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 불고 있는 ‘孫바람’…출마할까, 후배 밀까
  • 전남 목포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2.0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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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9단’ 4선의 박지원 vs ‘초선’ 손혜원, 거친 설전
손혜원이 염두에 두고 있는 후배 정치인은 누구?
DJ 3남 김홍걸 출마 최대 관심…孫의 품에 안길까

‘호남정치 1번지’ 전남 목포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고향이자 권노갑(13·14대)·김홍일(15·16대)·박지원(18·19·20대) 등 DJ의 아들 및 가신들이 줄줄이 국회의원을 지낸 동교동계의 대표적인 텃밭이다. 그러나 내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목포가 전쟁의 터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지금 목포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과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파상적으로 거친 설전을 주고받으면서 정치적 상징성이 커진 상태다. 손 의원의 파괴력 넘치는 반격으로 5선을 노리는 ‘호남 맹주’ 박 의원의 정치적 이미지가 훼손되고, 손 의원의 행보는 내년 4월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손 의원이 직접 출마해 목포에서 내리 3선을 한 박 의원과 대결을 펼칠지, 불출마한다면 누가 손 의원의 후광을 입을지 등 벌써부터 지역 정치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孫의 목포 문화거리 부동산 투기 의혹’ 총선으로 확전 

설 연휴 기간 서로 기싸움을 벌인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왼쪽)과 무소속 손혜원 의원 ⓒ 시사저널·미디어포유 김용은
설 연휴 기간 서로 기싸움을 벌인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왼쪽)과 무소속 손혜원 의원 ⓒ 시사저널·미디어포유 김용은

두 의원의 악연은 손 의원의 ‘목포 근대역사문화거리 투기 의혹’에서 비롯됐다. 박 의원은 투기의혹이 불거진 초기에는 “투기가 아니라 목포를 살리기 위한 선의로 보인다”며 손 의원을 옹호했다. 그런데 보유 부동산이 20여 채가 넘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박 의원은 손 의원에게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이에 손 의원이 박 의원을 향해 ‘배신의 아이콘’으로 직격탄을 날리자, 박 의원은 손 의원을 ‘투기의 아이콘’이라고 맞불을 놨다. 

‘정치 9단’을 자부하는 박 의원은 초선인 손 의원과 본의 아니게 얽히면서 곤혹스런 상황에 맞닥뜨렸다. 정치공학적 이합집산 셈법을 염두(?)에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박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부동산 투기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엉뚱하게 유탄을 맞은 격이다. 

손 의원은 박 의원에 대한 공세를 설 연휴에도 이어갔다. 공세의 초점도 배신자론에서 정계 은퇴론으로 옮겨가면서 애초 문화재거리에서 점화된 불이 총선으로 옮겨 붙는 모양새다. 손 의원은 설날인 지난 5일 박 의원을 향해 “정치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계신 분”이라며 “이제 그만하셔야죠”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그러면서 “이제 목포를 제대로 발전시킬 좋은 후배 정치인을 잘 찾아보자”고도 했다. 

박 의원은 비록 손 의원의 공세로 수세에 몰리는 양상을 보이긴 하나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지역 맹주다. 그는 비례대표를 포함해서 4선 국회의원이다. 지난 3번의 목포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승했다. 지역구 첫 출마인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DJ의 적자임을 자처하며 민주당 텃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53.58%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후 2012년 19대 총선은 민주통합당으로 옮겨 71.17%를 득표하며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당시 안철수 신당인 국민의당으로 출마해 8명의 후보가 경합한 백가쟁명의 상황에서도 56.38%를 얻으며 목포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현재 몸담고 있는 민주평화당의 저조한 지지율과 고령임을 고려, 새 인물을 원하는 지역여론이 어느 때보다 높다. 박 의원의 나이는 올해로 78세(1942년생)다. 내년 총선에서 당선되면 83세까지 국회의원을 해야한다. 앞선 두 번의 목포시장 선거에서 자신이 민 후보가 낙마를 함에 따라 과거 상왕노릇을 했던 예전의 박지원이 아니다는 말도 들린다. 여기에 ‘손혜원 리스크’까지 보태졌다.

 

초선인 손 의원으로선 손해볼 게 없는 싸움

지역 정치권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정치 대선배인 박 의원에 대한 손 의원의 거친 공세를 바라보는 해석은 다양하다. 우선 정치적 몸집불리기 내지는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잃을 게 없는 초선 의원의 5선을 바라보는 ‘정치 9단’에 대한 비난전은 정치권에서 많이 목도해 온 체급 올리기 차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 의원은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밝혀 박 의원과 ‘비난전’을 이어가도 손해 볼게 없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또 투기여부와 이해충돌을 둘러싼 향후 법적 공방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박 의원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모두 불출마를 전제로 한 것이다. 평소 자신이 뱉은 말은 책임지는 손 의원 성격 탓에 불출마할 것이라는 다소 결이 다른 해석도 나온다. 

반면에 손 의원의 ‘목포 출마’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견해도 비등하다. 준거점은 ‘정치는 생물이다’는 상황론이다. 손 의원이 비록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혔지만 “상황에 따라 급변할 수 있는 것이 정치인만큼 내년 일은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도 “손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밝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항마’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 것”이라면서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내일도 모르는데 1년 후의 상황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며 손 의원의 등판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는 않았다. ‘권력의 맛’론(論)도 대두된다. 손 의원이 4년간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맛본 권력의 유혹을 쉽게 떨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 출마설이 나온다. 정치인이 타의에 의해 물러난 경우는 많지만 자의로 정계를 떠난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그의 직접 출마설은 목포 구도심 주민을 중심으로 한 우호적인 여론도 한몫하고 있다. 가뜩이나 평화당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결집하고 주민들 또한 손 의원을 옹호하고 있는 게 현지 분위기다. 목포 구도심 곳곳에 손 의원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손 의원이 출마하면 찍겠다’는 주민들도 부쩍 늘어난 모양새다. 지역 정가의 한 인사는 “밑바닥에서부터 손(孫)바람이 불고 있는 건 맞다”며 “이 기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지원 vs 손혜원 대결구도, 53년 만에 ‘목포의 전쟁’ 재연되나

설날인 5일 목포시 만호동 한 빈 상가에 손혜원 의원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기자
설날인 2월 5일 목포시 만호동 한 빈 상가에 손혜원 의원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기자

손 의원의 직접 출마설이 제기되면서 벌써부터 1960년대 ‘김병삼 대 김대중 선거판’이 회자되고 있다. 이는 1967년 6월, 7대 국회의원 선거 때를 가리킨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눈에 가시 같았던 야당 대변인 김대중을 꺾기 위해 육군 소장과 장관을 지낸 김병삼을 목포에 전략 공천했다. 목포 선거구가 김대중과 박정희의 대결장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정가에서는 당시 선거판을 ‘목포의 전쟁’이라고도 불렀다. 내년 총선이 곡절을 거친 끝에 박지원과 손혜원 대결구도로 짜여 질 경우, 53년 만에 ‘목포 발전’을 둘러싼 프레임 전쟁이 재연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아직은 손 의원의 ‘후견인 역할’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양상이다. 손 의원은 수차례 ‘박 의원 낙선을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면 손 의원이 내년 목포 총선에서 박지원 의원을 저격하기 위해 염두에 둘만한 후배 정치인은 누구일까. 현재까지 자천타천으로 내년 4월 총선 출마가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5~6명이다. 박 의원을 비롯해 우기종 민주당 지역위원장, 윤소하 정의당 의원(비례대표), 이윤석 전 의원, 배용태 전 전남도 부지사, 서기호 전 의원, 배종호 전 KBS뉴욕특파원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손 의원 지목하는 후배 정치인 두고 '김홍걸설' 무성

특히 내년 목포 총선에서 주목을 끄는 인물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이다. 김 전 대통령의 아들 3형제 중 유일하게 ‘금배지’를 달지 못한 김 의장은 그간 원내 진출의지는 확고하면서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출마를 미뤄왔다. 최근 들어 손 의원이 지목하는 후배정치인이 ‘김홍걸 의장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만약 김 의장이 목포에서 출마할 경우 ‘김대중 아들 대 김대중 비서실장’이라는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호남 세력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김홍걸 카드의 효과는 어떨까.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DJ가 호남의 맹주였던 만큼, 괜찮은 카드가 될 수 있다”며 “현재 민주당이 호남에서 강한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손 의원이 밀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다른 지역 정치권 인사는 “전직 대통령 아들 카드가 파괴력이 클 수도 있지만 2세 정치에 대한 역풍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금수저 논란과 ‘박근혜 트라우마’로 인해 거부감이 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손혜원 의원과 박지원 의원 간 설전으로 총선 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비난전의 최종 승자는 내년 총선 때 지역민들의 표심의 향배에 의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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