 마지막 분단국가의 군사적 대치는 종식될 수 있을까? 지금 이 시점에서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의제지만, 한반도의 운명을 모든 면에서 결정지을 화두이기도 하다.

2018년이 저물고 2019년이 떠오르던 지난 세밑 임진각 평화의 타종 행사에서 안치환은 1993년에 김민기가 발표한 《철망 앞에서》를 가열차게 불렀다. 본래 이 곡은 군사정권의 그림자가 완전히 걷히지 않은 불안정한 국면에서, 여전히 공연윤리심의위원회란 검열기관이 온존하던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발표된 노래다. 

오리지널 버전은 작곡자인 김민기와 한동준, 장필순이 트리오로 불렀다.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 잡고 /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라는 후렴구 가사는 국가보안법의 철퇴를 맞을 만한 민감한 내용이었지만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교체되던 절묘한 정치적 상황에서 이 노래에 대한 탄압은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수 안치환은 2019년이 떠오르던 지난 세밑 임진각 평화의 타종 행사에서 1993년에 김민기가 발표한 《철망 앞에서》를 불렀다. ⓒ 사진공동취재단
가수 안치환은 2019년이 떠오르던 지난 세밑 임진각 평화의 타종 행사에서 1993년에 김민기가 발표한 《철망 앞에서》를 불렀다. ⓒ 사진공동취재단

군사정권의 그림자와 전쟁의 노래

반전(Anti-War)은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금기어였다. 우린 전쟁 노래만을 불러야 했다. 반전과 평화는 적국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는 불온한 메시지로 지탄받았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로 얼마나 많은 군가 혹은 군가 조의 노래들이 한반도 전체를 울렸던가? 그리고 영화 《고지전》의 주제가이기도 했던 《전선야곡》을 포함해 대중음악 진영에서도 얼마나 많은 전쟁의 노래가 탄생했던가?

인류의 모든 음악은 평화의 이념을 담는다. 태초에 음악이 탄생할 때부터, 모든 음악은 순수한 평화의 상태를 지향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평화의 본질이 싸구려 명상이나 휴식 혹은 위안을 의미하지 않는다. 평화는 전쟁의 타자다. 세속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많은 음악, 혹은 악기들이 전쟁에 고용됐다. 그리고 집단적 일체감을 고양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영매는 바로 노래다. 따라서 음악은 어떤 예술 양식보다도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행동이다. 인류 평화의 염원만큼이나 수많은 전쟁의 노래를 양산해 왔다.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이 대중음악이라는 새로운 육체 안에서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은 사랑과 평화(Love & Peace)의 기치 아래 20대 청년 지식인들이 중심이 돼 평화운동을 봉기한 196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이들이 내세운 유토피아적 이상은 반전과 반파시즘, 그리고 반인종차별과 페미니즘이다. 이 모든 테제의 근원에 이른바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로 요약되는 평화 의지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대학가와 공장의 모던 포크 뮤지션들은 반전 평화를 일상적으로 이슈화했고, 사이키델릭 록 음악들은 약물과 명상을 동반하며 초월적인 환각을 꿈꾸었다. 

이 60년대의 반란에서 가장 전위에 서 있었던 이들은 포크음악의 청년 좌파들일 것이다. 모던 포크의 기수 밥 딜런의 1962년작이자, 마치 우리나라의 《아침이슬》처럼 당시의 청년 지식인들의 성가가 됐던 《blowin’ in the wind》는 전쟁에 대한 가장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시대의 대표작이다. ‘얼마나 많은 폭탄들이 날아다닌 후에야 그것들이 영원히 금지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이 죽어갔음을 알게 될 것인가… 알 수 없네,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 속에 날리고 있다네’.  

20세기 역사와 함께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 대중음악은 자본과 권력, 그리고 기득권에 순응적인 음악 상품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청년 전위들이 등장하면서 막강한 파급력을 지닌 음악은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들에게 치명적인 문화적 무기가 됐다. 

연합모던 포크의 기수 밥 딜런은 전쟁에 대한 가장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노래를 많이 불렀다. ⓒ EPA 연합
가수 장필순은 제주 강정마을 등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 노래를 불렀다. ⓒ 연합뉴스

평화라는 본능에 맞닿아 있는 음악들

이 힘의 근원은 이미 흑인들의 블루스에서 증명됐듯이, 민중의 가슴속에 내재한 민요 정신이다. 밥 딜런을 위시한 60년대 음악가들에게 이 민요 정신을 일깨워준 선각자들은 미국 포크음악의 아버지 우디 거스리와 피트 시거였다. 특히 치열한 막시스트였던 피트 시거는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적들에게 노래로 맞선 인물이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은 반전의 대표적인 노래로서 수많은 후예들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흑인 민요의 선율에 소련 작가 솔로호프의 소설 《고요한 돈강》을 읽으며 영감을 가져왔다는 가사는 한마디로 압권이다. 

이 노래의 구조는 대단히 단순하다.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라는 화두로 시작한 노래는 꽃들은 소녀들이 따 갔고, 소녀들은 소년들에게 갔으며, 소년들은 병사로 끌려갔고, 병사들은 묘지로 끌려가는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마지막 5절은 그 묘지들이 꽃들로 뒤덮이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되풀이되는 숙명의 연기(緣起)를 처절하게 묘파한다.  

평화는 추상이 아니며 구체적인 현실이다. 우리에겐 더 많은 반전과 평화의 노래들이 필요하다. 음악이 위대한 이유는 이렇듯 유한적인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완전한 평화적 본능과 가장 닮아 있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히트했던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가로, 이오시프 코브존이 부른 러시아 로망스 《백학》 역시 전쟁의 참화와 살아남은 자의 처절한 슬픔을 그린 명작이다. 오랜만에 이 노래가 듣고 싶어지는 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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