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중앙분리대 ‘차광막’, 대형 사고 ‘시한폭탄’ 우려
  • 부산·경남 = 서진석 기자 (sisa526@sisajournal.com)
  • 승인 2019.02.27 10:00
  • 호수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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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분리대는 엄격한 테스트 거치는 반면 차광막은 ‘무임승차’…국토부 “대책회의 갖겠다”

도로 중앙분리대 위에 설치된 그물무늬 철 구조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 그물망의 정체는 반대편 차선에서 마주 오는 차량의 전조등 불빛을 일정 부분 차단시켜 야간에 운전자의 시야 확보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설치된 ‘현광방지시설’의 일종인 차광막이다.

2017년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창원터널 사고 현장. 중앙분리대 위에 설치된 차광막이 사고 기점부터 떨어져 나가고 없다. ⓒ JTBC 화면 캡쳐
2017년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창원터널 사고 현장. 중앙분리대 위에 설치된 차광막이 사고 기점부터 떨어져 나가고 없다. ⓒ JTBC 화면 캡쳐

설치된 차광막 대부분 충돌 테스트 안 거쳐

그런데 이 차광막 대부분이 검증기관의 충돌 테스트도 받지 않은 사실상 ‘불법 부착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 차광막이 충격을 받을 경우 반대 차선으로 떨어져 심각한 2차 사고를 유발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도로에 중앙분리대를 설치하려면 도로공사 산하 도로교통연구원에서 주관하는 충돌 시험을 거쳐야 한다. 이 시험의 평가 항목은 차량이 분리대를 돌파하지 않아야 하고 시설물의 변형 거리가 1m 이내, 차량이 전도되지 않을 것 등이다. 또한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부속 자재가 도로나 도로 밖으로 비산되어 제3자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항목도 있다. 국토부 편람 등에는 채점 기준으로 비산되는 부재료의 무게가 2kg 이내여야 하고, 날아가는 거리도 전방 1m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시험을 통과하고 설치된 중앙분리대 바로 위에 차광막이 부착돼 있다는 점이다. 정작 이 차광막은 시험장에 가지도 않은 채 ‘무시험 전형’으로 도로에 진출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존재한다. 국토부 편람 등을 적용하면 차광막이 부착된 중앙분리대에 대한 충돌 시험은 당연히 해야 하고, 먼저 생산된 중앙분리대 위에 추가로 차광막을 설치할 경우에는 시제품을 만들어 충돌 테스트를 통해 부속 자재의 비산 정도를 인증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토부와 조달청, 일선 건설사 어느 한 곳도 이 규정을 지키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는 시사저널의 취재가 시작되자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2월 중으로 도로공사, 교통공단 등 관계자들과 만나 대책회의를 갖겠다”면서 “제품 선정에 신중을 기하라는 공문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조달청을 통해 납품되는 차광막은 어떨까? 제조사들은 ‘차광막’이나 ‘현광방지시설’로 제품 번호를 받으려면 충돌 테스트 성적표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금속제기타울타리’라는 품목으로 조달 번호를 부여받고 있다. 이럴 경우 운전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차광막을 야생동물 차단 울타리나 공원 울타리를 만드는 제조업자도 생산이 가능하고 중앙분리대 사업에도 진출이 가능해진다.

① 트럭 충돌시험 중인 중앙분리대. 함께 설치된 차광막도 시험 대상에 포함된다. 사진에 보이는 차광막은 부분 이탈이 이뤄졌지만 중앙분리대에서 떨어지지 않아 시험에 합격했다.②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 중앙분리대 위에 설치된 차광막이 모두 사라진 상태다. ⓒ 시사저널 서진석
① 트럭 충돌시험 중인 중앙분리대. 함께 설치된 차광막도 시험 대상에 포함된다. 사진에 보이는 차광막은 부분 이탈이 이뤄졌지만 중앙분리대에서 떨어지지 않아 시험에 합격했다.②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 중앙분리대 위에 설치된 차광막이 모두 사라진 상태다. ⓒ 시사저널 서진석

국토부·조달청·건설사, “검토 중” “잘 몰라”

조달청 관계자는 “금속제기타울타리라는 이름으로 시험에 합격한 중앙분리대에 끼어들기 하는 시스템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는 공감한다. 조달 기업 리스트도 다시 살피겠다”면서 “제품 선정과 관련한 명확한 지침이 필요하므로 국토부에 질의를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사기업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지난해 12월 부산~울산 간 국도 7호선 일부 구간이 개통됐다. 여기에도 차광막이 설치됐다. 공사 감리를 담당한 A엔지니어링 관계자는 “‘관례’대로 중앙분리대 시공사를 선정해 공사를 했고 차광막 문제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사를 발주한 부산국토관리청도 “위에서 지침이 내려오면 따르겠다”며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러한 정부의 거북이걸음에 거액을 들여 충돌 테스트를 통과한 기업들은 회사 존립을 걱정하고 있다.

경남 밀양시에서 관련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B씨(55)는 “중소기업이 사운을 걸고 수십억원을 들여 정부 지침에 만족하는 제품을 만들었는데 얌체 시설물에 밀려 회사가 고전하고 있다”며 “특허를 받은 사람은 패가망신하고 기술을 도둑질하는 사람이 돈을 번다는 말을 들었지만, 내가 직접 경험할 줄은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문제는 기존 설치된 차광막은 대부분 재질이 철로 이뤄져 충격에 쉽게 부서지지 않고 무게도 개당 30kg에 육박, 반대 차선으로 날아갈 경우 상대방 운전자는 영문도 모른 채 수십kg짜리 쇳덩어리 벼락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2월15일 밀양시 초동면에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청소차량이 중앙분리대를 충격하면서 차광막이 수십m 날아간 것. 반대편을 주행하던 승용차가 파편에 맞아 사이드미러가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차량 운행이 뜸한 오전 7시쯤 사고가 발생해 추가 피해는 없었다.  

현재 얼마나 많은 도로에 테스트를 받지 않은 차광막이 설치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국토부는 관련 질문에 “해당 자료 없음”이라고 회신했다. 지난 2017년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창원터널 사고 때도 차광막이 탈락됐다. 당시 사고 원인을 두고 윤활유를 운반하던 트럭의 과실과 화재 등이 꼽혔지만 차광막은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수십 장의 차광막이 반대 차선으로 떨어졌는데 이로 인한 2차 피해 여부에 대한 조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관할 창원시는 새로 차광막을 설치하면서 충돌 테스트 대신 탈락을 방지하기 위해 추가로 고정 핀을 도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형 사고가 발생한 뒤에 원인을 찾고 관련 법규를 정비하는 전문이 대한민국 아니냐”며 정부의 늑장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남 통영에서 택시를 운전한다는 손아무개씨(52)는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안전운전을 하는 다수의 국민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알고 있다”면서 “앞으로 1차로를 주행할 때 괜한 걱정을 하지 않도록 당국에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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