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신화①] 스물일곱 손흥민이 쓰는 새로운 신화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5 17:01
  • 호수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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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1억 유로 눈앞, 아시아 최초 월드 베스트 노린다

축구선수의 전성기는 20대 후반에 열린다. 누적된 경험에서 나오는 축구 지능이 상승곡선을 그리며 여전히 폭발력을 낼 수 있는 육체적인 능력과 고점에서 만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불세출의 슈퍼스타들은 보통 만 26~27세에 커리어 최고의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1992년생인 손흥민도 이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다. 토트넘 홋스퍼에서 4년 차를 맞은 그는 지난 두 시즌 동안 세계 최고의 무대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력을 검증받았다. 2015년 여름 독일 분데스리가를 떠나 토트넘으로 이적한 그는 첫 시즌에는 새 팀과 리그에 대한 적응과 부상 문제로 잠시 부진했다(40경기 8골). 

하지만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신뢰 속에 지난 두 시즌 동안 100경기에서 39골을 터트리며 팀의 주전으로 우뚝 섰다. 2016~17 시즌에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시즌 20골의 벽도 넘었다. 함부르크, 레버쿠젠을 거쳐 토트넘까지 오며 프로 통산 100골 고지를 밟은 상태다.  

지난 시즌까지의 활약으로도 손흥민의 가치는 특별했다. 아시아 선수가 유럽에서 가장 살아남기 힘든 포지션이라는 공격수로서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주전 경쟁을 넘어 소속팀과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의 반열에 올랐다. 아시아 출신이라는 딱지를 떼고 월드 클래스로 확실히 인정받는 수준에 진입했다. 

ⓒ PA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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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넘어 월드 클래스로

2월14일 기준으로 손흥민은 시즌 32경기에서 16골 6도움을 기록 중이다. 경이로운 사실은 시즌 개막 후 3개월 가까이 1골도 넣지 못하는 심각한 부진을 극복한 결과라는 점이다. 손흥민의 시즌 첫 골은 10월31일 웨스트햄과의 리그컵에서 터졌다. 리그 첫 골은 그로부터 3주가 더 지나 11월24일 첼시와의 홈경기에서 나왔다. 

올 시즌 손흥민의 공격 포인트는 최근 3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쏟아지는 중이다. 첼시전을 기준으로 삼으면 18경기에서 14골 6도움이다. 경기당 공격 포인트가 1.11개다. 이 시기에 손흥민보다 페이스가 좋은 공격수는 유럽 전체에서도 세 손가락에 든다.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가 15골 6도움을 기록해 손흥민보다 1개 앞서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는 11골 4도움이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이자 메시·호날두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모하메드 살라(리버풀)는 12골 4도움이다. 손흥민의 최근 활약이 어떤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비교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활약이 손흥민과 함께 토트넘 공격의 삼각편대로 평가받는 해리 케인과 델레 알리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서도 나온다는 사실이다. 영국 현지에서는 3명의 공격수와 그를 뒷받침하는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이름 철자를 묶어 D.E.S.K 라인으로 부른다. 포체티노 감독이 추구하는 빠르고 변화무쌍한 공격의 핵심인데, 그중 두 선수가 부상으로 한 달 넘게 빠진 상태다. 

잉글랜드 국가대표에서도 주축인 케인과 알리의 부재는 곧 토트넘의 위기였다. 3위 경쟁도 버겁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지만, 두 선수 없이도 선두인 맨체스터 시티와 승점 5점 차인 3위를 유지 중이다. 그 상황을 구한 것이 손흥민이고, 더 주목받는 효과를 일으켰다. 토트넘의 에이스가 손흥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가 없는 상태다. 

득점 효과도 탁월하다. 손흥민이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15경기에서 토트넘은 14승을 거뒀다. 결승골만 9차례다.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이 골을 넣으면 그날 경기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며 그 가치를 인정했다. 

수준 높은 골은 보는 이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심어줬다. 대표적인 경우가 첼시전이다. 폭풍 같은 드리블로 50m를 내달려 조르지뉴, 다비드 루이스 등 세계적인 선수를 차례로 제친 뒤 골을 터트렸다. 에버턴과 뉴캐슬을 상대로는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골망을 흔들며 왼발, 오른발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공격 옵션을 지닌 선수임을 보여줬다.

큰 경기에서도 강하다. 가장 최근 열린 도르트문트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도 후반 2분 선제골을 터트렸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도르트문트는 손흥민의 골에 침몰하기 시작하며 토트넘에 0대3으로 패했다. 11경기에서 9골, 최근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할 정도로 유달리 도르트문트에 강한 손흥민의 양봉업자(도르트문트의 별명인 꿀벌에서 착안)라는 별명이 다시 주목받은 경기였다.

자연스럽게 이적료 가치도 폭등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가 2월5일 발표한 이적 시장 가치에서 손흥민의 예상 이적료는 9840만 유로(1255억원)로 평가됐다. 지난 1월보다 450만 유로(57억원) 증가했고, 1년 전보다는 약 23%, 2년 전보다는 무려 110% 상승했다. 유럽 5대 리그에서 뛰는 선수 중 33위다. 

2월2일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과 토트넘 경기 모습 ⓒ EPA 연합
2월2일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과 토트넘 경기 모습 ⓒ EPA 연합

월드 클래스 넘어 월드 베스트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 현지 언론의 평가도 한층 격이 올라갔다. 그동안 아시아 출신 스타들은 한계가 있었다. 특정 경기, 혹은 일정 시기의 활약으로는 임팩트를 줄 수 있지만,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에서 골을 담당하는 에이스 역할을 해 준 선수는 1980년대 분데스리가를 호령한 차범근이 유일했다.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시즌을 뛴 박지성은 손흥민 이전까지 21세기 최고의 아시아 선수였다. 아스널, 첼시, AC밀란 등을 상대로 터트린 골과 전술적 활약은 주목받았지만 시즌 내내 극찬이 이어진 적은 없었다. 언론의 주목과 팬의 사랑을 받기보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인정받는 언성히어로(숨은 영웅)였다. 

반면 손흥민에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이어진다. 골을 넣는 포지션의 선수라는 차이가 있지만, 그만큼 그가 받아야 하는 중압감도 크다. 만 18세에 1군 무대에 데뷔한 이래 손흥민은 9시즌째 그 부담감을 이겨냈고, 그 결과 가장 특별한 아시아 선수가 됐다. 

공영방송 BBC는 손흥민이 아시안컵 차출을 마치고 돌아온 뒤 매 경기 골을 넣으며 토트넘의 연승 행진을 이끌자 “페라리에 연료를 부은 것 같다”고 극찬했다. 도르트문트전에서 여지없이 골이 터지자 가디언, 인디펜던트 등 주요 언론도 “손흥민은 결정을 짓는 수준을 넘어 월드 클래스로 확실히 나아갔다” “월드 클래스를 넘어 월드 베스트로 향하고 있다”고 칭찬 릴레이에 가세했다.

게리 리네커, 앨런 시어러, 마틴 키언, 저메인 제나스 등 주류 언론에서 활동하는 특급 스타 출신 해설자들의 호평은 손흥민의 가치를 더 빛나게 한다. 세계적인 축구 프로그램인 ‘매치 오브 더 데이’의 패널인 그들의 발언은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특히 최고의 골잡이였던 시어러는 팬을 자처할 정도로 손흥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급기야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수상 가능성까지 언급됐다. 지난해 11월부터 본격화된 활약의 영향이다. 시어러는 “올 시즌의 손흥민이라면 최종 후보 6명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포체티노 감독도 “11월 이후라면 수상할 자격이 있다. A매치 휴식기 이후 첼시를 상대로 그런 기세가 시작됐다. (올해의 선수) 후보를 찾는다면 손흥민도 도전자가 될 수 있다”며 최근의 기세를 높이 샀다. 

손흥민은 개인상 복도 많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 ‘이달의 골’을 수상한 바 있다. 4골 1도움을 기록한 2016년 9월과 5골 1도움을 기록한 2018년 4월에 각각 이달의 선수를 차지했다. 이후 두 차례 더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이달의 골은 지난해 11월 터트린 첼시전의 50m 질주에 의한 득점이었다. 

하지만 ‘올해의 선수’는 이전까지 손흥민이 들어 올린 상들과는 격이 다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직접 투표하는 방식으로,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한 시즌 동안 가장 탁월했다는 인정을 받는 것이다. 에릭 칸토나, 라이언 긱스, 티에리 앙리, 호날두 등이 받았던 상이다. 지난 시즌 살라의 경우처럼, 월드 클래스를 넘어 월드 베스트로 인정받는 도약대가 된다.

‘스카이스포츠’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팬들을 대상으로 올해의 선수 예상 투표에 돌입했다. 손흥민은 13%를 득표하며 49%의 버질 반 다이크(리버풀), 20%의 세르히오 아구에로(맨체스터 시티)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반 다이크는 리버풀의 프리미어리그 첫 우승 도전을 이끄는 주축 수비수이고, 아구에로는 최근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팀을 다시 선두로 올렸다. 만일 손흥민이 최종 후보 6인에 들 경우 실제 경쟁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들이다.

올해의 선수 최종 후보 진입이 유력한 손흥민에게 남은 과제는 팀 성적이다. 반 다이크와 아구에로가 투표에서 앞서는 것은 결국 소속팀의 우승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토트넘은 현재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에 승점 5점 차로 뒤져 있다. 케인과 알리가 차례로 복귀를 준비 중이어서 남은 리그 12경기에서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유럽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대회니만큼 언론의 관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리그 3경기 연속 골보다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터트린 결승 선제골로 손흥민을 향한 보도가 더 집중됐다. 발롱도르, FIFA 베스트11 등 전 유럽을 대상으로 하는 수상에서도 챔피언스리그 활약의 비중이 크다.

물론 후보 가능성만으로도 이미 놀라운 일이다. 역대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중 비유럽 출신은 2013~14 시즌의 루이스 수아레스(당시 리버풀)와 지난 시즌의 살라 둘뿐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잉글랜드 축구계의 분위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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