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전대①] 짙게 드리워진 ‘박근혜 그림자’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5 11:00
  • 호수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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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전대’ 피했지만 후폭풍 여전
우경화 현상에 당내 우려도

컨벤션 효과(Convention Effect).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지지율이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한국 정치에서도 통용된다. 당내 경선을 통해 시민들의 관심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지지율이 상승하는 사례가 많았다. 최근 당 지지율 상승세가 이어졌던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였다. 2·27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여당과 대등한 지지율을 확보하려 했다. 정당 지지율 4%까지 주저앉았던 보수정당의 화려한 부활을 꿈꿨다.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됐다. 지구 반대편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날갯짓은 정치권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2차 북·미 정상회담(2월27~28일)과 전대 일정이 겹치게 된 것이다.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힌 후보들이 전대 연기를 놓고 둘로 나뉘었다. 당 지도부가 전대를 예정대로 치르겠다고 결정하자 5명의 후보들이 전대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끝내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진태 의원이 당 대표 후보로 등록했다. 오 전 시장까지 출마를 포기했다면, 한국당 전대는 황 전 총리와 김 의원의 2파전으로 치를 수밖에 없었다. 백척간두에 선 보수정당의 미래가 ‘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외면하지 않았느냐’는 극우적 논의로 초장부터 발목 잡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한국당의 분위기는 녹록지 않다. 어디까지나 ‘반쪽 전대’를 면했을 뿐이다. 여전히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 ‘박근혜 전대’라는 얘기가 들릴 만큼 박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로 촉발된 배박(背朴·배신한 친박) 논란 등이 각종 호재를 뒤덮었다. 당내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 등으로 불필요한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한국당은 과연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을까.

ⓒ 일러스트 신춘성
ⓒ 일러스트 신춘성

한국당 전대 최대 화두 ‘박근혜’

하나의 유령이 한국당을 떠돌고 있다. 옥중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얘기다. 이번 전대의 최대 화두는 ‘박근혜’인 셈이다. 한국당의 미래를 짊어질 당권 주자들이 난데없는 ‘진박(眞朴·진짜 친박)’ ‘배박(背朴)’ 논란을 벌였다. 유영하 변호사가 전한 박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가 화근이었다. 주요 당권 주자인 황 전 총리를 두고 “그 사람은 아니다”란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에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황 전 총리를 ‘배박’이라고 비판하며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유 변호사의 전언이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당권 주자들은 때아닌 친박 구애 작전을 펼쳤다.

실체도 불분명한 박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전대 판이 뒤흔들렸다. 배박 논란의 중심에 섰던 황 전 총리는 2월9일 경북 구미에 위치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았다. 황 전 총리는 그동안 다른 주자들에 비해 느긋했다. 친박 표심이 황 전 총리로 기울어 있는 만큼 ‘집토끼’보다 ‘산토끼’ 공략에 집중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로 친박 표심이 흔들리자 내부 단속에 나선 것이다.

“(박 전) 대통령께서 어려움을 당하신 것을 보고 ‘최대한 잘 도와드리자’ 했습니다. 그때 ‘제가 볼 때는 수사가 다 끝났다. 그러니까 이 정도에서 끝내자’ 해서 수사 기한 연장을 불허했습니다. 그것도 했는데 지금 얘기하는 그런 문제(박 전 대통령의 구치소 의자 반입 요청 거부 등)하고는 훨씬 큰일들을 한 거 아닙니까.”

황 전 총리의 발언은 박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 특검 수사 연장을 불허했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이에 다른 당에서 “국정농단의 공범임을 자백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충분히 수사가 돼서 연장을 불허했다고 해명했다. 박근혜 지지자들 표를 얻으려고 했던 해명을 다시 수정하는 등 갈수록 수렁에 빠지는 양상이다.

오 전 시장도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오 전 시장은 2월7일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국민적 심판이었던 탄핵을 더 이상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불행히도 박 전 대통령이 국민들의 바람에 큰 실망을 안겨드린 게 사실”이라며 “우리 당에 덧씌워진 ‘친박(친박근혜) 정당’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솔직히 애증이 있다. 정말 고마운 부분도 있고 섭섭한 부분도 있다”며 인연을 강조했었다.

급기야 한국당 내에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주장까지 제기됐다. 황 전 총리는 “국민이 통합하고 화합하고 하나 되는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사면에 대한 우회적인 찬성 입장을 밝혔다. 당 대표 후보등록 직전 출마 의사를 접은 홍준표 전 대표는 노골적으로 사면 문제를 쟁점화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석방과 사면 등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 저항 운동’을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들이 우경화를 택한 까닭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한국당 전대는) 대한민국 제1야당이 수구·냉전적 지역주의 정당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행사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한국당 전대가 결국 ‘도로 박근혜당’ 정립 대회로 귀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제1야당의 전대가 박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휘청거리는 모습”이라며 “한국당이 현재 얼마나 허약한 상태인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논객인 정두언 전 한나라당 의원은 시사저널TV 《정두언의 시사끝짱》을 통해 “박근혜 이슈가 한국당 전대를 앞두고 부각되는 사실 자체가 새롭게 변화하지 못했다는 단면을 보여준다”며 “다음 대선까지도 기력을 회복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에선 한국당 전대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이 재등장한 것을 놓고 한국당이 ‘국정농단 세력’ 굴레에서 벗어나 민심을 되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뜻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한국당은 철저히 로키(Low-key) 전략을 택했다. 몸을 낮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렸다. 하지만 최근 지지율이 상승하자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었다. 

또 다른 분석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전대 주요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은 대구·경북(TK) 등 전통적인 보수층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직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지역 특성을 감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권 주자들은 박 전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는 당내 세력을 무시할 수 없다. 한국당 책임당원 구조를 보면, 2017년 7·3 전대 당시 16만여 명에서 현재 34만여 명으로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다. 당에 충성도가 높은 책임당원들 사이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높기 때문에 이들 ‘콘크리트 지지층’을 잡지 않고선 당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한국당 전대는 일반 시민 대상 여론조사(30%)와 책임당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투표(70%)로 이뤄진다. 책임당원 34만여 명 중 절반이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남권 거주민이다.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호의적인 이들의 표심은 당 대표가 되기 위한 주요 변수다. 황교안 전 총리가 대세로 부상했고, 배박 논란으로 촉각을 곤두세우는 지점도 바로 영남 책임당원 표다.

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외면하고 박 전 대통령만 부각되는 것일까. 한 대구·경북 지역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도 TK 출신이긴 하지만 지역 여론은 그다지 좋지 않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안타까워하는 동정 여론이 크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년 고난의 시절을 보내면서 한국당의 당원 성향이 더욱 보수화됐다. 2018년 가을부터 이른바 ‘태극기 부대’를 중심으로 한국당 책임당원 가입 운동이 빠르게 확산했다. 합리적 보수 노선으로 당을 재정비하려던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의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당시 한국당 내에선 “어차피 태극기 부대의 입당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 일단 흡수해서 세력을 키우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왔다.

당원의 변화는 자연스레 한국당 인사들의 우경화로 이어졌다. 때아닌 5·18 발언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은 2월8일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발언을 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 나경원 원내대표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있을 수 있다”고 밝혀 불씨를 키웠다. 논란이 커지자 당사자들이 사과하고 지도부 차원에서 진화에 나섰지만, 5·18 관련 단체들의 상경 투쟁이 이어지는 등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전대 이슈를 스스로 다른 이슈로 가려버린 셈이다.

이 같은 흐름에 오 전 시장은 “한국당은 스펙트럼에서 좀 더 가운데 쪽 개혁보수 입장을 보강해도 중도층의 마음을 얻어오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점차 우경화하면서 국민 마음과 괴리되는 일은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끊임없는 보수혁신과 개혁을 통해 외연을 확대해도 모자랄 판에 역사 퇴행적인 급진 우경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월9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월9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전대 앞두고 나오는 ‘보수 빅뱅’ 시나리오

한국당 분위기가 민심과 동떨어진 형태로 흐르면서 ‘보수 빅뱅’ 시나리오까지 나돌고 있다. 친박계의 후원을 등에 업은 황 전 총리가 당 대표에 선출될 경우, 차기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부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럴 경우 바른정당 복당파를 비롯한 비박계 의원들이 가장 먼저 동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당 외곽으로 떨어져 나온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는 “올해 보수진영이 크게 세 차례 요동칠 텐데 그 첫 시점이 한국당 전대가 끝나는 3월”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비극을 외면한 당권 주자가 친박인 척하고 당권을 거머쥔다면 당의 분열은 불문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한국당 초선 의원은 “홍준표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무성 전 대표 등 비박계 대권주자들이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신임 대표가 될 경우 같은 배를 타기는 힘들 것”이라며 “전대가 원만하게 치러지지 못하면 부실한 신임 대표의 정통성을 공격하는 당내 분란 과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른정당 출신의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한국당 전대 이후의 보수 재편 가능성에 대해 “알 수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 의원은 “오 전 시장이 당선된다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상황이 있겠지만, 황 전 총리가 당 대표로 선출된다면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당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그때까지 바른미래당은 당내 노선 투쟁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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