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빅딜]② 핵 신고서 제출 시기, 늦춰질 가능성도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2.22 13:30
  • 호수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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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협상에 폼페이오-김영철 빠지고 비건-김혁철 등장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이다. 첫 번째 만남보다 흥행성이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지만, 북·미 회담만큼은 예외다. 한반도가 세계 정세 변화의 중심에 있어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수식어는 이제 식상해졌다. 그보다는 남한과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더 관심사다. 여기에 재무장을 시도하는 일본, 아시아 진출을 다시 꿈꾸는 러시아도 ‘빛나는 조연’이다. 한반도는 2월말 또다시 변화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앞선 [북·미 빅딜]① 2차 北·美 회담, 막전막후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지난해 8월 대북특별대표에 선임됐지만 북한은 지금까지 비건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평양 협상 전까지 비건은 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수행하는 일만 했다. 이는 격식을 따지는 북한의 외교 관례로 볼 때 당연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지난해 말 북한에 친서를 보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북한은 신년사를 통해 미국 쪽에 화답했고, 김영철 북한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백악관에서 미국 수뇌부와 회담을 가졌던 것이다. 그때 처음 등장한 인물이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다. 김혁철의 등장은 비건의 활동반경을 넓혀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나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 싱가포르 정부 제공

반대로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은 뒤로 빠졌다. 올 초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영철은 폼페이오에게 “우리가 무슨 핵이 있다고 그러냐”며 너스레를 떤 바 있다. 최고지도자조차 ‘핵 보유’를 인정한 마당에 김영철이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은 폼페이오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방미 기간 중 김영철은 지나 헤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만났다.  

그렇다면 북한과 미국이 서로에게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선 북한이 내놓을 카드를 살펴보기 위해선 올 초 공개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부터 보자. 내부·남북·대외 순서로 구성된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경제’라는 단어를 38회, ‘평화’라는 단어를 25회 사용했다. ‘국방’과 ‘군사’는 각각 6회와 4회씩 썼다. 한마디로 올 신년사는 경제 재건에 모든 걸 걸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016년 발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기준으로 보면, 올해는 네 번째 해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금 북한의 경제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김정은은 “우리의 주동적이며 선제적인 노력에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며 상응한 실천행동으로 화답해 나선다면 획기적인 조치들을 취해 나가겠다”고 해 협상 방식과 관련해서는 단계별 대응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일본 언론들이 “북한이 제재 해제 대신 체제보장을 요구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공을 넘겨받은 미국은 상황이 난처하다. 한번 풀린 고삐를 놓을 수 없기에 대북제재를 한꺼번에 해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미국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다. 현재 트럼프는 의회, 워싱턴 관료, 학계, 언론 등 미국 주류사회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대북 강경론자들은 비핵화의 원칙으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를 주장했다. 여기서 논란이 될 것은 범위가 모호한 ‘불가역적’이다. 비핵화 과정에 있어서도 미국은 ‘신고→사찰→검증’을 요구했다. 이는 지금까지 미국이 고수해 온 비핵화 원칙이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신고’라는 첫 번째 원칙을 달성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미국이 파악한 것과 북한이 내놓은 것, 신고 항목을 놓고 검증하는 것에만 수십 개월, 수년이 걸린다. 더군다나 독립국가인 북한에 핵신고 목록을 모두 내놓으라는 것은 사실상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6자회담 대표를 역임한 이수혁 민주당 의원은 “과거에도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핵물질 신고 리스트를 내놓았지만, 한·미가 파악한 것과 차이가 컸다”면서 “신고를 우선으로 할 경우 비핵화 과정은 첫 단계부터 꼬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가 감지됐다. 1월 강연에서 비건은 핵 신고서 제출 시기를 ‘지금 당장’이 아닌 ‘언젠가’라고 말해 종전 입장보다 한 발짝 물러난 모습이었다. 워싱턴 조야(朝野)에서는 ‘사찰’ ‘검증’과 ‘신고’의 순서가 뒤바뀔 거라는 소식마저 들리고 있다. 

 

☞ 계속해서 [북·미 빅딜]③ ‘영변+α 핵 폐기’ ‘대북 제재 완화’ 맞교환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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