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서 5·18 “망언 규탄” vs “명단 공개” 맞불집회 격돌
  • 광주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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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규탄집회…‘분노의 금남로’ 5000여명 운집
망언 3인방 퇴출,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 촉구
극우보수단체 ‘유공자 공개’ 집회…시민들 ‘의연’

“5·18 망언 3인방 사퇴하라.”(광주범시민운동본부) “유공자 명단 공개하라.”(극우보수단체)

광주에서 이른바 5.18 망언을 규탄하는 집회와 5.18 유공자 명단공개를 촉구하는 맞불집회가 2월 16일 오후 비슷한 장소에서 열렸다.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금남로(錦南路) 한복판에서다. 5·18을 바라보는 엇갈린 두 개의 목소리가 냉기가 감도는 금남로에서 ‘강 대 강’으로 맞섰다. 광주 범시민단체는 자유한국당 3인 망언의원 퇴출과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을 주장했고, 극우 보수단체는 5·18 유공자 명단과 공적 조서를 모두 공개하라고 응수했다. 

 

금남로의 엇갈린 두 개 목소리 “3인 사퇴하라” vs “명단 공개하라”

2월 1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광주 범시민궐기대회에서 시민들이 ‘5·18 공청회 망언’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2월 1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광주 범시민궐기대회에서 시민들이 ‘5·18 공청회 망언’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자유한국당 3인 망언의원 퇴출과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을 위한 범시민궐기대회’는 이날 오후 4시부터 금남로 일대에서 광주범시민운동본부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39년 전 5·18 민주화운동의 최후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 광장 앞에 분노에 찬 5월 단체, 시민사회단체, 광주시민 등 5000여 명(주최 측 추산 1만여명)이 운집했다. 5·18 망언을 한 의원 세 명을 국회에서 퇴출시키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지난 2016년 말 촛불 집회 이후 최대 인원이 광장에 모였다.

이날 궐기대회에는 이용섭 광주시장과 광주를 지역구로 둔 여야 국회의원, 광주전남 정당 당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특히 5월 항쟁 당시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故) 안병하 치안감의 아들 안호제씨와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존 인물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도 궐기대회를 찾아 힘을 보탰다 

연단에 오른 인사들은 일제히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을 규탄하고 역사왜곡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대회사에서 “5‧18은 법적, 역사적으로 검증받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며 “더 이상 폄훼되고 왜곡되는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역사왜곡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동찬 광주 시의회의장도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 날조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당장 사퇴하라”며 “역사를 폄훼한 자들을 헌법으로 단죄해야 한다. 국회는 당장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말했다.

장휘국 광주교육감은 “5·18의 진실과 역사가 한국당 등 못된 무리들에 의해 악용되지 않도록 역사왜곡처벌법을 즉각 제정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류봉식 광주시민단체연합회 대표도 가세해 “자유한국당이 끝내 망언 국회의원 3인방의 퇴출을 거부한다면 우리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의 완전 해체를 위해 범국민적으로 함께 할 것을 경고하자”고 말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 민주평화당 장병완 의원,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등도 단상에 나와 규탄 발언을 이어갔다. 집회 참석자들은 ’한국당은 사죄하라‘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제명하라‘ ‘5·18 역사왜곡 처벌법 제정’ 등이 적힌 손팻말을 흔들며 ‘5·18 망언’을 강하게 비난했다. 

전남 곡성에서 아들과 함께 왔다는 한 40대 남성은 “역사적 사실은 이미 결론 난 사안인데 보수 세력들이 일삼는 5·18 모독 행위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집회에 참석한 이은방 전 광주시의장은 “진작 5·18특별법에 망언망동을 처벌하는 규정을 넣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의 사태를 불러온 것 아니겠냐”면서 “지금이라도 정치권에서 확고하게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한국당과 보수단체의 분통을 터뜨렸다. 5·18 당시 시민군에 참여한 이동계씨는 “유공자 명단은 5·18 기념공원 후문 지하에 가보면 4500여명의 명단이 명시돼 있다”며 “무슨 트집을 잡기 위해서 명단을 공개하라는지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5월 단체 관계자들은 시민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며 5월 항쟁 당시의 모습을 재연했다. 시민들은 자유한국당 망언 국회의원 3명과 지만원씨의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 행사를 했다. 이들은 궐기대회가 끝난 후 집회 장소에서 광주 세무서까지 왕복 2㎞ 구간을 가두 행진했다.

2월 1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역사왜곡 처벌을 위한 광주범시민궐기대회’에서 시민들이 5·18 망언을 규탄하며 지만원씨와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1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역사왜곡 처벌을 위한 광주범시민궐기대회’에서 시민들이 5·18 망언을 규탄하며 지만원씨와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단체 “광주 구하러왔다” 발언에 시민들 냉소 ‘화나지만 무시’ 

이에 앞서 극우 보수단체들은 ‘맞불 집회’를 열었다. 자유연대 등 4개 보수단체 회원 200여명은 이날 오후 1시부터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리는 곳으로부터 800여m 떨어진 금남로 4가에서 집회를 열었다. 5·18최후의 항쟁지인 금남로에서 보수단체의 집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단체는 “5·18 유공자 명단과 공적 조서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가짜 유공자 밝혀내어 광주시민 명예회복하자’, ‘광주 5·18 유공자 명단 공개하라’, ‘5·18유공자 공적조서 투명하게 공개하라’ 등이 적힌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명단 공개를 촉구했다. 

검은색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일부 회원은 길을 지나는 시민들과 차량을 향해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5·18 유공자 명단공개’를 외쳤다. 차를 타고 집회 장소를 지나던 시민들이 손가락질하거나 큰 소리로 나무랐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은 당초 예정됐던 5시30분보다 이른 3시20분쯤 집회를 마친 뒤 금남로 4가에서 충장로 우체국을 지나 광주천을 돌아오는 구간을 행진했다. 최초 50여명에 불과하던 집회 참석인원은 행진이 시작되자 200여명가량으로 늘어났다.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전세버스를 대절해 집회 참여 인원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장로 구간은 시민들이 밀집한 곳인 데다 5·18 망언 규탄 대규모 집회가 예정된 상황이어서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경찰이 시위 행렬을 에워싸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들은 행진 중에도 방송차를 통해 시민들을 선동했다. 마이크가 장착된 방송차에 오른 한 사람은 욕설까지 섞어가며 취업 특혜설 등 5·18 유공자에 대한 갖은 의혹을 제기했다. 대부분 5·18 왜곡에 앞장서 온 지만원씨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한 보수단체 회원은 “광주시민들이여 각성하라. 우리가 광주를 구하러왔다” “광주가 빨갱이 집단에게 속고 있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한 시민은 “화가 나지만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유공자 명단 공개, 시민의견 갈려 “굳이 못할 이유가...” vs “정치적 의도 다분” 

자유연대 등 4개 보수단체 회원 200여명이 이날 오후 1시부터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리는 곳으로부터 800여m 떨어진 금남로 4가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자유연대 등 4개 보수단체 회원 200여명이 이날 오후 1시부터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리는 곳으로부터 800여m 떨어진 금남로 4가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대부분의 시민들은 보수단체의 집회와 가두행진을 차분히 지켜봤다. 충장로 2가에서 의류가게를 하는 이 아무개(48)씨는 “다소 소란스럽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집회자유가 있으니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민들은 이들이 목청껏 외치는 주장에도 무시와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유공자 명단과 공적 조서 공개에 대한 ‘광장 밖’ 시민들의 견해는 미묘하게 갈렸다. 북구 첨단지구에서 왔다는 시민 김 아무개(63)씨는 “다른 국가 유공자들의 명단이 공개된다면 굳이 공개 못할 이유가...”라고 말끝을 흐리며 “이를 놓고 벌이는 논란은 소모적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반면에 충장로에서 이동통신 대리점을 운영하는 30대 박 아무개씨는 “자유한국당의 명단과 공적 조서 공개 요구에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며  “공개하면 유공자 자격 여부를 놓고 또다시 분탕질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해 반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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