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더 짧게,’ 시간차 공격 모델 뜬다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경영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21 13:00
  • 호수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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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유튜브에서 시작, 틱톡·72초 등 유사 모델 인기
5G 시대 맞아 콘텐츠 다양화 전망

“운전은 앞을 볼 수 있는 이들에게 국한된 활동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독립적이고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말이죠. 저희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어 그분들에게 자유와 독립을 드리고자 합니다.” 

버지니아 공과대학 로봇연구소(RoMe-La)의 설립자 데니스 홍(Dennis Hong)이 2011년 테드(TED)에서 했던 명연설의 일부다. 1990년부터 버락 오바마, 빌 게이츠, 스티븐 호킹 등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연사로 거쳐 간 테드(TED)였지만, 한국인으로 첫 주자가 된 데니스 홍 덕분에 국내에도 알려지게 됐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대부분의 연설시간이 18분 이내라는 점이었다. 45분 수업에 익숙한 우리에게 18분의 짧은 시간에 강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관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테드가 연설시간 18분으로 제한한 이유

TED는 왜 연설시간을 18분으로 제한했을까? 과학자들은 청중이 ‘딴짓(turn out)’을 하기 전에 얼마나 오래 주목할 수 있는지 분석한 결과, 그 범위가 10~18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TED의 큐레이터도 “18분은 업무 중 잠시 쉬는 커피브레이크 시간과 비슷하며, 진지하게 들을 수 있는 온라인에서 최적화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CNN 앵커 출신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카민 갤로(Carmine Gallo)는 18분을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이라 명명하고 집중하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이라고 규정했다. 뇌 과학자들도 일정 시간을 넘기면 청중에게 ‘인지 밀림현상(cognitive backlog)’을 유발, 적정 시간이 경과하면 앞서 들었던 정보를 밀어낸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를 비웃는 강적이 최근 나타났다. 바로 쇼트클립 플랫폼 ‘틱톡(Tiktok)’이다. 이 플랫폼에서는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데, 제한시간은 단 15초. 2016년 9월 중국 바이트댄스(Bytedance)사가 론칭한 틱톡은 2019년 1월 기준으로 중국 내 하루 이용자 수가 3억 명을 돌파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용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그렇다면 틱톡은 왜 15초를 제시했을까? 그것은 브랜딩 및 공지의 경우 15초 이하의 짧은 동영상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 정도 시간은 숨을 멈추고도 끝까지 볼 수 있는 정도여서 대중들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틱톡은 인공지능(AI)을 이용, 콘텐츠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용자의 관심과 선호도를 분석하고 개인화된 콘텐츠 피드를 표시해 준다, 이 때문에 대상 시장이 청소년에서 여성, 중장년으로 점차 넓어지고 있다.

사실 유튜브도 2005년 4월 론칭 당시에는 18초짜리 동영상으로 시작했다. 유튜브 설립자 자웨드 카림(Jawed Karim)은 자신이 동물원에서 찍은 18초짜리 짧은 동영상을 처음 올렸다. “제가 지금 코끼리를 보고 있는데 정말 길고 멋진 코를 가지고 있네요. 이상.”이라는 다소 싱거운 내용이다. 이후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흡수해 오늘의 영상 플랫폼 넘버원 유튜브로 우뚝 섰다.

이처럼 최근 ‘시간차 공격 모델’이 비즈니스 모델의 한 축으로 편입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간차 공격 모델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 선봉에 선 비즈니스 모델은 2015년에 설립된 쇼트폼 동영상(Short-Form Video) 스타트업인 ‘72초’다.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이야기를 비틀어 감칠맛 나게 스토리텔링해 콘텐츠를 제작한 게 특징이다. 72초의 핵심 수익모델은 브랜디드 콘텐츠다. 인포머셜이 정보를 담은 광고라면 브랜디드 콘텐츠는 홍보를 담은 콘텐츠다.

그렇다면 72초는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을까? 성지환 대표의 공식 멘트는 ‘짧은 시간을 표현하는 숫자 중에서 72초가 가장 입에 잘 붙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석에서는 ‘젊은이들이 똥 누는 시간이 대략 그 정도여서’라고 말했다. 주요 타깃 이용층을 청소년으로 특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드라마, 뮤직비디오를 넘어 72초 포맷을 해외에 수출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시간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시간차 공격 모델은 이제 여러 분야의 비즈니스에서 시도되고 있다.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와 조용헌 칼럼니스트 등 저명인사들의 사상을 배울 수 있는 ‘300초 인문학’이 대표적이다. 가수들의 앨범홍보를 위한 티저 영상들도 대부분 18초로 소개되고 있다. 

45분→18분→300초→72초 등으로 계속 짧아지고 있는 시간차 공격 모델은 어디까지 더 짧아질까? 영국 한 보험사의 조사에 따르면, 현대인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5분7초에 불과하다. ‘신세대 특성과 라이프스타일 연구’(박혜숙) 논문에서는 평균 집중시간을 8초로 규정했다. 


3초 분량 유튜브 영상 조회 수만 700만 회

2020년, Z세대가 미국 내수소비의 40%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익히 알려진 바다. Z세대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다. 이들은 처음부터 휴대폰을 품고 태어난 세대여서 시청각적 자극에 익숙하다. 디지털 소비의 주축이 될 이들이 인내할 수 있는 시간은 단 8초. 이미지 한두 장에 기껏해야 5단어 내외다.      
유튜브에서 ‘우리 강아지가 방구에 반응하네?’는 불과 4초짜리 쇼트클립이지만 665만 회 클릭이, ‘개가 달려가다 벽에 부딪히는 영상’은 단 3초 분량이지만 575만 회를 찍었다. 그런가 하면 어린이가 강아지에 끌려 넘어지는 장면을 찍은 3초 영상 ‘부왁(Go! Bwaaah!)’도 714만 번이나 봤다.  

향후 플래시와 같은 시각적 자극의 경우 약 0.1초가 필요하고, 청각 자극의 경우에는 0.01초에서 0.02초 정도 걸린다고 하니 5G시대를 맞아 더욱 짧은 콘텐츠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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