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초(浮草) 같은 인생, 구름 같은 나그네 마음
  • 한가경 미즈아가행복작명연구원장·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9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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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경의 운세 일기예보]

“중등영어교사 임용고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 행정고시나 회계사 시험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봅니다. 저도 그런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마음이 자꾸 흔들립니다. 그러다보니 계속 고민이 돼 제 공부에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지금 양 손에 떡을 들고 방황하고 있는 형국이군요. 그러나 양다리 걸치기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대학 4학년 여학생(24)이 사무실로 찾아와 고민이 많다며 신년 운세 상담을 청했다. 태어난 생년월일시로 타고난 사주를 분석해 봤다. 병자(丙子)년 정유(丁酉)월 갑자(甲子)일 무진(戊辰)시. 년주(年柱) 월주(月柱) 일주(日柱) 시주(時柱) 네 기둥 중 운세 분석의 뼈대가 되는 일간(日干)이 갑(甲)목 곧은 나무다. 일간이 금(金) 관살과 토(土) 재성과 함께 일간의 힘을 약화시키는 화(火) 식상 등에 둘러싸여 있다. 많이 신약(身弱)한 명조다. 지지에 일간의 뿌리가 되는 물과 비옥한 흙이 갖춰져 있지만, 전체적으로 목 기운이 부족하다. 목 나무 기운에 비해 물이 많아 목이 흙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기가 어렵다. 시주의 진토(辰土)가 갑목의 의지처. 그럴 진대 진(辰)이 옆 일주의 자수(子水) 및 년주의 자수(子水)와 만나 서로 합해 물로 오행이 바뀌는 형질변경을 하고 있다.

나무로 비유되는 일간이 물을 갖추면 재주와 지혜가 많은 사주다. 그러나 물이 범람할 정도로 많은 사주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간다. 물이 흘러넘칠 정도로 많아지면 물에 둥둥 떠다니는 부목(浮木)이나 뿌리가 썩는 부목(腐木)이 될 수 있다. 일생 내내 방황하기 쉽다. 시주 무진의 무(戊)토(土)는 태산이어서 눈길을 끈다. 물이 홍수처럼 돼 넘치지 않게끔 물막이를 해주는 흙 역할을 해주고 있다. 부초처럼 떠도는 방랑자가 될 사주를 무토가 튼튼한 둑을 만들어 붙잡아준다.

10년 주기로 찾아드는 대운이나 한 해 한 해 돌아오는 세운에서도 토를 만나야 한다. 만약 비가 내리는 대운 수 오행을 만나면 위태롭게 된다. 홍수에 둑이 무너질 수 있다. 다행히 고객이 현재 좋은 대운을 만났다. 그가 만난 을미(乙未) 대운은 천간이 나무, 지지가 흙이다. 흙으로 둑을 쌓아 물막이를 하면 된다. 

“교사 임용고시 준비에 집중해야지요. 행정고시나 회계사 시험공부를 하려면 진작부터 시작했어야 했습니다. 공부를 새로 시작하면 합격까지 도대체 몇 년이나 걸릴지 의문이네요.”

“영어 교사의 길은 어린 시절부터 쭉 생각해 온 인생입니다. 그런데 지금 도서관에서 행시 공부를 하는 친구 등을 만나다보니 나도 한번 그 쪽 길에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제목의 로버트 프로스트 시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가지 않은 길’은 있을 수 있습니다. 집중해야 할 때 집중하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양손에 떡을 들고 있어도 둘 다 한꺼번에 먹을 수 없지요. 떡은 하나부터 먼저 먹고 차후에 다른 손의 떡도 맛 봐야 하는 것입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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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러나 한 우물을 파야 성공에 이르기 쉽다. 더욱이 고객은 귀가 얇아 ‘팔랑귀’라고 불리는 사주였다. 일간 갑목의 뿌리가 착근하지 못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10년 대운에서 을미(乙未) 대운의 을(乙)을 만났다. 을은 친구이자 동시에 경쟁자다. 마음이 흔들려 제 갈 길을 버리고 한 눈 팔면 안 된다. 유약한 풀에 해당되는 을이다. 을목은 키 큰 기둥나무 갑(甲)목을 도울 힘이 전혀 없다. 고객은 대운 미(未)토에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세운은 기해(己亥)년인데 기해년의 ‘해(亥)’는 왕성한 물줄기이다. 물줄기에 떼밀리면 이리저리 떠도는 부초가 된다. ‘해’운은 갑목이 뻑어나갈 수 있는 운기인 장생지(長生地)이기도 하다. 신약한 갑목이 장생지를 만나면 시험합격, 취직, 결혼 등에 길한 때이다. 이에 따라 기해년 임용고시 합격이 충분히 가능한 운세이다. 이 때 성공에 조건은 있다. 조건은 다름아닌 ‘친구 따라 강남가지 않는다’는 것과 ‘한 우물을 판다’는 것.

긴가민가하며 듣는 듯했다. 고객이 얼굴을 붉히며 씨익 웃었다. 필자의 해석이 맞다 해도 왠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64괘 주역점을 쳐보았다. ‘화산여(火山旅)’ 괘가 나왔다. 인생은 여행이다. 사람이 어려운 세상을 헤쳐나가거나 갖은 고통을 이겨내며 웃고 울며 겪어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다. 즐거운 여행은 우리에게 힐링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좋은 정보와 지식, 체험으로 얻기도 하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집에서 열심히 농사지어야 할 시점에 농삿일을 팽개쳐두고 이리저리 객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농사는 망가진다. 이 괘는 불이 산 위에 있는 형국이다. ‘려(旅)’는 문자 그대로 나그네, 여행이라는 뜻. 불이 집안에 있지 않고 산 위로 옮겨가 있으니, 집에 있어야할 마음이 멀리 객지로 나다니고 있다. 그것도 하루나 이틀이 아니고 멀고 긴 방랑자의 길이다. 산 위의 불이 끊임없이 타오르며 이리저리 옮겨 붙듯 하니 불안한 여행객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집 나가면 갖은 고생이 따른다. 자신의 집이 가장 안정되고 편안하다. 화산여(火山旅) 괘 중에서도 4효였다. 4효는 지조(志操)를 실천하지 못하는 형국. 마땅히 추수를 하고 열매를 거둬야 할 시점에 역마살이 들어 세상 구경을 나갔다가 날이 저물어 높은 산을 넘지 못한 채 주막에 앉아 쉬고 있는 모양새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묵묵히 지켜내야 함을 웅변하는 괘다. 그렇게 풀이해주니 “제가 지금 그런 방랑자 상태가 맞아요”라며 고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타로 오쇼 젠(Osho Zen) 신점(神占)을 쳐보았다. 필자는 잠시 ‘멍 때리는’ 무념무상의 상태에 들었다가 고객의 현재 상태에 관해 물어봤다. 카드를 뽑아본 결과, 구름 카드 중 하나인 '비교(comparison)' 카드가 나왔다. 우선 구름 카드 자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말 그대로 마음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부운(浮雲)과 같다는 얘기다. 무릇 깨달음 혹은 원래의 존재를 놓쳐버린 마음이란 구름과 같다. 스스로의 빛을 가리고 만나는 풍경들을 모두 어둡게 만들어버린다. 구름은 또 다른 속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왔다가 사라진다’는 얘기다. 구름은 하늘처럼, 본래의 ‘참나’ ‘본성’처럼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움직인다. 영원하지 않다. 말하자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다. 시간이 지나면 구름이 걷힌다. 이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참나무와 대나무를 나란히 그린 그림 '비교(comparison)'라는 카드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참나무와 대나무, 누가 더 아름다운가. 누가 더 가치있는 식물인가. 참나무는 속이 빈 몸통을 갖고 있는 대나무의 몸통을 부러워할까. 대나무는 몸통이 굵고 가을에 잎이 아름답게 물드는 참나무에 대해 질투심을 느낀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전혀 다른 두 나무일 뿐이다.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참나무는 참나무 대로, 대나무는 대나무 대로 각각 존재할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훨씬 재능이 많고 아름답거나 지성적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나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 비교한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나는 나일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 선(禪)적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찾아낼 수 없다. 참나무는 참나무대로, 대나무는 대나무대로, 풀잎은 풀잎대로, 하늘의 뜬 별은 별대로 우주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존재계의 모든 것이 머물고 있는 그 자리에서 조화롭게 어우려져 있다. 더 높은 사람도 없고 더 낮은 사람도 없으며 우월한 사람이나 열등한 사람도 없다. 이 카드는 주위와 자신을 비교하며 방황하거나 모든 능력을 다 가지려 욕심낼 필요가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적성과 취미, 학업능력에 따라 자신에게 가장 걸맞은 진로 하나를 선택하면 성공의 지름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의 긴 설명에 고객이 환히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꾸벅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확신에 찬 어조로 필자에게 말했다.

"영어 교사가 될 수만 있다면 교직이 제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자체의 보람은 물론이구요, 방학 때 문학적인 글을 쓰는 등 취미생활을 할 수도 있고, 배낭여행을 떠나 자유영혼으로 지구촌탐방을 다닐 수도 있으니까요.“

“고민과 방황의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아요. 올해 임용고시는 합격가능성이 아주 높은 운세이니까요.”

내일을 알 수 없는 삶이다. 미래가 불안하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어두운 길에 등불이 돼 줄 이정표는 없는가. 역리학을 공부하면 타는 목마름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속 시원히 운세풀이를 할 정도의 고급역학 지식을 단시일에 습득하기는 어렵다. 주역점이나 타로점은 어떨까. 괘사가 딱 떨어지게 맞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유익하다. 삶의 기로에서 만난 방황을 끝낼 수 있다.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점괘를 뽑아보라. ‘참나’가 우리 존재의 근원이요,  삶의 주인이다. 이를 깨닫고 마음을 비운 채 ‘참나’에게 물어 보라. 

부초(浮草) 같은 인생이요, 구름 같은 나그네 마음이다. 먼 길을 떠날 때는 길을 물어보자. 이정표나 지도를 놓치지 말기를. 괘를 뽑아보며 하늘의 섭리를 짐작해보길.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판단해 지혜롭게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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