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1심과 2심 재판부, '피해자' 어떻게 달리 봤나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2.02 13: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희정 1심 무죄에서 징역3년6개월로 뒤집은 핵심 근거
"피해자다움 없다"에서 "피해자도 그럴 수 있다"로

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2018년 8월14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약 6개월만인 2월1일 2심에서 징역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모두 무죄로 봤던 공소사실 10가지 중 9가지가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이처럼 1심과 2심의 재판 결과를 완전히 가른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사실상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을 대하는 두 재판부의 전혀 상반된 시각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월1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수행비서 성폭행 등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법정구속 돼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2월1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수행비서 성폭행 등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법정구속 돼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피해자다움’이란 없다”

여성계와 시민단체는 1심 무죄 선고가 난 후 재판부에 사실상 피고인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재판”이었다며 강하게 비판해왔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 김지은씨가 피해를 당한 후 도저히 피해자라고 볼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안 전 지사 측의 주장을 적극 받아들였다. 김씨에게서 ‘피해자다움’이 보이지 않으며 따라서 그의 진술을 있는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위력을 인정하면서도, 안 전 지사가 그것을 김씨에게 행사해 자유의사를 제압했다고 볼 순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김지은씨 진술의 일관성과 그의 감정 등을 좀 더 면밀히 살폈다. 그리고 안 전 지사 측의 주장에 오히려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하기 어려운 내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으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김씨가 곧장 피해 사실을 폭로하지 않고 안 전 지사의 수행에 최선을 다했던 것 역시, 피해자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1심에서 정의 내린 ‘피해자다움’은 “피고인 측의 주장대로 피해자를 정형화한 편협한 관점”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의 특성을 인정하고 김씨의 진술을 해석함에 따라, 이전의 재판 과정에서 인정된 안 전 지사 측의 주장이 되레 신빙성 없는 것으로 하나하나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특히 1심과 달리 2심에선 피고인 안 전 지사에 대한 신문도 이뤄졌다. 1심에선 안 전 지사에 대한 검찰 조사가 충분했다며 그에게 어떠한 질문도 직접 하지 않았다. 피해자 김씨는 1, 2심에서 모두 법정에 나와 수 시간에 걸쳐 직접 증언했다. 반면 이번 2심 재판부는 직접 안 전 지사를 불러 신문했다. 일례로 김지은씨의 첫 폭로 직후 안 전 지사가 자신의 SNS에 올린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 모두 다 제 잘못”이라는 내용의 페이스북 글을 지적하며 그의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다시 따지기도 했다. 이러한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여성계는 비로소 ‘피해자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 ‘피고인에 대한 재판’으로 재판이 정상화됐다고 평가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비서 성폭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항소심 법원 판결이 나오자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참가자가 '축 유죄'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비서 성폭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항소심 법원 판결이 나오자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참가자가 '축 유죄'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조된 ‘성인지감수성’, 대법원에선?

이번 판결에 있어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한마디로는 ‘성인지 감수성’이 꼽힌다. 이는 일상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능력을 뜻한다. 재판에선 ‘성폭력 사건 심리 때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2심 재판부는 직접 성인지감수성 판례를 언급하며 재판을 시작하기도 하는 등 이 부분에 신경을 쓰고 판결을 내렸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2018년 4월 대법원은 제자를 성희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대학교수에 대한 판결에서 징계 처분이 정당하다며 '성인지 감수성'을 그 기준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 후 법원에선 유사한 사건을 다룰 때 이 성인지 감수성이 비교적 적극 반영되는 분위기였다.

이번 재판으로 도덕성 타격은 물론, 정치 생명도 완전히 끊겼다고 평가받는 안 전 지사는 즉각 대법원에 상고하며 또 한번의 반전을 노리고 있다. 특별한 추가 증거 없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로 판결이 바뀐 만큼, 대법원에서 법리논쟁이 매우 치열할 것이란 법조계의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중요성이 법원에서 강조되고 있으며,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논의되고 있는 분위기상, 대법원 판결이 안 전 지사 측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란 어려울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