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 “태극마크 떠올리면 가슴 두근두근”
  •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3 09:00
  • 호수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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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生生토크]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이정후…“단점 고치기보다 장점 완벽하게 가다듬는 게 중요”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21)는 보통 ‘악바리’가 아니다. 부상으로 낙마해도 다시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오고, 수술로 힘든 재활을 소화하면서도 어느새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악바리’를 뛰어넘어 ‘독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이정후는 시즌 전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다 손가락이 골절되는 바람에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개막전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5월에는 투구에 종아리를 맞는 바람에 근육이 손상됐지만 보름 만에 복귀했다. 신인왕 수상자인 이정후는 프로 2년 차 징크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성적을 거뒀다. 109경기에 나서 타율 0.355(김현수·양의지에 이어 타격 3위), 출루율 0.412(6위), 163안타, 57타점, 81득점을 기록해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지난해 10월 한화 이글스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9회 말 김회성의 타구를 잡으려고 다이빙캐치를 하다 어깨를 다쳤던 이정후. 결국 왼쪽 어깨 전하방 관절와순 봉합 수술을 했다. 재활 기간은 약 6개월로 예상됐고, 구단의 복귀 시점은 5월이었다. 그러나 이정후는 현재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연습경기에 나서며 3월23일 개막전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약 3개월 만에 다시 타석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는 아버지 이종범 코치(LG)를 떠올리지 않아도 이정후란 이름만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그다. 애리조나 키움 캠프에서 KBO의 대표 히트상품으로 꼽히는 이정후를 만났다.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가 2월17일(현지 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 스포츠 콤플렉스에 꾸려진 스프링캠프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가 2월17일(현지 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 스포츠 콤플렉스에 꾸려진 스프링캠프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이전에도 애리조나 캠프에 온 적이 있었나.

“히어로즈 입단 후 첫해, 신인으로 애리조나 캠프에 왔었다. 지난해는 부상으로 캠프에 참가하지 못했고, 이번에 2년 만에 왔는데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야구장도 서프라이즈 스타디움(텍사스 레인저스가 사용하는 훈련장)에서 피오리아 스포츠 콤플렉스(시애틀 매리너스 훈련장)로 바뀌었다.”

스프링캠프 동안 어떤 목표를 갖고 임하는 중인가. 

“어깨 수술을 받고 재활하면서 캠프에 합류한 터라 어깨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는 것과 몸을 잘 만들어서 돌아가는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몸 상태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어 신기할 정도다. 이건우 트레이닝 코치님이 1차 캠프 때까지는 정상적인 몸 상태로 만들어주시겠다고 호언장담하셨는데 코치님 말씀대로 되고 있다. 처음에는 코치님 말씀을 믿지 않았다(웃음). 지난해에는 ‘어떻게 하면 잘할까’를 목표로 했다면 올해는 ‘어떻게 안 다치고 잘할까’로 목표를 수정했다.”

수술 부위의 통증은 가라앉은 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통증이 계속 있었다. 그래서 송구도 제대로 안 될 정도였다. 지금은 두 팔이 똑같이 올라간다. 이렇게 큰 부상은 처음이고, 수술도 야구 하면서 처음 경험했던 터라 부상당했을 때는 짜증이 났다. 그 부상 덕분에 몸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부상당하면 안 된다. 더 이상은.”

지난해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부상당한 후 팀의 포스트시즌을 더그아웃에서 지켜봤다.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 

“서러웠다(웃음). 실력이 뒤떨어져서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부상으로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동료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지난해 8월28일(현지 시각)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B조 예선 마지막 한국과 홍콩의 경기 6회초 무사에서 이정후가 2점 홈런을 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8월28일(현지 시각)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B조 예선 마지막 한국과 홍콩의 경기 6회초 무사에서 이정후가 2점 홈런을 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하게 프로 데뷔 후 부상이 잦았다.

“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이토록 심한 부상을 당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전부터 손가락이 골절되더니 시즌 중 종아리 근육 손상, 시즌 막판에 어깨까지 부상을 입었다. 부상당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하려고 조급하게 굴었는데 지금은 빠른 회복보다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나한테 ‘마’가 끼었던 모양이다. 선배들 말씀이 틀리지 않더라. 한 번 다치면 계속 다치니까 부상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지난 시즌 중반에도 어깨가 탈골됐는데 또다시 어깨가 탈골되면서 결국 수술까지 받았다. 

“사실 불안 불안했다. 어깨가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계속 빠진다고 해서 경기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감독님, 트레이닝 코치님도 어깨가 민감한 부위라 계속 체크해 주셨다. 그러다 큰 부상을 당했으니 얼마나 낙담이 컸겠나. 내가 더 조심했어야 했다.”

그런데 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게 아니라 좋은 일도 있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고, 골든글러브 수상에다 연봉도 대폭 오르지 않았나(올 시즌 이정후는 1억2000만원 오른 2억3000만원에 연봉 계약을 맺었다).

“가끔은 내가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직도 내 앞에 펼쳐진 현실들이 믿기지 않는다. 운도 좋았다. 만약 감독님이 날 믿고 기용하시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싶다.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선배님들도 모두 잘 대해 주신다. 내가 인복이 많은 모양이다(웃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는 사람도 있지만 기회가 주어져도 못 잡는 사람이 있다. 이정후 선수가 그 기회를 잘 잡았기 때문에 연봉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것 아니겠나.

“프로에 입문하기 전 형들이 이런 얘기 하는 걸 들었다. ‘기회는 누구한테나 주어지는데 그 기회를 누가 빨리, 더 단단히 잡느냐의 싸움’이라고. 히어로즈 입단 후 처음으로 미국 캠프에 왔을 때 내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고3 때 유격수를 봤기 때문에 구단에서 자연스레 내 포지션을 유격수로 정해 준 건데 사실 내가 ‘입스(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생하는 각종 불안 증세)’가 있어 공만 잡으면 머릿속이 하얘졌다. 수비할 때 실수가 나올까봐 긴장하니까 몸이 굳어지고, 예상대로 실수가 나오면 자꾸 위축되고,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다.”

입스는 언제부터 나타났나.

“원래는 고교 시절에도 외야수를 맡았다. 고3 때 팀 사정에 의해 유격수로 자리를 옮겼는데 수비하다 공을 잡아 1루로 던질 때 잦은 실수가 나왔다. 외야에서 강하게만 공을 던지던 습관 때문이었다. 코치님이 송구할 때 강약 조절을 하라고 강조하셨고, 살살 던지려다 보면 공을 떨어트리게 되고, 한마디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그때는 나한테 공이 올까봐 두려웠다. 수비하면서도 제발 다른 선수한테 공이 향하길 바랄 정도였다. 그게 프로 입단 후 첫 캠프 때 또다시 비슷한 증상으로 나타났다.” 

걱정이 많았겠다. 답답하기도 했을 것 같고.

“외야에서 수비하는 선수들이 부러웠다. 나도 외야를 맡는다면 수비 걱정 없이 타격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처음에는 오기로 입스와 싸워볼 생각도 했었다. 왜 안 될까? 왜 공이 정확히 안 갈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럼 언제부터 입스가 사라지고 수비에 집중할 수 있었나.

“프로 1년 차 때 미국 캠프 마치고 일본에서 2차 캠프를 가졌다. 캠프 막판에 삼성 라이온즈와 연습경기를 했는데 (임)병욱이 형이 근육통으로 게임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홍원기 코치님이 내게 외야를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고 그날 중견수로 출전해 안타를 기록했다. 수비에서 실수도 없었고. 그 후 서서히 외야수가 내 포지션이 됐다.”

구단에서도 입스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내가 내야 수비를 하는 걸 보고 눈치채셨던 것 같다. 홍원기 코치님이 수비 불안 증세를 보이는 내게 이렇게 조언해 주셨다. ‘이정후의 장점은 타격이니까 수비 부담은 내려놓고 타격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라고. 단점을 고치려 하지 말고 장점을 더 부각시키려다 보니 정신적으로 편안해졌다. 방망이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 

야구 인생의 큰 숙제가 해결된 기분이었겠다.

“정말 기분 좋았다. 송구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야구 하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외야에서는 강하게 송구하면 되니까 송구가 두렵지 않았다. 이전에는 공이 다른 선수한테 가길 바랐지만 외야 수비를 맡고 나서는 내게 공이 오기를 기다렸다. 프로 1년 차, 시범경기 때부터 성적이 좋았다. 야구장 가는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지난해 9월1일(현지 시각)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정후와 아버지 이종범 주루코치 ⓒ 연합뉴스
지난해 9월1일(현지 시각)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정후와 아버지 이종범 주루코치 ⓒ 연합뉴스

지난 2년 동안의 성적 중 가장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신인왕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고교 졸업하고 곧장 프로에 입단한 신인 중 신인왕을 받은 선수가 오랫동안 없었다고 하더라(2007년 당시 두산 베어스 임태훈). 그런데 내가 신인왕을 수상했고 이듬해 (강)백호(KT)가 신인왕을 수상했다. 고교 졸업 선수가 프로에서 곧장 성공할 수 없다는 선례를 깼다는 점은 자랑하고 싶은 일이다. 사실 시즌 시작되고 여름이 되면 체력이 떨어진다. 상대팀에서 집요하게 내 약점을 파고들 것이고, 기술적으로 분석이 되는 상황에서 그걸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연습량을 늘렸는데 하루는 장정석 감독님께서 경기할 때 써야 할 힘을 연습할 때 쓴다면서 연습량을 줄이라고 부탁하셨다. 그 말씀이 큰 도움이 됐다.”

이정후 선수의 경험에 의하면 고교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뛰어든 선수들이 왜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내가 잘한다고 해도 유명한 대선배님들을 상대하다 보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짧으면 5년, 길게는 10년, 15년을 뛴 선배님들과 상대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마운드에 양현종 선배님이 서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어느 신인 선수가 그 선배님을 상대로 자신 있게 스윙할 수 있겠나. ‘아, 내가 저 선배님 공을 어떻게 치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난 신인이다.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 신인은 더 밑으로 떨어질 곳이 없으니까 자신감 갖고 해내자고 생각했다. 그게 아주 주효했던 것 같다.”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어떠한 방법으로 슬럼프에서 벗어났나.

“타격 코치님이 전력분석팀에서 받은 자료와 영상을 보여주셨는데 영상을 보니까 내가 모든 공에 다 방망이를 대려고 움직이더라. 투수는 안 맞으려고 던지는데 그 공까지 다 치려고 하니까 공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그때 코치님께서 ‘네가 잘 치는 코스가 있는데 왜 못 치는 코스의 공까지 다 치려고 하느냐’고 말씀하셨다. 코치님 덕분에 이후에는 타석에 들어설 때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 후로는 공이 제대로 맞기 시작했고.”

지난 2년 동안 여러 투수들을 상대했다. 그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느낀 선수가 누구인가.

“롯데 브룩스 레일리 선수다. 15타수 무안타를 기록 중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타가 안 나온다.”

한 명 더 꼽는다면.

“9개 구단의 1선발들이다. 상대팀이 1선발이면 우리도 1선발이 마운드에 오른다. 더 집중해서 경기에 임하려고 한다.”

‘천재 타자’로 평가받지만 단점은 있다. 바로 장타력인데, 올해는 이 장타력이 보완돼 무결점 타자로 거듭날지 궁금하다.

“(강)백호의 장점이 장타력이라면 나만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 팀에는 (박)병호 형, (김)하성이 형, (임)병욱이 형, 제리 샌즈 등 장타력이 돋보이는 선수가 있기 때문에 그 형들이 못 하는 걸 내가 하고 싶다. 앞서 말한 대로 단점을 고치기보다는 장점을 좀 더 완벽하게 가다듬는 게 중요하다. 올 시즌까지는 타격이나 출루에 좀 더 신경 쓰면서 야구 하고 싶다.”

프로 데뷔 후 줄곧 대표팀에 뽑혔다. 올 시즌에는 프리미어12대회도 있고 도쿄올림픽도 준비해야 한다. 대표팀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고 들었다.

“하면 할수록 욕심나는 게 대표팀이다. 대표팀에 뽑혔다는 건 성적이 좋다는 걸 의미하지 않나. 좋은 성적으로 대표팀에 뽑혀 다양한 국제대회에서 내 역할을 해 나가고 싶다. 대표팀은 프로팀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정후는 야구는 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 스포츠라고 말한다. 정답이 없는 경기, 안주하면 바로 실력으로 나타나는 무서운 스포츠가 야구라는 것이다. 

“오늘 4안타를 쳤어도 내일 무안타가 나올 수 있는 게 야구다. 그래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은퇴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야구를 사랑한다. 내가 야구를 안 했다면 ‘이정후’라는 이름은 ‘이종범 선수의 아들’로만 머물렀을 것이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못다 이룬 꿈 내가 해내고 싶다” 

아직 실행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프로 3년 차를 맞이하는 이정후의 앞날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그는 향후 해외진출도 바라볼 수 있는 상태다. 이정후에게 해외진출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아버지 이종범 코치를 떠올렸다. 

“아직 멀고 먼 일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일본에 진출하고 싶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못다 이룬 꿈을 내가 해내고 싶기 때문이다.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부상 등으로 포지션이 바뀌었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채 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그 점을 부모님이 가장 많이 안타까워하신다. 내가 일본에 가서 아버지가 다 이루지 못한 부분을 채워간다면 아버지의 한이 풀리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만 한다면 굉장히 멋진 장면이 연출될 것 같다.”

이정후는 어렸을 때부터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며 성장했다. 당연히 미국 야구에 대한 꿈도 갖고 있는 그다. 그러나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그는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가장 중요한 건 한국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일본에도 도전할 수 있다. 해외진출이 야구 인생의 중요한 목표지만 한국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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