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공단 폐지 위해 필요하면 효자동에 드러눕겠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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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변회 회장 선거 출마한 이율 변호사
약자 위한 법률공단?…“폐지 안하면 국민이 피해 입어”

‘법 없이도 살 사람’ 따윈 세상에 없다. 아무리 정직한 사람도 예고 없이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그땐 절실히 법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돈도 없고 지식도 얕다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1987년 법무부 산하에 법률구조공단이 설립됐다. 이 곳은 소송가액에 따라 무료로 변론을 지원해주고, 소장이나 가압류신청서 등 소송서류도 공짜로 작성해 준다. 

이 공단을 없애야 한다면 어떨까. 일반 국민의 시각에선 뜨악한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율 변호사(56)는 당당하게 공단 폐지를 주장했다. 1월21일 서울 서초구 사무소에서 시사저널과 만난 그는 “필요하다면 효자동(청와대 소재 행정구역) 가서 드러눕겠다”란 말도 서슴없이 꺼냈다. “그 전에 국민부터 설득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기자가 물었다. 그러자 이 변호사는 마치 외운 대사를 뱉어내듯 얘기를 이어갔다. 

“법률구조공단이 구조하는 대상은 이미 소외계층이 아니다. 작년 4인 가구 기준 월소득 565만원인 사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중위소득 125% 소득자까지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70%가 구조 대상인 셈이다.”

1월21일 오후 서초동에서 이율 변호사가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1월21일 오후 서초동에서 이율 변호사가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약자 위해 설립된 법률구조공단을 없애자는 변호사

그렇게 폭넓게 지원해주면 국민 입장에선 좋은 것 아닌가.

“예를 들어보자. 공단은 농협중앙회에게 매년 13억원씩 지원을 받는다. 대신 농협 위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공짜 법률구조를 해 준다. 그러면 부농들이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와서 무료로 사건을 맡기고 간다. 또 우리나라 민법은 쌍방대리를 금지하고 있다. 쉽게 말해 A를 고소한 B가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다면, 그 변호사는 A의 사건을 못 맡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부농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고소한 뒤 공단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진짜 약자들이 오히려 구조를 못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사각지대가 생기는 거다.”

그럼 약자를 위한 법률구조사업을 아예 하지 말자는 건가.

“아니다. 극빈층은 무료로 도와주되 나머지 사람들의 법률구조는 시장에 맡기라는 거다. 지금 국가는 공단을 통해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제안하는 게 법률구조공단 역할과 국선변호인제도, 형사공공변호인제도(수사 단계부터 국선변호를 받는 것)를 통합한 제3의 기관 설립이다. 일본의 로테라스(Law-Terrace·사법지원센터)와 같은 모델이다. 일본 변호사의 68%와 계약을 맺고 있는 로테라스는 무료 법률구조사업을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예산의 70%를 지원해준다. 단 구조대상이 아닌 사람은 유료로 도와준다. 대신 금액이 낮다. 일본법문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가져오면서 왜 좋은 제도는 도입 안하나?”

굳이 로테라스를 만들지 말고 법률구조공단이 구조대상에 관한 소득심사를 강화하면 안 되나.

“구조공단은 이미 너무 비대화됐다. 자정을 기대하기 힘든 수준이다. 더 솔직히 얘기해볼까. 구조공단 이사장으로 검찰 고위직이 내려온다. 이 사람은 일을 많이 했다고 과시하기 위해 구조대상 범위를 되려 늘릴 것이다.”

1996년 1월 대한법률구조공단과 농협중앙회가 농어민 법률구조사업의 완전 무료시행을 위해 농협중앙회 상황실에서 가진 농어민법률구조기금 출연협약 조인식에서 당시 김현철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오른쪽에서 2번째)과 원철희 농협회장(왼쪽에서 2번째)이 조인서를 상호교환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96년 1월 대한법률구조공단과 농협중앙회가 농어민 법률구조사업의 완전 무료시행을 위해 농협중앙회 상황실에서 가진 농어민법률구조기금 출연협약 조인식에서 당시 김현철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원철희 농협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조인서를 상호교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 변호사 시장은 레드오션을 넘어 피바다”

반대로 법률구조공단 폐지가 ‘변호사들 밥그릇 지키려는 계획’이란 비판적 시각도 있다. 

“지금 변호사 시장은 레드오션을 넘어 블러드 오션, 피바다다. 대형 로펌을 제외하고 일반 변호사들 평균 연봉 내보면 대략 5000만원이다. 여기서 임대료 내고, 인건비 주고, 세금 떼고 나면 순수입은 월 300만원 정도 될 거다. (공단에 따르면, 소속 변호사 107명의 평균 연봉은 약 1억 2000만원이다.) 생존을 걱정할 지경에 오면 인권과 정의는 딴 나라 얘기가 된다. 그러다 보니 비리가 쏟아지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간다. 폐해는 또 있다. 공단이 ‘법률서비스는 무료’란 잘못된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준다는 거다. 원칙에 어긋난다.”

법률서비스도 상품의 하나다. 자유시장경제 사회에서 정부가 민간과의 경쟁을 통해 상품 가격을 낮추는 게 왜 잘못인가.

“우리가 병원에서 의료서비스를 구매할 때 돈을 낸다. 몸에 난 상처를 봉합하는 건 유상인데, 사회에서 겪은 갈등을 봉합하는 건 왜 무상인가. 그리고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본인 부담금만 낸다. 나머지는 건강보험공단이 보험금으로 처리해주기 때문이다. 반면 변호사는 의사처럼 공적재원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법률구조법에 근거해 설립된 법률구조공단을 폐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긴 할까.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회장직 도구로 쓸 생각 일절 없다”

이율 변호사는 오는 1월28일 치러질 제95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선거에 후보로 나섰다. 당선되면 전국 변호사의 약 73%인 1만 5900명을 대변하는 이익단체의 수장이 된다. 그는 줄곧 ‘야전형 집행부’를 강조해 왔다. 선거 공보물에서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주먹을 쥐고 있다. 뒤로는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변호사의 이익을 위해 공익활동을 강제한 변호사법 27조에 대한 위헌소송을 내기도 했다. 

일각에선 서울변회 회장 자리를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로 보는 시각이 있다. 나아가 정치권으로 가는 관문쯤으로 치부될 때도 있다. 이에 이율 변호사는 “회장직을 도구로 활용할 생각은 일절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임기 2년 동안 선거운동 하듯이 회장직을 수행하겠다”며 “뜻을 관철시키지 못하면 형사처벌 받을 각오도 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가 마지막으로 “정말 공직에 나갈 생각 없나”라고 묻자, 그가 답했다. “대선에 출마할 생각은 있다. 물론 당선은 불가능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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