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증거, 두개의 판결… 반전 거듭된 성폭행 사건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2.2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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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은행직원 20대 女, ‘꽃뱀’ 혐의 벗었는데 다시 실형 받아… 조작된 녹음파일이 유죄 증거로 판단돼

같은 성관계 녹음파일과 같은 CCTV 영상. 하지만 사법부의 판단은 서로 달랐다. 이로 인해 ‘꽃뱀’ 혐의를 벗었던 20대 여성에게 다시 실형이 선고됐다. 1년 반 넘게 반전의 연속이었던 이 사건은 이번에도 결말을 맺지 못했다. 

2월21일 오전 11시 서울서부지법 303호 형사대법정. A씨의 무고 혐의에 대한 2심 공판이 열렸다. 원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그에게 재판부는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2016년 11월11일 오후 서울시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IBK기업은행 본사 전경 © 시사저널 박정훈
2016년 11월11일 오후 서울시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IBK기업은행 본사 전경 © 시사저널 박정훈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17년 5월, 당시 IBK기업은행 직원이었던 A씨는 회사 상사였던 30대 B씨와 모텔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몹쓸 짓을 당했다고 생각한 A씨는 B씨를 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곧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상황은 역전됐다. B씨가 “성관계는 합의 하에 이뤄졌다”며 A씨를 무고죄로 고소한 것. A씨를 재판에 넘긴 검찰의 의견도 같았다. 이와 같은 판단의 배경엔 B씨가 성관계 도중 녹음한 음성파일이 있었다. 

하지만 녹음파일은 도리어 B씨의 발목을 잡았다. 그가 파일을 조작한 사실이 A씨 변호인단에 의해 들통난 것. 원본 파일엔 A씨가 성관계 도중 남자친구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A씨가 B씨의 부름에 전혀 대답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B씨는 이 부분들을 삭제한 녹음파일을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이러한 정황이 받아들여져 A씨는 지난해 4월 1심에서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유죄를 선고받았다. 거듭된 반전의 중심엔 또 녹음파일이 있었다. 2심 재판부는 “녹음파일을 들어보니 피고인(A씨)이 먼저 B씨에게 적극적으로 성관계를 원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상대를 B씨로 인식한 상태에서 성관계를 가졌다”고 했다. A씨가 남자친구의 이름을 부른 사실에 대해선 “성적 흥분 상태에서 무심결에 습관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판단했다. B씨의 증거 조작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 외에 2심 재판부는 “모텔에 들어가기 전까지 가진 두 차례 술자리에서 A씨의 태도가 자연스럽고, 마신 술이 만취할 정도로 과다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앞서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A씨가 마신 술의 양은 평소 주량을 넘었고, 모습을 봤을 때 술에 안 취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양쪽 모두 판단 증거는 당시 현장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었다. 같은 물증을 두고 1심과 2심 재판부의 시각이 극단적으로 엇갈린 셈이다. 

“주문.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6월에 처한다. (중략) 실형이 선고돼 피고인이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구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재판부의 선고를 듣던 A씨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전혀 감정을 읽을 수도 없었다. 그는 법원 관계자의 손에 이끌려 피고인석 뒤편의 문 밖으로 사라졌다. 

사건의 최종 결말은 대법원에서 날 예정이다. A씨 변호를 맡은 김상균 법무법인 태율 변호사는 시사저널에 “재판부의 판단에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다”면서 “곧바로 상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A씨 변호인단은 B씨를 준강간과 무고,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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