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상회담에서 나무심기까지…대북사업에 관변단체 대거 동원
  • 조해수·유지만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5 14:41
  • 호수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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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군 이사회 녹취파일 단독 입수
김진호 회장 “정부, 북한 나무심기에 참여해 달라 강력하게 요청”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원들이 1월1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앞에서 국가보훈처가 최근 향군의 부채 규모를 지적하며 철저한 감독을 시사한 것과 관련해 보훈처를 규탄하며 향군의 국방부 이관을 요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원들이 1월1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앞에서 국가보훈처가 최근 향군의 부채 규모를 지적하며 철저한 감독을 시사한 것과 관련해 보훈처를 규탄하며 향군의 국방부 이관을 요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문재인 정부가 관변단체를 압박해 대북정책 분야에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등을 대거 동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는 향군을 비롯한 각 기관에 ‘호소문’을 보내 남북 정상회담 지지 성명을 이끌어냈다. 향군은 4·27 남북 정상회담 당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대대적인 환송 행사를 열었는데, 이 역시 청와대와의 사전조율에 의한 ‘관제 행사’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1월3일자 “[단독] 靑 백원우, ‘비리 수사’ 향군 회장 왜 만났나” 기사 참조). 심지어 향군을 관리·감독하는 국가보훈처(보훈처)는 정치적 중립 의무와 예산 남용을 이유로 향군의 대북정책 지지 활동을 반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향군, 10개 언론에 5000만원 들여 광고

문재인 정부의 관변단체 활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4·27 남북 정상회담 후 경제협력의 첫 단추로 추진되고 있는 ‘북한 나무심기’ 사업에 관변단체를 또다시 동원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나무심기 사업은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서 진행된다”고 강조해 왔지만, 향군을 비롯한 한국자유총연맹(자총), 새마을운동중앙회(새마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등의 단체가 참여하는 것으로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심지어 향군은 예산 문제 등으로 산림청에 참여 거부의 뜻을 밝혔지만, 국무총리실을 통해 또다시 참여 압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향군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관변단체를 대거 동원했다.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관변단체 동원은 7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일’이라고 비난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들을 정권의 ‘나팔수’로 여기는 것은 문재인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설립 목적에 맞는 활동을 펼 수 있도록 관변단체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군은 지난 1월14일 오후 1시30분 향군회관에서 2019년도 1차 이사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김진호 향군 회장을 비롯해 재적 이사 43명 중 25명이 참석했다. 시사저널은 이사회 녹음파일을 단독 입수했다. 다음은 김 회장의 발언 내용이다.

“작년에 3월15일날, 우리가 10개 신문에다가 남북 정상회담 지지하는 성명을, 광고를 냈습니다. 5000만원이에요. 여기 출입하는 과장(보훈처 제대군인과장)이라는 녀석이 와서 하는 소리가 ‘왜 향군이 빚이 많은데 이런 데에 남의 돈, 예산을 남용합니까?’라고 하는 거예요.”

향군은 지난해 3월15일 전국 10개 일간지에 ‘1천만 향군은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지지한다’는 제목의 성명서 광고를 냈다. 성명서에는 △비핵화는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기본 목표 △북한의 진정성 기대 △한·미 동맹 공고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보훈처는 무분별한 투자에 따른 부채로 향군의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보훈처는 향군의 2017년 부채를 6500억원 수준으로 파악했다. 이에 따라 보훈처는 향군의 부실자산 7곳을 정리하는 등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보훈처로서는 향군이 정상회담 지지 광고에 5000만원을 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관리·감독 기관인 보훈처의 반대에도 성명서 광고를 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호소문’ 때문이었다. 김 회장의 발언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때 그 당시에 3월12일날, 대통령께서 수석회의를 통해서 ‘그야말로 남북 정상회담은 국민들의 전체적인 합심에 의해서 지지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라고 완곡하게 호소하는 그런 호소문이 전부 우리를 포함해서 각 기관으로 내려갔어요. 그래서 아, 이거 정말 우리가 정부 정책을 지지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향군 관계자는 “보훈처가 향군을 관리·감독한다고 해 봐야 어차피 보훈처 위에 청와대가 있는 것 아니냐”면서 “호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지시를 내린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지지 호소문, 각 기관으로 내려가”

김 회장은 보훈처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안보단체인 향군이 지지하는 것을 10개 신문에 내면 ‘20개 신문에 내세요, 내십시오’ 해야 되는 보훈처가 ‘이거 왜 내냐’는 거예요. 4월27일날 판문점 행사를 우리가 가서 내가 (피우진) 보훈처장한테 서울 사무소에서 보고를 하니까 ‘아, 이거 꼭 해야 됩니까? 향군이 왜 이거 합니까?’라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정무직에 있는 사람이 국가,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것을 ‘꼭 해야 되겠냐’라는 이러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현직 보훈처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보훈처는 “현 정부의 대북 비핵화 정책에 반대되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향군법 3조에 따른 정치활동의 금지 의무를 향군에 안내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향군은 지난해 4·27 정상회담 당시 6000여 명의 회원을 동원해 문 대통령에 대한 대대적인 환송 행사를 열었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으로 가는 도중 차를 멈춰 세우고 향군 회원들과 직접 악수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와 향군이 사전조율을 통해 사실상의 ‘관제 행사’를 벌인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향군은 회담 직전인 지난해 4월25일 환송 행렬 배치도를 작성했는데, 이것이 극비사항인 문 대통령의 이동경로와 일치했다. 청와대와의 사전조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환송 행사가 있은 후 청와대가 향군을 ‘치하’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5월15일, 청와대 측과 향군 수뇌부는 경복궁역 인근 한정식집에서 만났다. 향군은 회장·부회장 등 임원 12명이 모두 나왔고, 청와대에서는 백원우 민정비서관·진성준 정무비서관·최종건 평화군비통제 비서관(직책은 당시 기준) 등 3명의 ‘실세’ 비서관을 비롯해 6명이 참석했다. 민정실에서는 백 비서관을 비롯해 3명이 참석했는데, 김 회장은 당시 업무방해와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사정(司正)을 담당하는 민정비서관이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향군 수뇌부와 회동을 가진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회동에서 향군의 민원이 담긴 서류가 전달됐고, 회동 이후 김 회장 사건이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되면서 청와대가 향군의 지지를 약속받는 대신 김 회장의 비리를 무마해 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었다.

김 회장은 북한 나무심기 사업에 향군이 동원된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2018년 4월27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 별관 앞에서 남북 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향군 회원과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하고 있다. ⓒ 뉴시스
2018년 4월27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 별관 앞에서 남북 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향군 회원과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하고 있다. ⓒ 뉴시스


“정부, 향군·자총·새마을·평통 참여 결정” 

“1월16일날, 내일모레 총리 주관의 북한에 나무 심어주기 심포지엄을 합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이 북한에 나무 심어주기에 대한민국의 가장 큰 안보단체인 향군이 참여해 주기를 완곡하게 요청을 해서 재향군인회, 자유총연맹 그다음에 새마을중앙회 그다음에 평통 외 4개 기관이 참여하도록 결정을 했었어요.”

실제로 1월16일 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숲 속의 한반도 만들기’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산림청이 주관했으며, 이낙연 국무총리가 개회사를 맡았다. 김진호 회장, 박종환 자총 총재, 정성헌 새마을 회장, 김덕룡 평통 수석부의장 등 김 회장이 언급한 4개 단체의 수뇌부가 모두 참석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북한 나무심기 사업이 과거에 국가 주도로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민간이 주도하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면서 “심포지엄으로 북한 나무심기 사업에 첫발을 뗀 것이다. 아직 정식으로 산림청에 신청하거나 등록한 단체는 없다”고 밝혔다. 즉,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민간이 주도하는 사업 모델로 북한 나무심기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참여할 관변단체를 이미 낙점해 놓은 상태였다. 이와 관련한 김 회장의 발언이다.  

“그래서 저희 이 보도가 나온 다음에 산림청장한테 ‘우리 못 한다’ 그랬어요. 우리는 못 한다. 이렇게 비리, 빚에 쪼들리고, 비리에 있는 조직이 이런 데 참여하게 되면 니들 하는 사업 자체에도 투명성이 보장 안 되고, 또 나는 우리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원들에게 ‘빚 많은데 무슨 북한에 나무 심어주기입니까’라는 부정적인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번에 참여 못 한다’라고 했어요, 제가, 3일 전에.”

또 한 번 제동을 건 것은 보훈처였다. 보훈처는 1월8일, 향군의 각종 비리를 없애고 수천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줄이기 위한 권고안을 내놨다. 김 회장이 언급한 ‘보도’란 이를 말한다. 향군 관계자는 “북한 나무심기 사업은 민간 주도형이기 때문에 자체 예산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부채가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북한 나무심기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 재정상태가 더 나빠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는 지금 굉장히 이거 가지고 저희한테, 이거는 시민 사회단체나 이런 쪽에서 잘못 보도된 거기 때문에 이거와 관계없이 참여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을 하는데.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산림청장이 아마 총리께도 다 보고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총리실에서 완곡하게 ‘이거를 참여해 달라’는 그런 요청을 받았는데, 그런 거와 관계없이 앞으로 저희는 정부 정책이 옳으면 지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니다, 아니다,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이번에 판정을 해야 되겠다.”

이미 다른 관변단체들은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북한 나무심기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 대통령과 경희대 72학번 동기인 박종환 총재가 이끄는 자총은 1월10일 ‘한반도 숲가꾸기 중앙추진단’ 현판식을 가진 데 이어 1월23일 산림청과 ‘한반도 숲 가꾸기’ 국민캠페인 MOU를 체결했다. 새마을 역시 양묘장 건설 등 북한 나무심기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文정부, 아쉬울 때마다 찾는 것이 관변단체”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북정책 분야는 문재인 정부의 역점 사업이다.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거나 경제지표가 흔들리는 등 위기가 올 때마다 돌파구가 돼 준 것이 대북정책 분야였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대북 분야에서만큼은 반드시 성과를 내야 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는 여전히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공격하며 딴지를 걸어왔다. 이때 구원투수가 돼 준 것이 향군을 비롯한 관변단체다. 

향군은 회원 1000만 명의 국내 최대 안보단체로, 전 정권에서 보수진영을 대표했다. 자총이나 새마을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북정책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와 큰 차이점을 보였다. 한 예로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이 터지자, 향군은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정책과 달리 ‘전술핵 즉각 재배치’와 ‘자체적인 핵무장 공론화’를 주장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이들 단체의 지지를 얻는다면, 진보에 이어 보수라는 나머지 한쪽 날개까지 얻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들 단체는 관변단체다. 관변단체는 정부에 의해 지원·육성되는 단체로, 재정적·행정적으로 정부의 관리하에 있다. 칼자루를 쥔 것은 문재인 정부인 것이다. 결국 향군을 비롯한 관변단체는 문재인 정부의 열성적인 지지자로 변신했다. 그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4·27 남북 정상회담 당시 향군·자총 등의 지지로, ‘보수단체도 환영하는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이상적인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여당인 민주당은 “향군도 찬성하는 남북 정상회담, 자유한국당만 반대”라며 야당을 공격할 수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관변단체 동원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당시 민주당은 “관변단체는 과거 독재정권에서 국민을 통제하고 계도하겠다는 발상으로 설립된 단체들”이라면서 “관변단체가 왜 존재해야 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국가재정으로 관변단체의 운영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향군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야당일 때는 관변단체를 없애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더니, 정권을 잡고 나서는 아쉬울 때마다 찾는 것이 관변단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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