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방시혁에게 바란다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2 17:00
  • 호수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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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가 청년들 꿈 방해하는 일에 비판 목소리 높여주길

BTS(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대표인 방시혁씨가 서울대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의 전문을 읽었다. 감동적이었다. 모범적 시민의 사례가 극히 드문 시대에 그와 같은 사람이 등장해 준 자체가 너무 고마웠다. 최근 시설노동자 파업 때 서울대생 일부의 연대하지 않는 몰상식에 다친 사람들에게 보내는 치유의 말처럼 들렸다. 그는 자신을 만들어낸 것은 자신이 속한 세상에 만연한 불의에 대한 분노였다고 말한다. 아이돌의 음악에 대한 폄하, 팬클럽을 구성하는 여성들에 대한 비하, 천민자본주의적인 부도덕한 거래, 그 밖에도 나쁜 관행이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읽고 또 읽으면서 거듭 머무는 말. “악습들, 불공정 거래 관행, 사회적 저평가.” 

청소년 시절부터 막막한 꿈을 안고 일주일에도 수십 시간을 연습하고 또 연습에 매달리지만, 잔인할 정도의 경쟁에 내몰리는 모습을 우리 모두는 텔레비전으로 무슨 서바이벌게임 보듯 보았다.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연예계 관련 시사들을 통해, 보이는 것의 배후에 많은 나쁜 일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BTS가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기 시작할 때 한 페친이 그런 평가를 했다. “한국이 아니어서.” 

10대·20대 여성이 다수 포함된 팬덤을 지닌 빅뱅의 멤버 승리가 받고 있는 혐의는, 범죄를 간신히 면한다 해도 충분히 큰 상처다. 방탄소년단이 모든 면에서 보여주고 있는 시민으로서의 성숙한 모습과 승리의 경제적 성공을 구가하는 모습 사이의 이 간극은 무엇 때문일까. 단지 음악산업이라는 한 분야에만 불합리와 부조리가 만연한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한국 사회 전체가 준범죄적인 방식으로 부와 성공을 쫓고 쾌락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도 아픈 것이지, 그 반대일 리가 없다. 다행히 이긴 사람이 되어 그는 서울대생 앞에서 “저의 분노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연설을 했지만, 우리는 그의 투쟁을 불러낸 한국 사회의 불의와 모순 역시 현재진행형임을 알고 있다.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2월26일 서울대학교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제73회 학위수여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2월26일 서울대학교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제73회 학위수여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서울대 연설 “저의 분노는 현재진행형”

앞으로 방시혁에게, 또 방탄소년단에게 성인지감수성의 부족을 깨닫게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떨까? 나는 그 결과를 미리 알고 있다. 그들은 미처 몰랐던 여혐을 지적받았을 때 그것을 성찰하고 시정할 줄 안다. 미처 몰랐던 문제 앞에, 누군가 분노할 때 그 분노를 알아들을 수 있어서 나는 더더욱 방탄소년단이 자랑스럽고 아미들이 존경스러우며 방시혁이 멋지다. 그가 오히려 더더욱 ‘꼰대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이미 꿈을 이룬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꿈을 방해하는 일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주면 안 될까 하는 무리한 꿈을 꾸어본다.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데 성공이란 없지만, 그의 연설문 한 구절은 말만 바꾸면 꼭 내 심정 같다. 옮겨본다.

“저는 혁명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행복과 현실 세계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한 분노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꼰대들에게 지적할 거고, 어느 순간 제가 꼰대가 돼 있다면 제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엄하게 스스로를 꾸짖을 겁니다. 모든 여성들이 자기 분야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고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내고 싸워서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상식이 통하는 동네가 되어 간다면, 한 단계 한 단계 변화가 체감될 때마다 저는 행복을 느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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