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 뒤 스웨덴 역할 있었다
  •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08 08:22
  • 호수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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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간 대화 중재 역할 원하는 ‘스웨덴 프로세스’
北최선희-美비건, 나흘간 스웨덴 테이블 마주앉아…南이도훈도 가세

1월18일부터 22일까지 스웨덴 스톡홀름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논의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활발하게 오가는 가운데, 북한 외무성의 핵심 실무자인 최선희 부상(차관)이 스톡홀름에 온 것이다.

‘최선희가 왜 갑자기?’하고 있는데 19일에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까지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워싱턴DC에 온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난 후 곧바로 스톡홀름으로 왔다. 

최선희와 비건은 스톡홀름 외곽의 휴양지 하크홀름순드(Hackholmsund)에 있는 컨퍼런스 하우스로 모였다. 이곳은 멜라렌 호수에 떠 있는, 단 하나의 길로 육지와 연결된 섬의 구조를 하고 있다. 숙박이 가능한 컨퍼런스는 멜라렌 호수의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면서도, 외부와 단절되기 쉬운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 북·미 간에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혔다. 최선희와 비건에 이어, 한국에서 급하게 날아온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까지 이내 합류해 남북한과 미국의 실무자들이 스웨덴이 마련한 테이블에 나흘간 마주 앉았다.

1월18일은 스웨덴 시민들의 눈이 온통 스톡홀름의 의회의사당에 쏠려 있을 때다. 2018년 9월9일 총선 이후 132일째 새 총리 인준에 실패해 정부도 구성하지 못해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다가 이날 마침내 정부 구성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스테판 뢰벤이 천신만고 끝에 총리 연임에 성공, 사민당 정부가 다시 4년의 집권에 성공한 날이었다.

1월18일부터 22일까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에 참석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왼쪽 사진)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 연합뉴스
1월18일부터 22일까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에 참석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왼쪽 사진)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 연합뉴스

“국제무대서 공동선 추구하는 스웨덴”

그러던 중 외교가는 물론 스웨덴 정가 사람들은 뜻밖의 손님들 때문에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들의 만남이 하필이면 스톡홀름에서 이뤄진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의아해했다. 그것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월말 열릴 것이라는 워싱턴발(發) 소식이 전해진 직후 양국의 실무 담당자 간 만남이라 더욱 그랬다. 그리고 물음표는 또 하나 있었다. 왜 스톡홀름이지? 이에 대해 스웨덴 내부에서는 남·북·미 간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스웨덴 프로세스’가 가동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스웨덴 내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스웨덴 안보정책개발연구소(ISDP) 상임 연구원이면서 코리아센터 센터장인 이상수 박사는 “이미 2017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스웨덴 프로세스가 2018년 6월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스웨덴 프로세스’는, 스웨덴 정부가 이번 회담을 주최한 스웨덴 국제평화연구소(SIPRI)와 함께 나서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미 간, 특히 북한과 미국의 대화 테이블을 만드는 중재 역할을 의미한다. 

이 박사는 “2017년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감이 높을 때 스웨덴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재 역할을 하고 싶어 했다”며 “특히 전쟁을 불사할 것처럼 날 선 비난을 주고받던 북한과 미국 간의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양국을 대화 테이블에 앉게 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실제 스웨덴은 2018년 1월 한성렬 당시 외무성 부상을 스톡홀름으로 불렀고, 3월에는 리용호 외무상을 초청했다. 그 직후 북한에 억류됐던 3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풀려났다. 전년에 웜비어의 석방까지 포함해 스웨덴의 역할이 지배적이었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박사에 따르면, 한국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으로 5월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갑작스러운 판문점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당시로서는 굳이 스웨덴이 나서야 할 필요성이 없어졌다. 그렇게 당시만 해도 중단된 듯했던 ‘스웨덴 프로세스’가 이번에 다시 가동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재가동된 ‘스웨덴 프로세스’ 

여기에서 ‘스웨덴 프로세스’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스웨덴 사민당 소속 켄트 해슈테트 의원이다. 그는 스웨덴 외무성의 한반도 특임대사를 맡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켄트 의원은 평양과 워싱턴 그리고 서울을 잇달아 방문한다. 북·미 대화에 대한 한국의 역할이 약화됐다고 판단될 때 스웨덴이 다시 발 빠르게 나선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이 왜 이런 수고를 감수할까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그러나 대체로 스웨덴 내부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국제무대에서 스웨덴이 추구하는 공동선에 대한 의지’라는 얘기가 많다.

당사국도 아니고 지역 이익이 동반되는 일도 아니지만, 스웨덴은 기존 6자회담의 틀 속에서도 자국 이익 우선의 외교 논리가 지배해서는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200년간 전쟁을 겪지 않은 거의 유일한 주요국인 스웨덴이 객관성을 가지고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테이블의 호스트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핵심 외교관들이 스톡홀름에서 만난 것을 놓고 스웨덴에서는 ‘이상하지만 좋은 만남’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이미 결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넘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향후 일정들에 있어서도 스웨덴이 어떤 역할을 했다는 의미에서 환영하는 목소리가 크다.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으로 근무했던 스웨덴 국방성의 미카엘 욘손 대령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며 “스웨덴은 양국이 수용할 수 있는 협력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에 있어 스웨덴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욘손 대령은 “김정은이 어떻게 미국을 믿을 수 있겠느냐”면서 “트럼프는 무역·환경·무기 등에 관해서도 이미 국가 간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을 보여줬는데, 김정은인들 그걸 모를 리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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