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벤션효과’ 꺼지고 ‘보수통합’도 걷어찬 한국당 전대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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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 정치력 실종에 일정·극우 논란 모두 ‘부메랑’
오세훈 전 시장 출마로 그나마 최악은 면해…오 “당 비상식적” 불만 여전

'정치 실종'이 문제였다. 자유한국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일정 조정 문제와, 이로 인한 당권주자 줄사퇴에 직면하며 주저앉았다. 전대 컨벤션효과와 보수통합 동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현 정부를 향한 불만과 보수정당의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 속 모처럼 찾아온 기회가 날아간 것이다.

자유한국당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2·27 전당대회 보이콧을 선언했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월12일 국회에서 입장을 돌이켜 출마를 선언하는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자유한국당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2·27 전당대회 보이콧을 선언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월12일 국회에서 입장을 번복하며 출마를 선언하는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오세훈 출마로 '반쪽 전대'는 면했지만…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의 당권주자로 거론된 심재철·정우택·주호영·안상수 의원은 후보 등록 마지막 날인 2월12일 전대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앞서 이들과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은 2차 북·미 정상회담(2월 27~28일)과 전당대회 일정이 겹친 것을 들어 전대 연기를 주장했다. 이에 아랑곳없이 당 지도부가 '2월27일 전대 개최 강행'을 결정하자 심·정·주·안 의원은 전대 보이콧을 선언했다. 홍 전 대표는 이미 전날 불출마하겠다고 발표했다. 
  
오 전 시장마저 출마 의사를 접는다면, 한국당 전대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김진태 의원의 2파전으로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백척간두에 선 보수 정당의 미래가 '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외면하지 않았느냐'는 극우적 논의로 초장부터 발목 잡힐 가능성이 다분했다.

한국당 입장에선 다행스럽게도 오 전 시장이 이날 보이콧을 접고 당 대표 후보로 등록했다. 오 전 시장은 "정말 고뇌하고 고민하다 이 자리에 다시 섰지만, 당의 비상식적인 결정들에는 아직도 동의하기 어렵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오 전 시장 지적처럼 한국당은 최근 지도부의 정치력이 실종된 가운데 전대 일정과 관련한 갈등, 때아닌 국민적 공분의 야기 등으로 악재에 빠졌다. 불과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한국당 전대에 쏠리는 관심은 컸다. 황 전 총리, 오 전 시장, 홍 전 대표 등 당내 차기 대권주자들이 전대 출마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전대 컨벤션효과와 더불어 정부·여당의 지지율 약세가 지속된 데 따른 반사이익까지 얻었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2월7일 전국 유권자 1006명에게 설문조사(2월8일 발표,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한 결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0.4%포인트 내린 37.8%, 한국당 지지율은 2.3%포인트 오른 29.7%로 각각 집계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40%포인트대에 달했던 양당 지지율 격차는 지난해 11월부터 10%포인트대로 축소됐고, 2주 전부터 10%포인트 아래로 떨어졌다.

 

"보수 미래는커녕 일정 문제 하나 풀지 못한 지도부" 

현재 한국당 분위기만 보면 향후 지지율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전대 날짜·경선 룰 관련 진통과 함께 당내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 박근혜 전 대통령 옥중메시지로 촉발된 배박(背朴·박근혜 배신) 논란 등이 호재를 뒤덮었다. 이런 한국당 파열음의 가장 큰 책임은 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있다고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지적했다. 김 교수는 "당초 한국당 지도부가 누구나 2월에 열릴 거로 예상했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전대 날짜를 2월27일로 정했다는 것 자체가 패착이었다"며 "이후 당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연기가 어렵다고 했더라도, 각 후보의 의견을 나름대로 취합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바로 (강행) 결정을 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대는 단순히 한국당 대표를 선출하는 게 아니라 향후 보수의 미래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이냐를 결정할 아주 중요한 계기다. (단순한) 일정 문제로 잡음을 낸다는 자체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5·18 망언과 배박 논란 등 시대착오적 갈등을 놓고도 한국당 지도부는 속수무책이다.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은 2월11일 비대위 회의에서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5·18 폄하 발언에 관해 "국민 정서에 반하는 언행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해놓고 회의 후 취재진과 만나서는 "견해차가 있을 수가 있고 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보수 정당의 생명력"이라며 이틀 전 논란을 일으킨 나경원 원내대표 발언을 답습했다. 

한편, 한국당 전대는 일반 시민 대상 여론조사(30%)와 책임당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투표(70%)로 이뤄진다. 책임당원 34만여 명 중 절반이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남권 거주민이다.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호의적인 이들의 표심은 당 대표가 되기 위한 주요 변수다. 황교안 전 총리가 대세로 부상했고, 배박 논란(박 전 대통령이 황 전 총리에게 서운함을 표출한 것)으로 촉각을 곤두세우는 지점도 바로 영남 책임당원 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고도 여전히 '박심(朴心)'이 전대 변수로 회자되는 상황은 일반 국민 정서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다. 홍준표 전 대표는 2월11일 SNS를 통해 "탄핵의 정당성 여부를 역사에 맡기고 새롭게 시작하지 않은 채 탄핵 뒤치다꺼리 정당으로 계속 머문다면 이 당의 미래는 없다"면서 "그래서 나는 당 대표 시절 박 전 대통령을 넘어서는 신(新)보수주의 정당을 주창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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